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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으로 조선이 기존에 쌓아온 군제가 박살이 난 1895년, 친일내각 주도로 신식군대인 훈련대와 시위대가 조직되었음.

이때 포함되지 못한 구식군대를 중심으로 13개의 신설대가 구성되었음. 8개 대는 공병, 3개 대가 마병(기병), 2개 대가 치중병이 되었음.

그러다 1895년 훈련대는 일본군과 함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9월에 해체당했고, 대신 친위대가 설립됨. 훈련은 1896년부터 대규모로 들어온 러시아 군사고문들이 담당함.

이때 신설대 중 왕실에 대한 호위를 담당하던 공병 8개 대대는 칙령 121호로 6개 대대로 감축되었음. 그러다 지방반란 진압으로 친위대 증원이 필요해지자 친위 3, 4, 5대대를 편성하는 데 사용되었음.

친위 3대대 편성 시에는 신검을 실시해서 엄격하게 선발했지만 나머지 4대대랑 5대대는 딱히 신검 없이 잔여 공병대원들로 채웠다 함. 그러고도 부족한 250명은 치중병 중에서 채웠고.

마병대의 경우에는 1896년 6월 8일에 친위대가 친위기병 1개중대를 신설할 때 포함됨. 이날 기존의 마병대 2개 대대(4개 중대)가 폐지되고 1개 중대가 선발되었음. 동시에 이전 마병대 중에서 100명을 선발해 보급부대인 치중마병을 설치했다고 함

이렇게 친위대는 총병력 4,600명을 확보했음. 하지만 1897년 3월 시위대가 재창설되자 러시아식 군사교육을 받은 정예병들을 내주고 1개연대 예하 3개 대대로 감축됨.

그러다 1900년 친위 제1연대에 공병 1개 중대와 치중중대를 배속시키면서 친위대는 3,400명으로 늘어났고, 1902년에는 1개 대대를 증설해 4개 대대를 각 2대대씩 가진 친위 1연대와 2연대로 나눠짐.

한편 친위대 3, 4, 5개 대대에 포함되지 못하고 해산된 공병대 잔여장병들 중에서 선발된 인원들이 호위군, 나아가 호위대가 되었다고 함

지방군의 경우 갑오개혁때 친일내각이 지방군과 수군을 대책없이 싸그리 폐지하는 바람에 항상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렸음

그러다 잔존 구식군인들을 추려 1896년에 지방대를 설치했음. 이들은 1898년 14개 대로 대대적으로 증편되었다가 1900년에 신식 지방군인 진위대에 합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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