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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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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수여식이 끝나고 나와 재민이 서준이는 타 병력보다 먼저 사리원시로 넘어왔다. 현재 송림은 지역 안정화가 모두 이루어진 상황이었고 후발대 인계 작업 중이었기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크게 없었다. 또한 사단장은 수훈자를 대상으로 하여금 사기진작을 위한 2박 3일 휴가를 부여했기에 우리는 타 병력보다 더 빨리 사리원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리원시로 넘어가는 보급부대의 두돈반에 몸을 싣고 우리는 사리원시에 달렸다. 빼꼼하고 내다본 바깥 모습에서 송림시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도시 이곳저곳에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주위에는 군인들이 나와 시체들을 낭에 담고 있었다.


시체 하나를 두 명이 들 필요도 없었다. 썩어서 부스러지는 시체와 고기를 쓰레받기에 받듯 쓸어서 조각 맞추듯 부위를 나눠 담는 모습이 보였다.


황금알 돋아나는 시기에 폭격을 맞은 논밭은 갈라진 채 황폐해졌고 이질적이게도 회색빛이 물들었다. 파란 하늘은 연기로 점철되어 구름인지 헷갈렸다. 어떤 곳에선 한데 모아서 시체를 태우고 있었다. 


매캐한 향을 내며 불길이 타오른 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포로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릎 꿇은 채, 양손을 머리에 올려 땅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혹여나 그들이 처음 들어오며 만났던 이들일까.


나는 찝찝한 구경을 그만두고 다시 어두컴컴한 짐칸에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런 모습을 유심히 보던 재민이는 내게 말을 걸었다.


“바깥에 뭐 있어?”

“…그냥 봤어.”

“우리 서울 얼마 만에 가는 거지? 한… 두 달? 석 달?”


그는 손가락을 접으며 마지막으로 서울에 갔던 기억을 꺼내고 있었다. 마지막에 우리가 같이 갔던 적이 한 번 있었다. 박민철 병장 전역 축하 겸 단체 외박으로 이대 쪽에서 퍼지게 마셨던 그 기억.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 달 전, 민철이 형 전역 기념으로 다 같이 나갔잖아.”

“맞다. 그랬었지. 존나 재미있었는데 민철이 형 완전히 취해서 우리가 카드 뺏어서 술 계산 다 했잖아.”

“맞아. 그랬지”

“그 양반은 살아있을까.”

“…”


서울, 그때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을까. 전시가 시작되기 전 뉴스에서 본 서울과 도심의 모습에서는 포격과 공중에서 터져나가는 적 미사일 모습이 끝이었는데. 많이 달라졌을까. 


“집은, 집은 괜찮겠지?”

“괜찮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있었으면 좋겠어.”

“그대로 있어야지…”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재민이는 서준이 따라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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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짐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1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바깥은 초저녁의 푸르스름한 하늘이 깔려 우리를 맞이했다. 서준이와 재민이는 여전히 못 듣고 자고 있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운전병 아저씨가 다시금 짐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저씨들, 다 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나는 그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 주위에 같이 있던 서준이와 재민이를 흔들어 깨웠다. 그들은 비몽사몽인 듯,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하품하고 기지개를 켰다.


“으자자자― 벌써요? 베스트 드라이버시네.”

“빨리 내리세요.”


귀찮다는 듯 손짓을 하며 우릴 재촉했다. 우리도 가져온 짐을 챙기며 짐칸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내린 그곳은 사리원 경기장이었다. 사리원에는 경기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을 보통 활주로나 보급품 적재 창고로 활용했다. 그곳에 우리를 내려줬다.


불에 그을린 잔디를 밟고 덩그러니 남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원형경기장, 있을 건 다 있는 트랙 경기장에 각종 거대한 초록색 상자들과 나무 상자들이 있었다. 우리가 먹을 식량과 쏠 수 있는 총알과 수류탄은 여기 다 있는 것 같았다.


“와 씨팔… 이 새끼들은 식판에 밥 처먹겠지?”


재민이는 주위에 놓인 많은 상자와 물건들을 보며 말을 뱉었다. 얼마나 구경했을까. 반대편 입구에서 더벅머리 중사 하나가 나오더니 우리를 불렀다.


“사자연대 휴가자 인원 맞나?”


더운 듯 방상외피 지퍼를 다 내리고 오른팔엔 군사경찰 완장과 반쯤 감긴 눈으로 우릴 보고 담배 냄새가 풀풀 나는 입으로 말했다.


“예 맞습니다.”

“나 따라와라. 휴가증이랑 몇 가지 줄 것들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뒤돌아 가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경기장 내부에 작게 마련된 사단 인사처에 들렀다. 불이 다 꺼진 복도를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그를 따라갔다.


“이번에 송림 점령했다면서?”


가는 길에 그는 뭐가 궁금한지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고 뒤에 있던 서준이가 말했다.


“맞습니다. 저희가 점령했습니다.”

“전방은 아직도 죽는 사람이 많나?”

“…그렇습니다.”


내가 서준이 대신 질문에 답했다. 그런 중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발을 놀리며 인사처로 자리를 옮겼다. 


방 하나에 멈칫하더니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했다. 방 안에는 급조한 티가 역력한 전선이 이리저리 달린 형광등 하나와 노트북 여러 대와 갖은 문서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창문 하나 없었지만, 밖보다는 상대적으로 밝은 곳이었다. 


“고 앞에 앉아. 거기 하사 너부터 시작하자.”


나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 그를 마주 봤다. 마치 취조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름은… 강승현… 계급 하사… 너 어디 사는데?”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아. 자세한 주소는 말 안 해도 괜찮아. 너네 기차역만 필요해서. 하남이면… 하남시청 근처에 집이겠네?”

“예 맞습니다…”

“오케이. 다음 사람”


내가 자리에 일어서자, 재민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곤 묻는 말에 응답했다.


“병장 박재민, 서울시 은평구입니다.”

“그럼 넌 충무로역? 맞지?”

“맞습니다.”

“오케이 다음”


서준이가 비로소 나가고 모든 순서가 돌아가자. 그는 우리를 보고 말했다. 


“자, 휴가를 나가는 운 좋은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한 번만 말해줄 꺼.니까. 제대로 듣고 모르면 물어보고 오케이?”

“예 알겠습니다.”

“오키, 지금 여러분 전부 서울로 가는 건데. 서울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일부 불발탄이나 게릴라 공격이 있을 수 있다. 일전에도 일부 도심지역에 기습적인 공습도 존재했기에 보안이 심각할 거야. 대중교통은 지금으로썬 지하철 하나만 강북 지역만 시범 운행 중이고… 식량 문제도 있어서 배급제로 이용할 수 있는 등,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좀 달라졌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주는 책자 받아서 집 가는 길이나 오늘 저녁에 한 번씩 읽고 행동해라.”

“예 알겠습니다.”

“휴가증은 내일 오전 07시에 여기 모여서 일괄 지급한다. 휴가증을 반드시 항상 지참한 채로 있어야하고 08시에 사리원으로 보급 오는 수송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이상 질문 있는 사람?”

“그럼… 저희는 오늘 어디서 잡니까?”

“내가 입구까지 바래다줄 텐데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파란 지붕 집이 보일 거야. 거기가 원래 호텔로 쓴 곳이라. 일단은 거기서 숙영할 거고 밥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간단하게 전투식량으로 해결 보자.”

“예 알겠습니다.”

“잠깐만 여기 있어봐.”


그는 그 말을 하고 인사처를 나갔다. 우리는 뻘쭘하게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서준이가 말했다.


“가는구나 진짜…”

“조금만 더 있으면 집이구나 진짜”

“재민아”

“왜”

“나 솔직히 안 믿겨져… 일주일 전만 해도 진짜 핏물, 흙탕물 다 뒤집어쓰고 죽을뻔했는데…”

“…진짜 안 믿겨진다. 꿈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재민이는 안 믿겨진다는 듯 놀란 듯한 표정으로 약간의 미소를 띠며 서준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앉아 있는 서준이는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라 잘못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어쩐지 죽은 도윤이의 모습이 겹쳤다.


그런 서준이의 얼굴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곤 고개를 숙이고 중사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사는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우리에게 말했다.


“자 나오자.”

“예.”


우리는 짐을 챙겨 그의 뒤를 따랐다. 그의 한 손에는 종이 뭉텅이와 작은 명찰 세 개를 들고 있었다.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경기장 출입구로 이동했다.


울려 퍼지는 군화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올 때, 중사는 우리를 마중하며 종이들과 명패를 건네줬다.


“그래, 고생했다. 명찰 이거는 항상 패용하고 다니고 군사경찰 애들이 물어보면 이거 보여주고,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이러지 마. 저기 건물 보이나? 저기가 너희 임시로 숙영할 수 있는 곳이니까. 대로 따라서 쭉 가라. 송림에서 고생 많았다. 충성.”


간부가 먼저 경례를 올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얼떨결에 경례를 했다. 그는 고마움에 나에게 경례했을까. 물어보지 않는 이상 모르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이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중사는 손을 흔들며 우리를 떠나보냈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대로를 따라 지정한 숙소로 이동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바코드와 우리 훈련소 시절 얼굴이 찍힌 사진이 있는 신분증 같은 것이었다. 종이로 급하게 만든 티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받아 든 종이 뭉텅이는 숙박 확인증, 간단한 서류와 작은 책자였다. 


우리는 받아 들고는 대로를 따라 걸어서 호텔로 들어갔다. 주위엔 군사경찰들이 가득했고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빛이 제대로 들어오는 공간인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신분증과 각종 서류 그리고 숙박 확인증을 보여주고 방 열쇠로 바꿨다. 붉은 글씨로 적힌 413호실 열쇠, 우리는 빨리 방으로 올라가려 했다. 


로비에 있던 직원은 북한 사람인지 북한 말씨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뭔가 어색함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빨리 지친 여독을 풀고 싶었다.


계단을 올라서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외박 나갔던 건대 모텔방이 생각났다. 흔한 모텔처럼 좁고 특유의 냄새가 나는 그런 방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푹신한 침대 두 개에 씻을 수 있는 공간, 양변기, 작은 탁자, 있을 건 다 있는 근 한 달간 지내본 어떤 숙영지보다 좋았다.


재민이와 서준이는 급하게 군화를 벗고 씻지도 않은 채, 침대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놓치지 않고 자리에 있는 행복함을 즐기기 위해 그들 사이로 함께 들어갔다. 군복 너머로 느껴지는 이부자리의 부드러움에 금방 잠에 들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