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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공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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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가 죽었다니 무슨 말이야 이게”
그들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로, 멍청한 표정을 한 채 서준이와 재민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지훈이가? 김지훈이 죽었다고? 왜?”
담담하게 다시금 말했다. 폭탄이 터진 충격으로 머리가 어지러운지 아니면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혼란스러운지 어떤 감정이 내 머리를 흔들어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에서 나를 눕혀두곤 말했다.
“이제 우린 여기서 숨어 있다가 시간 되면 나갈 거야.”
“왜?”
어쩌면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반문했다.
“그럼? 우리가 개 같이 죽어가며 싸워야 하는 이유는 뭔데? 너는 아직도 이딴 전쟁놀이를 계속하고 싶어?”
옆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1층에서 올라오는 문을 계속 경계하던 재민이가 손을 떨며 내게 말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의 반문에 난 답할 수 없었다. 내 뒤에 있던 서준이도 이에 말을 거들었다.
“우리 조금만 있자. 우리가 더 나선다고 도움 되는 거 아니잖아. 솔직히, 그냥, 다 지나갈 때까지만 있자고, 우리도 조금만 비겁해지자고 제발! 같잖은 영웅심리 들먹이지 말고!”
그의 눈, 붉게 충혈됐다. 언제부터였지, 분대원들 눈을 못 마주치게 된 때가. 한 달 전만 해도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예초한다며 흐르는 비지땀 닦아가며 낫질하던 생각이 났다. 담배 한 대도 나눠 피우고 즐거웠던 것 같은데.
준영이, 승욱이 형, 도윤이, 지훈이, 동현이, 조태윤 하사님. 한 달 동안 이곳까지 올라오며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루 만에 죽었다. 죽음, 이해되지 않는, 막상 실제로 그들을 다시 못 본다는,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만 빙글빙글 돌았다. ‘언제부터였지, 내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게 된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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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긴 송림 전투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 셋은 건물 안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다. 들어온 적은 없었다. 계단 입구를 책상이나 갖은 물품들로 틀어막았기에, 올라오고 싶어도 후퇴하는 처지에선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바로 근처를 때리는 갖은 포탄 터지는 소리와 진동에도 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제부터 사람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된 걸까. 서준이와 재민이는 내 곁에서 조용히 아무 말 하지 않고 각자의 신을 향해 기도하며 조용히 묵묵히 계단 아래만 바라봤다.
어느덧 전투가 끝나고 아군의 신호와 함께 우리는 조금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동쪽 저 멀리서 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해를 등지고 이동하던 아군 측 주공과 만나며 매복지에서 나왔다. 치열하게 싸웠던 대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알아보기 힘든 고깃덩이와 죽여달라는 부상병들 그리고 터져나간 아측 장갑차가 있었다.
흔들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도로를 바라보며 미친놈처럼 서 있었다. 서준이와 재민이도 내 뒤를 따라 나와선 뭐라 웅얼거렸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결국 살았다고 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우는 듯 눈가를 닦으면서 등을 돌려 해가 뜨는 방향을 쳐다만 봤다. 나는 조금씩 걸었다. 진동에 흔들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행진하듯 걸었다. 주위의 벽돌 하나하나 유심히 바라봤다.
길 한복판 구덩이에는 붉은 피와 흙탕물이 뒤섞여 틈새를 채우고 곳곳에 비명과 의무병을 부른 소리, 울부짖는 소리와 전차, 장갑차 엔진음들이 뒤섞여 정신이 없었다. 난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 안에서 나를 지켜보던 한 병사, 상처에 있는 구더기를 더러운 손으로 떼어내는 의무병, 썩은 냄새에 코끝이 아리는 상한 고깃덩이, 어쩌면 꿈에서 봤던 곳이랑 비슷한 것 같다. 어딘가 나는 매캐한 매연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나를 향해 욕하던 중사가 타고 있던 장갑차였다. 정 중앙이 뚫린 채, 화염에 타오르고 있었다. 고기 타는 냄새에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곳엔 살아남은 장갑차가 있었다. 뒤에선 탄약을 가지러 갔다가 마주쳤던 상병이 걸어 나왔고 이처럼 골목길 어귀에선 살아남은 아군들이 조금씩 나와 대로를 이동하는 아군 병력을 바라만 봤다.
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몇몇이 연락에 응답이 없던 1소대장을 찾으러 언덕으로 올라갔지만, 언덕 능선에서 지휘하던 1소대장은 칼을 맞고 전사한 뒤였다. 당분간 우리 소대는 1소대 부소대장인 박영효 상사가 지휘했다.
패퇴하던 적은 강자락에 닿고 아군의 집중포화와 도망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 그들은 허무하게 항복했다. 결사 항전을 떠들어 대던 그들의 전투는 손가락 한번 튀기는 시간보다 짧게 끝났다.
길고 긴 대장정이 끝났고 우리에게 남은 건 안정화뿐이다. 보급을 기다리고 예비대를 기다렸다. 중대 본부와 공병대는 이미 만나서 남포와 연결되는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우리 소대들은 휴식을 했다.
다른 중대 사람들은 포로 수용, 경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나는 아까 들어갔던 건물로 들어가서 지훈이가 있었던 방에 들어갔다. 그곳엔 서준이, 재민이도 있었다. 잔해에 깔려 차갑게 식은 그의 육신을 바라봤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서준이가 담담하게 지훈이를 바라보며 표정에 변화도 없이 말했다. 그러자 재민이는 반문했다.
“우리가 그만두고 싶다고 끝날 전쟁이었으면 진작에 끝났겠지…”
재민이의 상투적이고 날카로운 답에 서준이는 말했다.
“재민아… 나 진짜 그만하고 싶어… 나 집에 할아버지밖에 없는 거 알지?”
“…”
“할배가 자기 죽으면 묻어달라고 말했는데…”
“승현아”
재민이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너는 어떤데”
“나?… 나는, 나는…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지훈아… 너는… 넌 어쩌고 싶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지훈이를 바라보며 재민이는 계속 같은 말은 되뇌며 말했다.
“씨발럼… 들었으면서 대답도 안 하네… 치사하게…”
해가 뜨며 우리는 지훈이 곁에 누워서 조용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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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1계급 특진과 인헌무공훈장을 수여함.”
총성과 같은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병장 강승현”
사단장이 앞으로 나와 전투복의 계급장을 떼고 하사 계급장을 붙였다. 한 손엔 훈장이 담긴 파란 박스를 내게 넘겨줬다. 나란히 세워진 열에는 나와 서준이, 재민이, 그 외에도 여럿 있었다.
사단장은 깔끔한 전투복을 입고 내게 한마디와 깨끗하고 고운 손으로 악수를 건냈다.
“강승현 하사, 조국의 승리를 위해 분투해 주도록!”
나는 그의 악수에 응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 빠졌는진 몰라도 답해주지 않았다. 뒤에 있던 소령은 얼굴이 붉게 올라 나를 쳐다봤지만,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홀로 남은 손이 멋쩍었는지 나의 어깨를 여러 번 두드리고 자리를 옮겼다. 옆에 있던 재민이, 서준이도 나와 반응은 비슷했다. 어째서 내가 여기 있는지, 서로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 상황이 살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훈장과 특진뿐만 아니라 포상 휴가도 주어졌다. 몇몇은 우리에게 동료 팔아먹고 훈장이랑 휴가받았다며 욕을 뒤에서 해댔다. 나도 어쩌면 그 말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손에 들린 그 박스와 계급장이 더 무겁게 만들었다.
단상이 늪이 되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저 뒤에서 나를 욕하는 소리가 내 귓가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박수 소리는 어느덧 총알 소리로 바뀌어서 귓가를 스치는 것 같다.
두근거림, 손과 발엔 땀이 나서 쥐고 있던 파란색 상자가 떨어질 것 같았다. 숨이 가빠지고 고개를 숙인 채로 미안하다며 잘못했다며 조용히 속삭였다.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죽은 동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조용히 말을 되뇌었다. 아무도 들리지 않게… 눈가엔 눈물이 고여 금방이면 떨어질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어떻게든 들고 싶었지만, 누군가 어깨를 누르는 듯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초라했다. 들썩이는 뒷모습, 내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단상에서 뛰어 내려와선 화장실을 찾았다.
온통 젖은 군복에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벽면에 팔을 얹어 고개를 숙여 토했다. 눈물과 구토가 올라와서 참을 수 없었다. 속에 모든 것을 게워 내며 울었다. 그러나 한 손엔 훈장 박스를 차마 놓치지 않고 꽉 붙잡은 채로, 더러운 위선자의 모습을 한 채로 어두컴컴한 변소 아래를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2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다른 간부 몇몇이 날 찾아 화장실로 뒤따라와선 날 일으켜 세우곤 말했다.
“니 탓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
“소대장이랑 중대장님이 너 추천 해주신 거야. 너 최선을 다했다.”
한마디가 내게는 모든 이의 죽음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듯 들렸다. 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들의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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