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아이 빌(G.I. Bill)
풀네임은 '제대군인 원호법'이지만 보통 지 아이 빌로 많이 불림
미군 전역자들에게 광범위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법안.
1932년 보너스 아미 사건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음.
현역으로 90일 이상 복무하고 정상적으로 전역한 모든 미군들은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음.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수료기간 동안의 생활비와 개별적인 1년간의 실업수당이 지급됨.
사업을 하거나 농사를 짓고자 한다면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줌. 담보도 크게 안 잡음.
학업을 이어가고 싶어한다면 대학 등록금과 학비 전액, 생활비를 지급 해줌.
그리고 공통적으로 주택구입 or 건축 자금도 지원해줌.
G.I. Bill의 혜택을 받은 미군들의 숫자는 780만명 정도로 추산됨
전쟁이 끝나고 1,40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실업난이나 사회적 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음.
왜냐하면 이들이 대부분 전역해서 바로 노동시장으로 직행한게 아니고 최소 1년 정도는 뭔가를 하면서 매우 천천히 돌아왔으므로 사회가 그 충격을 버틸 만한 수준이었음.
특히 40년대 중후반 미국인들의 대학 진학률은 매우 높아졌는데, 이게 전부 다 지 아이 빌의 혜택을 받은 220만명의 전역군인들이 단과대학에서부터 로스쿨까지 미국 전역의 온갖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임.
정말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애들도 상관 or 전우들의 설득으로 대학 문턱 한번 밟아본 거임.
어린 시절 대공황으로 인생 하드모드를 겪어보고 전쟁으로 또 한번 담금질 된 20대 미국인 청년들에게 이 시기는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았음.
나라에도 돈도 펑펑 주고, '너 하고 싶은거 한번 해봐라'하고 등 떠밀어주니 뭐가 됐던 도전해볼만 했음.
게다가 당대 미국은 교외주택 붐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주택 가격 자체는 서민들에게 조금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으나 G.I. Bill의 주택구입자금 지원을 받으면 눈 딱 감고 질러볼만한 수준이었음.
직장에서 몇십분 정도 떨어진 잔디밭과 뒷마당, 차고가 딸린 2층 주택에 살며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삶이 바로 여기서 비롯됨.
이렇게 지원을 받으며 사회로 복귀한 미국의 건아들은 국가의 허리를 떠받치는 중산층을 이뤘고, 미국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50년대의 위대한 세대로 남게 됨.
하지만 베트남은..
babykiller들 money 없어요우. me가 보내긴 했지만. - dc App
호황기라 챙겨준게 아니라 저렇게 챙겨줘서 구매력이 빵빵한 중산층이 생겼고, 저 중산층이 호황기를 만든거임
LA느와르도 참전용사를 위한 주택 공사에 연관된 비리에 대한게 주 스토리라인 아니었나 - dc App
저거때문에 아직까지 대공황의 그늘이 남아있던거 한방에 완큐 시켰다고 알고 있음 저렇게 너도나도 혜택을 받으면서 자본 융통성이 엄청나게 활성화 되었으니
대단
이건 인종상관없이 지원해줌? - dc App
ㅇㅇ 그래서 저거 덕분에 유색인종 대학 진학률도 덩달아 높아짐 - dc App
그러니깐, 780만명의 학비전액+생활금 or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면서, 마셜플랜으로 유럽 각국의 재건을 지원하고, 그러고도 남아서 저 멀리 동양 촌구석 한국에 밀가루등을 지원한 거라고??? 뭐하는 나라야 대체
대신 전세계의 금 빨아갔잖어. 그거로 달러 열심히 찍었겠지
세금과 전시채권임. 오죽하면 버니 샌더스가, 자신은 루즈벨트 행정부에 비하면 친기업적이다 라고 드립칠 정도로 저당시 미국 법인세율이 미쳤음 최대 95% 까지 였으니... 2차세계대전, 진주만 기습같은 초유의 사건 덕에 저런 미친세율이 가능했음.
베트남전이나 한국전 끝나고는 이런거없었나? - dc App
한국전은 미국 사회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으로 취급되어 혜택이 없다시피했고(알려지는 순간 제3차세계대전하다 왔다며 패닉이 올거니까.), 베트남전은 자국 내에서 베이비 킬러 전쟁이었다며 욕만 바가지로 먹으며 그나마 있는 혜택도 팍팍 줄어버려 알콜중독자랑 약쟁이가 대거 창궐했음. 건그레이브의 브랜든 히트 가 집나온것도 아빠가 전쟁후유증으로 막 패서그럼
바로 복귀시키면 일자리 문제 터질텐데 머리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