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갤에 썼던 거 재업함)
각국 군수산업 이야기들이 재밌어서 프로이센 이야기도 가져와봄
우선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즉위하던 시기에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건 건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임. 우리의 군인왕이 이런 답없는 자기 영지를 지키기 위해 외국인들까지 납치하고 일개 중사마냥 직접 빠따 들면서까지 군대를 키워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음.
하지만 이런 군대를 건설하기 위한 인프라를 어떻게 키워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더라구.
(위쪽 별표는 슈판다우, 아래쪽 별표는 포츠담임)
사실 뭔가 산업을 일으키기에 베를린과 그 근교는 너무 부적합했음. 당시 브란덴부르크는 17세기 전반 벌어진 합스부르크와 신교도들의 30년 팬티 레슬링 때문에 완전히 폐허였거든. 사실 전쟁 아니라도 브란덴부르크는 신롬의 '모래상자' 라고 불릴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음. 지하자원이 나기를 하나 농사가 잘 되기를 하나 무역로에 있어서 돈이 잘 들어오기를 하나. 진짜로 조또 없는 모래투성이 습지대였음.
그나마 다행인 건, 양모는 좀 났고 이게 시드머니로 쓰였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즉위 직후부터 프로이센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양모 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했음. 사진의 '왕립 창고(Königliches Lagerhaus)'라고 불리는 방적공장이 베를린 미테구에 세워졌는데 이곳은 한동안 베를린에서 가장 큰 기업체였음. 사실 민영 기업으로 설립되었지만 창립 초기부터 군하고 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음. 나중에는 아예 국유화됐고.
왕립창고 그림
야심차게 육성한 산업이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음. 브란덴부르크의 양모는 스페인산 양모에 비해 너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업자들은 자국산 양모를 쓰기 싫어했음. 그리고 폴란드와 작센 또는 망명한 프랑스 신교도들 사이에서 기술자를 초빙했지만 그래봤자 영국의 엄청난 방적산업에는 비빌 수도 없었음. 당연히 이 공장에서 만든 양모는 거칠었음. 이런 저급 원료를 가지고 만든 원단이 어떻게 경쟁력이 있겠어?
하지만 다 방법이 있다고, 군인왕은 이 쓰레기 원단을 전국에 보급함. 중상주의 정책에 기반한 보호무역이 선포되었음. 브란덴부르크 전국의 양모는 국외반출이 금지된 대신 왕립창고에 공급되어야 했음. 해외 원료와 모직물 수입은 금지되었고 이건 귀족들도 예외가 아니었음. 전국의 인민들, 심지어 왕 본인조차도 국산 모직물로 만든 의복을 입어야 했음. 프로이센 군대는 아예 2년에 한 번씩 군 피복류를 교체해야 했고 이게 주 수요처가 됨.
동시에 군인왕은 본격적인 군수공업 건설에도 박차를 가함. 가장 먼저 세워진 군수공장은 프로이센군이 사용할 화약을 납품하는 왕립 화약공장(Königliche Pulverfabrik)이었음. 1717년에 베를린에 건설된 이 공장은 계속 확장해서 나중에는 슈프레 강에 면할 정도로 넓어졌음. 당시 프로이센이 생산한 대부분의 화약은 이 공장에서 나왔음.
초석은 네덜란드에서 사오거나 마그데부르크 등지에서 구매했고, 황은 나사우에서 사옴. 유일하게 자급할 수 있던 건 숯인데 이건 슈판다우에서 만들어서 보내왔음. 이렇게 생산된 화약은 우선 공장 내 화약탑에 저장되었다가 각지의 무기고로 보내졌음. 앙증맞은 문제가 있다면 현대 기준으로는 안전을 말아먹은 설계사상이라 민간인들 거주구역이 공장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거임;;;
총기 산업도 시작되었음. 왕이 즉위한 직후에 프로이센 사업가 고트프리트 아돌프 다움(Gottfried Adolph Daum) 주도로 총기 공장을 세우는 계획이 입안되었고 곧 왕의 지지를 받았음. 1722년, 서유럽 지방 무기 생산의 메카였던 리에주에서 가톨릭교도 기술자들까지 초빙해서 만든 조병창이 포츠담에 세워졌음. 그리고 곧 슈판다우에도 총기공장이 새로 수립됨. 이곳이 그 유명한 슈판다우 조병창임.
처음에는 기반도 다지지 않은 땅에서 목조 가건물로 세워진 포츠담 조병창은 곧 번듯한 석재 건물로 거듭났음. 군인왕의 닦달로 총기생산도 자리를 잡음.
철제 꼬질대는 칼 생산으로 유명한 졸링겐에서, 나무 총가는 뉘른베르크에서 수입해서 포츠담 조병창에서 생산한 M1723(사진)은 프로이센이 최초로 개발해 생산한 소화기라는 기록을 남겼음. 이 '포츠담 소총'은 드라이제 소총 개발 때까지 거의 100년간 쓰일 프로이센 소총의 본바탕이 되었음. 이듬해인 1724년에는 군인왕이 총기에 있어서도 보호무역을 적용해서 해외 무기 수입을 금지함.
이 모든 공장들이 경쟁력이 있었느냐 하면 아님. 이 공장들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양모부터 총기까지 대부분 질적으로 뒤떨어졌고 생산량 역시 프로이센의 수요를 맞추지 못했음. 막상 그러면서도 프로이센 왕실이 직접 책정한 높은 가격대 때문에 욕을 개같이 들어쳐먹었고. 이런 상황에 프리드리히 2세는 아예 늘어난 전시 수요를 영국과 스웨덴산 무기와 양모로 충당했음.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세운 공장들은 결론적으로 실패했음. 사실상 프로이센의 주요 산업 발전은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루르 지방을 얻은 다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왕립 창고는 19세기 초에 해외 물량과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음. 포츠담 조병창은 실망한 숙련공들의 탈주와 태업 문제로 항상 진통을 겪었고, 갈수록 진보하는 기계공업을 발맞춰 따라가지 못했음.
대표적으로 드라이제 니들건은 포츠담 조병창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개발자인 드라이제가 튀링겐에 직접 세운 공장에서 생산했음. 포츠담 조병창은 1850년에 문을 닫고 그 자리는 제1근위보병연대가 병영으로 사용하게 됨.
하지만 이 산업들은 당시에 수없이 전쟁을 벌이던 프로이센과 그 군대를 지원하는 시설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됨. 막말로 이 나사 여럿 풀린 공장들이 없었다면 프로이센은 그 많은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들을 보충하지 못하거나 죄다 해외에서 사와야 했을 것임.
그리고 왕립창고나 포츠담 공장과 달리, 슈판다우 조병창은 19세기를 지나서면서 오히려 더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독일의 주요 군수공장으로 거듭났음. 아까 설명한 왕립 화약공장이 슈판다우 부지에 옮겨온 것을 시작으로 해서 1860년대에는 대포 주조 공장까지 설치되었고, 새로운 무연화약공장과 정부의 총기개발위원회도 이곳에 설립되면서 슈판다우는 거대한 군수공업 콤비나트로 성장했음.
슈판다우 조병창이 생산한 주요 무기들은 아마 들으면 다들 알 거임. 포츠담 공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드라이제도 생산했고, 그 이후에는 프랑스에 자극을 받아 개발된 게베어 71, 마우저 제끼고 개발된 게베어 88, 1머전 때의 주력 소총인 게베어 98 등 대부분의 세기말 독일제 소화기들이 이곳에서 심사를 거치고 또 생산되었음. 기관총도 마찬가지로 슈판다우 기관총으로 알려진 수랭식 기관총은 유명할거임.
슈판다우 조병창은 1919년에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로 문을 닫았음. 이후 도이체 베르케(Deutsche Werke) 사의 공장이 되어서 민간용 양철그릇 등이나 생산하다가 주조공장이 있다는 것을 살려 오토바이 등을 제작하기도 함. 그리고 전간기 히틀러의 재무장 정책에 편승해서 노예노동을 통해 나치 정부에 무기를 다시 한번 공급하다가 패망을 맞았음.
출처 독일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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