브금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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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악행은 때로 공식의 유니폼 아래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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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용병들보다 더 잔혹했던 '정규군'

콩고 내전 당시,
지크프리트 뮐러는 웃었다. 마이크 호어는 명예를 말했다. 장 슈람은 땅을 위해 싸웠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지금도 콩고 전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역사의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기면, 이 세 명조차 '정상'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용병이 아니었고, 무법자도 아니었다.

정식 군복을 입었고, 정부의 정식 명령서를 가지고 있었으며, 문명국가라는 명목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바로 벨기에의 식민군, Force Publique, 그리고 그 유산을 이어받은 현대 벨기에 정규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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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 흑인의 잘린 손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국'이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고발하기위해 찍은 사진이다.)

I. Force Publique – 고무와 피로 세운 군대
1885년,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벨기에 국가의 식민지'가 아닌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선언했다. 그는 이곳을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그곳엔 자유 대신 끔찍한 노예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Force Publique는 벨기에 장교와 현지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식민통치를 위한 군대였다. 이들의 임무는 잔인하리만큼 단순했다.

"고무를 채취하지 않으면 마을을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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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이란 곧 학살이었다.
팔과 다리를 잘랐고, 아이들을 인질로 삼았다.
반항하는 마을은 불탔다.

1908년까지 최소 1,000만 명의 콩고인이 희생되었다는 역사적 추정이 있다.
노동 착취, 학살, 굶주림, 질병.
모두 벨기에의 '문명'과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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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독립 이후 – 이름만 바뀐 폭력

1960년 콩고가 독립을 선언했지만, Force Publique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이름만 바꿨을 뿐이었다. “Armee Nationale Congolaise” (콩고 국가군)
지휘관은 여전히 벨기에인이었고, 병사들은 착취와 학대를 견뎌야 했다.

독립 직후 병사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것이 콩고군 반란(Congo Crisis)이다.
수십 명의 백인 장교들이 린치당하고 살해되었으며, 벨기에인 가족들이 긴급히 피난을 떠났다.

벨기에는 즉각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정규군을 파병했다.
그러나 이 ‘치안 유지’가 곧 또 다른 학살과 착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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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문명이라는 이름의 학살 – 벨기에군의 진짜 얼굴

벨기에 정규군은 콩고에 도착하자마자 공식적인 승인 없이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심바 반군뿐 아니라 정부군 중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인사들까지 공격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반군이 아니라, 불편한 모든 존재였다.

여성들에게 총격을 가하며 마을 점령

무장 해제된 민간인을 구타, 고문

즉결 처형과 마을 초토화


이 모든 만행에 대해 벨기에 장교들은 기자 앞에서조차 당당히 말했다.

"이건 문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입니다."
벨기에군 지휘관,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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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시스템화된 폭력 – 잔혹한 공식
용병들의 폭력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상황에 따라 달랐다. 지휘관 개인의 성격이나 이념에 따라 행동이 달라졌다.

그러나 벨기에군의 폭력은 달랐다.
그것은 공식적이고 조직적이며, 심지어 '매뉴얼화된' 시스템이었다.

체포 → 심문(고문) → 협력자 분류 → 처형.

반군과의 협력이 의심되는 마을은 즉각 포위됐고, 주민들은 끌려갔다.
많은 사람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벨기에군의 이런 시스템은 어떤 국제 규범이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식 군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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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용병들조차 덜 잔혹했다는 아이러니

현지 기자와 국제 NGO는 이렇게 기록했다.

"용병들이 더 인간적이었다. 그들은 총을 들었지만, 최소한 이유라도 있었다."



마이크 호어는 민간인 보호 구역을 만들고,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물자를 제공하려 했다.

심지어 장 슈람조차도 민간인을 자신이 다스릴 자산으로 보았다. 그는 노동력을 보호했고, 최소한의 복지는 유지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통치하고자 했다.

하지만 벨기에군은 주민들을 '통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단지 절대적인 복종이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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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역사의 그림자 뒤에 숨겨진 책임

벨기에군이 저지른 끔찍한 학살은 공식적으로는 “평화 유지 작전 중 발생한 유감스러운 사고”로 처리됐다.
관련 문서 대부분은 현재까지도 벨기에 정부가 비공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뮐러의 철십자 훈장, 마이크 호어의 인터뷰, 장 슈람의 도피 스토리는 생생히 기록됐다.

용병들은 악당으로, 전쟁광으로 기억됐다.
하지만 정식 군대였던 벨기에군은 역사에서 조용히 잊혀졌다.

진짜 질문은

누가 더 잔혹했는가?

누가 더 오랜 기간 파괴를 지속했는가?

누가 그 책임을 끝까지 회피했는가?


벨기에군은 용병보다 더 깊게, 더 오래, 더 체계적으로 콩고를 파괴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 속에 숨은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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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표준 – 국가와 폭력의 경계

벨기에군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가장 끔찍한 학살과 잔혹성은, 때로는 '공식'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용병들의 폭력은 악명으로 남았지만, 국가 정규군의 폭력은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벨기에군은 악의 기준점을 새로 정의했다.
그들은 정식 군복과 깃발, 그리고 '문명'의 이름으로 가장 야만적인 행동을 수행했다.

그것이 진정한 '악의 표준'이었다.


6편(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