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기계기구공업은 부평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부평평야가 기계기구 공업지대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1938년 히로나카상공 부평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히로나카상공에 이어 도쿄자동차공업이 진출하고 국산자동차가 자동차부품공장을 건설함에 따라 부평은 자동차 및 철도차량 제작기지가 되었다. 도쿄자동차공업은 닛산 계통의 히타치제작소가 운영하는 회사로, 1941년 디젤자동차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디젤자동차의 조립 및 광산용 대형차, 군수용 차량을 조립하였다.
부평이 중공업 중심지로 부각되게 되는 것은 닛폰고주파중공업 경인공장과 더불어 각종 병기를 생산하는 인천육군조병창이 부평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수강을 생산하는 닛폰고주파중공업은 성진공장 확장에 이어 부평에 약 200만평 규모의 공장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후 경영난으로 이는 중단되었다.
인천육군조병창은 각종 병기 및 탄약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으로, 월간 생산 능력은 소총 4000정, 총검 2만 정, 소총탄환 70만 발, 포탄 3만 발, 군도 2000정, 차량 200량 등이며, 전시 말기에는 배와 무전기까지 생산하였다. 인천육군조병창은 포탄이나 수류탄 제작 같은 일부 공정을 전국 각지의 철공소나 철공공업조합에 하청하였으며, 병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경인 지역의 중화학공장에서 지원받았다.
- 한국 근대 공업사
부평에 위치했던 인천육군조병창은 일본이 식민지에 세운 유이한 군수공장임.
만주에 있던 남만육군조병창은 만주사변으로 장쭤린의 동삼성 병공창을 낼름 처먹고 이름만 바꾼 거라 일본이 세운 곳은 아님. 그래서 일본이 직접 식민지에 지은 조병창으로는 인천조병창이 유일함.
1937년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보급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계획이 시작되었고 설립에는 고쿠라 조병창이 상당 부분 관여했음
부평문화원이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당초 계획상으로는 월 소총 2만정을 생산하려 했던 모양인데 한국근대공업사에는 월 소총 4000정을 생산했다는 걸로 보아 계획이 축소됐거나 공장의 생산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나 봄
한편 부평역사박물관이 펴낸 개관 10주년 연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월간 생산량은 소총 9천정, 총검 1만정, 소형 폭탄 2천800개, 중형 폭탄 2천개에 달했다고도 함.
제1제조소는 부평, 제2제조소는 평양에 있었음. 인력은 대부분 조선인 강제 노동으로 충당했던 모양임. 특히 일제 말기에는 인근 학교 학생들이 차출되어 학교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기도 했음
해방 후 일본인들은 관련 기록물들을 소각하고 돌아갔고, 조병창 부지는 미군 군수지원사령부가 점령, 미군정의 보급기지로 사용하기 시작했음. 애스컴시티가 바로 여기임
1949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설비를 국군이 인수, 제2조병창으로 개칭했음. 제1조병창은 부산에 있었음. 하지만 재건작업은 1950년 6월 15일에 끝났기 때문에 제2조병창은 재건 직후 6.25에 휘말리게 됨.
그러던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이 탈환, 주한미군의 대표적인 군수기지로 쭈욱 사용하다 1973년 철수했음. 다만 캠프마켓으로 불리는 미 8군 군수품 시설이 남았는데, 주 역할은 빵공장이었음. 최종 반환은 2020년.
그래서 사실 인천육군조병창은 일제강점기 한국 내에 건설된 최대의 군수공장이지만 한국의 방위산업에 기여도는 매우 적음
오히려 부산 동래에 건설된 부산조병창이 한국 군수공업의 산실 역할을 했음. 이곳은 해방 후 일본이 남기고 간 수리공장과 적산기업들을 합병해 세워졌음
광복식 콜트와 대한식 소총을 생산한 곳도 여기임. 한번 불타버렸지만 미8군의 협조로 재건했음. 이곳은 이후 풍산으로 합병되었음
그러다 1973년 기장군 철마면에 국방부 조병창이 별도로 세워졌고 여기서 M16 생산이 이뤄짐. 이곳이 나중에 민간에 불하되어 대우정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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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괴링의 유일한 업적 - dc App
ㅋㅋㅋㅋ - dc App
채병덕의 보호조치 같은 대응조차 못 받은 진해 요항부의 경우 광복직후 미육군의 감독하에 정비창 설비들이 고철로 팔려나갔으니 뭐 나중에 조선해안경비대와 미해안경비대 고문이 확인하고 경악했다지
그래도 진해 해군공창도 나중에 어떻게 복구하긴 한 모양이더라 - dc App
복구 못함 조함창에 있던 계측기들이랑 전동기 시험기등을 미육군 놈들이 죄다 박살낸뒤 고철로 팔아댄탓에 50년대 후반되어서야 미국에서 중고로 들어온 설비들이 많았다고 함 오죽했으면 52년 영국해군이 홍콩으로 귀항대신 진해에서 파병된 함정들 야전정비 여부 확인하러 와서 시설보고 가능하겠다! 외쳤다가 내부 상황보고 포기했겠나 그나마 일본 조병창 출신으로 해방병단에 합류한 정비창분들이 따로 지키고 있던 엔진 설비나 땅속에 숨겨두었던 공구나 자이로스코프 자기교정기 같은거라도 건져서 다행이었다고 함
오우 쉣 - dc App
해방병단이 미육군 24군단 고문들 극혐한 이유가 바다를 너무 모르다보니 해도나 항로기구등을 일본군 잔존품이라고 죄다 폐기시도 한게 컸음 오죽했으면 50년대 평화선두고 일본 어선들 나포할때 일본 어선에서 제일먼저 압수로 챙기던게 해도랑 항해용 항법 기구들이었고 전용기구가 없어서 담배갑으로 작도했다는 증언이 한국과 일본에서 나올정도였음 진짜 버러지같은 미육군 대신 미 해안경비대 요청할만 했어
미육군 고문단이 참 이러저런 에피소드가 많네 - dc App
담뱃갑 작도는 ㅆㅂ... - dc App
그래도 한국전쟁 전까지 국군도 99식 소총을 매주 수백정, 지뢰와 수류탄을 수발씩 생산할 수 있었다니까
도움은 되긴 했음 ㅇㅇ - dc App
북괴쪽의 평양에도 일본 조병창 있다는데 그것도 해줄수 있냐?
아마 2제조소 말하는거같은데 그쪽은 내가 잘 모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