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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갤에 올렸던 걸 역떡 좀 자르고 올림)

도자마 다이묘인 시마즈가의 사쓰마 번은 19세기에 돈이 없는 상태였음.

18세기 중반 막부가 기소가와 치수공사를 시마즈가에 맡기면서 번 재정이 좆작살난데다 그 뒤에도 온갖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좆작살난 재정은 더 지랄이 나버림. 이 상태로 사쓰마는 막부보다 일찍 서양과 마주치게 됨.

사쓰마는 그 어떤 가문보다도 서양의 위협을 절감했던 번이었음. 시마즈가의 영지는 규슈부터 오키나와까지 1200킬로미터에 달했음

사쓰마의 바다는 동남아에서부터 북상하는 유럽 함선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러시아 함선들, 그리고 멕시코를 조지고 캘리에서부터 바다를 건너오기 시작한 미국 포경선단까지 모든 이양선이란 이양선은 다 쳐모이는 바다가 됨.

흑선내항 10년전인 1840년대부터는 아예 영프미 함선이 류큐에 기웃거리기 시작했음. 이건 당연히 류큐의 비공식적 상전인 사쓰마 귀에도 들어감.

좆됐다고 직감한 사쓰마는 서양 포술(군사학)을 채택하고 주조공장과 플린트락 소총을 제작해 대비했음. 물론 이만으로는 부족하니 철제 대포와 서양 군함을 건조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어 시발 돈이 없네?

이래서 1857년부터 시작된 게 바로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슈세이칸 사업임. 서양식 반사로를 시작으로 제철업과 조선산업, 그리고 돛을 만들기 위한 방적산업 3개를 본격적으로 추진함. 이 급진성은 당시 일본 그 어떤 번과 심지어 막부마저도 능가함.

이 사업으로 해볼만 한데 하고 근자감이 충만해진 사쓰마는 사쓰에이 전쟁에서 영국한테 한판 붙자고 했다가 작살이 났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힘의 차이를 더욱 절감하고 난학자들을 중심으로 몰래 19명의 사절단을 영국에 파견,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

1864년 가이세이쇼라는 서양식 학교가 가고시마 조카마치에 세워졌고 슈세이칸 산업단지에도 본격적으로 대포제작용 천공기 공장, 주물, 목공, 제재소, 화약 제작용 제약소 등이 작업을 시작했음.

그리고 백설탕 제조기기를 사와서 아마미랑 류큐산 당을 백당으로 제조했고 이걸 수출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근대화와 유학생 파견비용에 투자함.

이렇게 사쓰마는 막말에 가장 산업화된 지역이 되었음. 막부도 서세동점 위기를 앞두고 서양에 가장 이해도가 높았던 사쓰마를 존중하고 그 노하우를 이용하려 했음.

막부는 국가적 위기에 앞서서 도자마 다이묘들까지 불러들여 문제를 논의했지만 이건 다시 후다이 다이묘들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도자마가 지 목소리를 내면서 막부의 독점적인 권위는 땅을 뚫고 떨어짐.

이 기회를 잡은 건 그동안 가장 잘 준비되었던 사쓰마였고, 사쓰마는 막부에 가장 불만이 많았던 조슈와 함께 막부를 조져버린 뒤 일본 제국을 만듦.

그리고 사쓰마가 건설한 산업단지는 세이난 전쟁을 앞두고 일본 신정부가 긴빠이쳐서 가져감



출처
일본 개항 전후의 시마즈 가문과 슈세이칸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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