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전 지역은 38선이 생길 당시에는 북한 산하에 있었는데
6·25전쟁 당시 철원 주민들의 이동 경로는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철원에서 월남한 부류로 당시 전체 철원 주민의 5% 미만이다.
두 번째가 1950년 가을 인민군들이 퇴각 할 때 북으로 올라간 부류이다. 자습당원이나 열성당원들은 이미 인민군의 전세를 알고 자진 월북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철원 주민들은 세포위원장과 인민위원장의 지시와 인민군에 의해 강제 납치되어 북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남자들은 차출되어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특히 월북자가 많았던 부락은 이길리, 내대리, 독검리, 김화 근북면, 관우리, 군탄리 등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철원군 전체 주민의 70% 이상이 북으로 갔다.
세 번째가 1951년 1·4후퇴 때와 봄에 미군들에 의한 주민 소개 작전 때 후방으로 강제 이주된 부류이다. 이들 대부분은 인민군의 강제 월북과 징집을 피해 숨어 있던 사람들이며, 전체 철원 주민들의 20% 내외이다
1950년 11월 중공군이 개입하여 남하하자 미군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안전지대인 포천 지역으로 소개(疏開)하였고, 철원 피난민 1차 집결지는 경기도 포천 문하리[지금의 양문 근처]였다
포천 문하리에서는 피난민 중 장정들을 차출하여 전방에서 전투 중인 미군이나 국군을 지원하는 노무부대를 편성해 다시 전방으로 투입하였고, 나머지는 다시 2차로 서울 광나루나 천호동으로 소개되었다.
(현 43번 국도를 따라 이동)
전쟁이 끝나자 남쪽에 피난간 철원 출신 피난민이 돌아왔지만
북쪽으로 끌려가거나 전쟁 중 행방 불명된 인원이 많아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인원은 전쟁전의 15퍼센트 내외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이전 철원군 지도에 휴전선을 그은 그림
- dc official App
처음런한 5% 진짜 빠르내 ㄷㄷ
나는 아버지가 6.25 전에 아주어렸을때 김화군에서 살다가 피란하셨다던데 3번째인가. 두번째지도 옆쪽에 김화라 써져있는데 지금은 북한지역빼고는 철원군으로 통폐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