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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배치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말 군 근대화 연구>와 일부는 <조선왕조실록> 검색으로 확인했다.


청주진위대가 제2연대 제2대대에서 제6연대 제1대대로 발전한 뒤에,


공석이 된 제2연대 제2대대와, 제6연대의 제2대대가 국방부 책에 나오지 않아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여 각각 공주와 안동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해군은 거의 있으나 마나 했으므로 육군만 설명하겠다.


이 자료는 대략 1900-1904년 즈음의 것들이 섞여 있어서 부정확하니 대략 이런 흐름이다 정도로 보면 되겠다.



원수부와 군부


내각에는 오늘날의 국방부 역할을 하는 군부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정치적 사건을 겪은 고종은 내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서


원수부를 설치하여 군대를 직접 통제하려고 하였다.


원수부는 러일전쟁을 즈음해서 폐지되었다.



원수부


원수부는 고종이 대원수, 황태자인 순종이 원수로 있었으며


군무국과 검사국, 기록국과 회계국 등 참모 부서가 설치되었다.


원수부에서는 육군법원과 육군헌병사령부 등도 설치하였고,


관병식 등이 있을 때 임시로 혼성여단을 편성하기도 했다. 


뒤에 일본에 의해 군 규모가 축소될 때 혼성여단사령부가 군대의 지휘부가 되기도 했다.



군부


군부는 군부대신과 군부협판 등 내각 인원이 맡았다.


경리국장과 포공국장 등의 부서가 설치되었다.


한동안 원수부로 부대들이 옮겨 가면서 군부는 군사 사무를 주로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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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대와 시위대: 중앙군


친위대와 시위대는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중앙군이었다.


최대 규모일 때 시위대가 5천명, 친위대가 3천명 정도의 규모였다.


이는 티오 기준이며, 실제 충원율은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시위대


당시 시위대는 2개 보병연대와 그 휘하의 4개 보병대대가 있었다.


그 외에 기병대대와 포병대대도 있는 등 당대 국가들 사이에


후발주자였던 대한제국 육군에서는 비교적 정예라 할 만 했다.




친위대


친위대는 2개 보병연대에 휘하 4개 보병대대가 있다.


그 외에 공병중대, 치중중대(*보급중대)로 구성되었다.




진위대: 지방군


진위대는 지방에 설치된 6개 연대, 18개 대대의 부대였다.


병력은 1만 8천명 정도 되었다.


이는 티오 기준이며, 실제 충원율은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연대의 본부가 위치한 곳은 최대한 서울과 가까운 곳들이었다.


국경 지역에 위치한 부대들은 청나라의 화적 등이 넘어 오면서 교전을 치른 적이 있다.



제1진위연대 (경기 강화)
  제1대대 (경기 강화)
  제2대대 (경기 인천)
  제3대대 (황해 해주)

제2진위연대 (경기 수원)
  제1대대 (경기 수원)
  제2대대 (충남 공주)
  제3대대 (전북 전주)

제3진위연대 (경북 대구)
  제1대대 (경북 대구)
  제2대대 (경남 진남)
  제3대대 (경남 울산)

제4진위연대 (평남 평양)
  제1대대 (평남 평양)
  제2대대 (평북 의주)
  제3대대 (평북 강계)


제5진위연대 (함남 덕원)
  제1대대 (함남 덕원)
  제2대대 (함남 북청)
  제3대대 (함북 종성)

제6진위연대 (충북 청주)
  제1대대 (충북 청주)
  제2대대 (경북 안동)

제주대대



한반도에 17개 대대가 배치되고, 제주도에 원수부에 직속된 독립대대가 있었다.


진위대는 보병 위주로 중앙군인 시위대나 친위대만큼의 화력을 보유하진 못했다.


일부 지역에 방위 목적으로 작게 포대를 설치했지만 포병중대 수준도 안 됐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부대들 외에도 헌병사령부나 육군무관학교 등 자잘한 기행부대들이 있었다.



시위대, 친위대, 진위대를 합치면 10개 연대에 대대는 28개(보병 26, 기병1, 포병 1)가 된다.


현대의 군대 기준으로 본다면 아마 전체적으로 군단급 규모의 육군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903년 기준 일본군이 예비 병력이 15만 수준임을 감안하면 작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