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낮았던 걸로 암. 한국군 사병들과 다르게 말임
1907년부터 이어진 정미의병전쟁은 역사책에서 몇 줄 언급되지 않지만, 최소 15만명의 참여자와 최소 5만명의 사상자를 내었던 대사건이었음
일본이 이거 진압하겠다고 여단급 진압부대를 돌려야만 했으니까 말야
그럼에도 대한제국군의 간성이었던 장교진들이 의병에 참여한 비중은 매우 낮았음. 그나마 친일을 하지 않은 이들도 대부분 무장투쟁보단 애국계몽에 나섰고.
신분확인된 의병장 255명 중 한국군 장교 출신은 7명. 고작 2.7% 수준임.
다른 자료에선 군인출신 의병장 87명 중 부사관 29명, 병 43명 대비 장교는 고작 15명이었다고도 함.
이유는 일본이 한국주차군 헌병을 급격히 늘려 해산 한국군의 의병 가담을 차단해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해산 장교들 대부분이 그냥 참여를 안 해서임
그리고 그들 없이 벌어졌던 한말 의병전쟁은 일본에 의한 집단학살의 성격을 띄었음.
신식전술에 익숙했던 그들이 적극적으로 의병에 가담했더라도 일본을 몰아내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지
출처
- dc official App
일뽕들은 총한발 안쏴보고 나라넘겼다 소리하는데 남한 대토벌같은건 눈감고 무시하더라
병신들이 뭘 알겠어 - dc App
장교라서 좀 더 아는 게 많다는 것이 작용했을까? 무력항쟁에 가담해봤자 가망이 도저히 없다는 게 더 잘 파악이 되니까 처음부터 그쪽 노선은 포기해버린 거지 - dc App
그랬을지도 몰라 계산기 두드려봤겠지 - dc App
장교출신은 무력투쟁을 해도 해외로 넘어가서 했더라고. 돌아가는 꼴을 보니 도저히 각이 안나오는 걸 느꼈던 것인듯
ㅇㅇ 그랬을 가능성이 크지 - dc App
일본은 대한제국 군대 해산 전부터 무력화 시키기 위해 1905년 4월 1차 군축과 군대 해산 직전인 1907년 4월 2차 군축 때 반일 성향의 장교들도 같이 쫓겨났을 거임.
하긴 친위대가 1905년에 해체됐으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