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대한제국의 황족 군사 계급을 다뤄본 적이 있다.
https://gall.dcinside.com/war/4280797
이번에는 일본제국의 2차대전 종전 시점을 기준으로 보겠다.
01번
당시 천황이었던 히로히토. 1901년생.
계급은 근대적인 제국들이 그렇듯 육군과 해군의 대원수였다.
02번
치치부노미야 야스히토 1902-1953
히로히토의 남동생이다.
육군 소장이었다.
03번
타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1905-1987
히로히토의 남동생이다.
해군 대좌(대령)였다.
04번
미카사노미야 타카히토 1915-2016
히로히토의 막내 동생이다.
육군 소좌(소령)였다.
형들과 나이 터울이 컸고 전후에는 연구자로 일했다.
1950년대에 진무 천황의 기원절 관련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 빨갱이 왕자(赤い宮様)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일본의 사상가인 사토미 키시오나 노요리 히데이치는 타카히토에게 좌익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일본 황족의 본가다.
방계도 있다.
방계엔 당시 가문이 11개가 있었다.
11개 가문이니 엄청 많을 것 같지만, 메이지 유신 후에 천황의 존재감이 커지자
그때 갑자기 백업 가문 쪼개기 들어가서 만든 것들이라 종전 무렵에 인원 수는 남녀노소에 배우자 다 합해서 50명 정도였다.
이들은 1946년에 황족 신분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그 과정에 은근히 재산 챙겨줄 기회를 주어 그럭저럭 다들 잘 살고 있다.
일본의 황족은 미야케라고 해서 OO노미야란 가문 칭호를 성씨처럼 쓰는데
전후에 평민으로 성씨가 필요해지자 OO노미야에서 노미야를 떼고 OO를 사용하였다.
05번
칸인 하루히토. 1902-1988.
육군 소장이었다.
칸인노미야의 당주였으며 전후에 사업을 했다.
말년에 요가에 빠졌다고 한다.
06번
야마시나 타케히코 1898-1987
해군 소좌(소령)였다.
나이에 비해 계급이 낮다고 느낄 수 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 군생활을 오래 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야마시나노미야의 당주였으며 히로히토와 외가 쪽으로 사촌 관계이다.
히로히토의 엄마가 이 사람의 이모다.
07번
나시모토 모리마사 1874-1951
육군 원수였다. 일본군에서 원수는 대장에게 붙는 명예라서 그냥 대장이라 봐도 되겠다.
나시모토노미야의 당주였으며 한국에는 영친왕의 장인어른으로 유명하다.
전후에 A급 전범으로 스가모 교도소에 갇혔으나 몇 달 뒤에 불기소로 풀려났다.
08번
쿠니 아사아키라 1901-1959
해군 중장이었다.
이 사람의 동생이 히로히토의 아내라서, 히로히토에겐 처남이 된다.
전후에 사업 등을 했는데 흥하지 못했다.
셋째딸의 회고에 따르면 사생아가 한 다스는 된다고 한다.
대략 한국의 의친왕 포지션이다.
09번
카야 츠네노리 1900-1978
육군 중장이었다.
카야노미야의 당주였다.
전후에 닛신생명 등에서 임원 등으로 일했다.
10번
카야 쿠니나가 1922-1986
육군 대위였다.
09번 카야 츠네노리의 장남이다.
전후에 교토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도쿄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1968년 참의원 선거에도 나갔지만 낙선했다.
사망지가 타이페이인데 대만 여행 중에 죽었기 때문이다.
11번
카야 하루노리 1926-2011
일본 해군병학교를 다니다 종전을 맞아 소위후보생이 마지막이었다.
10번 카야 쿠니나가의 남동생이다. 09번 카야 츠네노리의 차남이 된다.
전후에 도쿄대 법학부에 진학해 외무성의 관료가 되었다.
이스라엘 대사와 덴마크 대사 등을 지냈다.
형도 교토대를 간 걸로 볼 때 집이 공부를 잘 했던 모양이다.
12번
아사카 야스히코 1887-1981
육군 대장이었다.
아사카노미야의 당주였다.
난징 대학살 당시 지나군 파견사령관이었다.
전범으로 기소될 뻔 했지만 피해갔다.
전후에는 투자자로 살고 골프를 쳤다고 한다.
13번
아사카 타카히코 1912-1994
육군 중좌(중령)였다.
위의 12번 아사카 야스히코의 장남이다.
육군 항공부대에서 주로 근무했다.
전후에 도쿄대학에... 입학은 아니고 청강을 하였고 일본항공에 취직하였다.
일본 황족은 신토의 상징이기 때문에 종교를 가질 수 없지만,
타카히코는 평민이 된 후에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14번
다케다 츠네요시 1909-1992
육군 중좌(중령)였다.
다케다노미야의 당주였다.
관동군 731부대에서 참모로 근무했다.
어머니가 메이지의 딸이라서, 히로히토의 고종사촌이었다.
이 사람이 황적이탈 후에 낳은 막내아들인 츠네카즈의 아들, 즉 손자인 츠네야스가 유명한 우익 논객이기도 하다.
15번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1887-1990
육군 대장이었다.
1945년 8월 17일에 황족으론 유일하게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은 45일 했다.
히가시쿠니노미야의 당주였다.
히로히토의 와이프가 이 사람의 조카니, 히로히토는 이 사람의 조카사위가 된다.
이후 신흥종교의 교주가 되고 사업도 하는 등 100세 넘게 장수했다.
16번
히가시쿠니 모리히로 1916-1969
육군 소좌(소령).
위의 15번 나루히코의 장남이다.
전후에 도쿄대학에서.. 청강하였다.
선박회사 등에서 근무했다.
17번
타라마 토시히코 1929-2015
종전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15번 히가시쿠니 나루히코의 아들이고 16번 모리히로의 남동생이다.
이후에 황족 신분을 잃었고, 타라마 가문에 입양되었다.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브라질로 이민하여 1970년에 브라질 국적을 얻었다.
이상이 일본 방계 황족들 중에 종전 당시 일본군에 있었던 인원들이다.
번외로 구한.국의 황족 출신들도 일본군에서 복무하였다.
1945년 8월에 히로히토는 종전을 앞두고 방계 황족 11개 가문의 당주들을 불렀고,
구한.국의 왕공족 2개 가문의 당주도 황족회의에 참여시켰다.
이를 가리켜 항복 후에도 조선만은 잃지 않으려던 일본의 의도라고 판단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18번
영친왕 이은 1897-1970
육군 중장이었다.
당시는 이왕이라고 불렸다.
07번 나시모토의 사위이기도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황족 직위가 박탈되자 미군 장교들 상대로 한.국어 교본을 써서 팔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만큼 순종의 사망 후에 구한.국 황실의 가주 역할을 했다.
19번
모모야마 켄이치(이건) 1909-1990
육군 중좌(중령)이었다.
의친왕 이강의 장남이었다.
한.국 이름은 이건이었고 의친왕의 사동궁 직위를 습작하였다.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세습을 한 경우였다.
전후에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하였고, 메이지의 무덤이 있는 모모야마를 성씨로 삼았다.
모모야마의 후손은 전주 이씨 종친회에 참여하지 않는다.
20번
이우 1912-1945
육군 중좌(중령)였다.
의친왕의 차남이었다. 운현궁의 당주였으며, 종전 전의 황족 회의에는 원폭 피폭으로 사망하여 참여하지 못했다.
1938년 야스쿠니에서 촬영된 이 사진을 보면 구한.국의 황족들이 일본의 황족들과 같이 서 있다.
왼쪽부터 03번 노부히토, 04번 타카히토, 12번 야스히코, 13번 타카히코,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가히사(1940년 사망), 18번 이은, 19번 이건, 20번 이우다.
이상 끝.
뽈갱이왕자 ㅋㄱ
이우도 그시대 이왕가 친일파인데 와꾸보고 있지도 않은 기록 갖다가 독립투사 만드는것도 어이가 없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