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aada05e68a2aad7db3d7ba17fc2714f29f937a02113572c2b8ab7f20a6841c44b187d3592c0f0873ee1e1650c3107098c371692d18cc47db47bccf6812b766ab78a2e24133b684b23ac0e980c75730765b2dc86de43672867e23e38ef31cadae683d22cdd5920520575d1bb5b14956d2cf4ae92b90e5e42a55db0ad185324436c4214d0de71bd27f7251f47527ec07d99ed932e93a0c5cd3ab6af393c4b3bc83d1d248cb55


대한제국은 의화단 사건으로 주변에 군수 수요가 늘어나면서 경제 사정이 나아지자


군대의 규모를 수천 명 단위에서 1902년에 이르면 2.8만 명까지 늘린다.


그에 응하기 위해 1896년에 세운 무관학교를 1898년에 육군무관학교로 개편하였고


학도(생도) 200명을 입학시켜 교육하였다. 


이들은 1900년 1월에 임관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 병력 규모가 몇 배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과정만으로 필요한 장교를 충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의 학군단이나 학사장교 같은 코스를 당장 도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출처: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3805017_002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



1901년 5월 17일


(전략, 내용은 대략 함경도 삼수군에 주둔한 진위대 병력이 청나라 비적을 물리쳤단 내용)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군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비적을 소탕한 것은 지극히 가상한 일이니, 위관들은 승서(陞敍)하고 정교(正校) 김영표(金永杓)는 위관으로 승차(陞差)하며, 그 밖의 부교(副校) 이하는 자리가 나는 대로 등급을 올리라."

하였다.


(후략)



당시 정교는 부사관 계급으로 오늘날의 상사에 해당한다.


부사관을 위관급 장교로 임용한 것이다.


이게 특별한 사례였는지, 아니면 이런 사례가 꽤 있었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왕에게 보고가 갈 만큼 큰 공로여서 승진한 예외적인 사례였는가?


아니면 임지에서도 지휘관 판단 하에 장교로 승급이 가능했는가?


후자의 예시가 있다면 아마 현지 지휘관 판단이 일일이 실록에까지 오르지는 않았을 거라


관보 같은 다른 데이터를 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