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단 편제가 한국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02년 8월 25일 칙령 15호로 혼성여단 편제가 등장하면서임.
군사교범인 보병조전에도 여단을 어떻게 꾸리냐가 기술되어 있고, 관병식(열병식) 때에 친위/시위대를 중심으로 혼성여단을 구성함
다만 상설은 아니었고 사실상 관병식 때 구성되는 임시편제에 가까웠음. 보병조전에도 여단 운용에 대해서는 많이 기술되어 있지 않음.
당시 한국군의 최대규모 전투제대는 중앙군 4개, 그리고 지방군 6개 연대였음. 그리고 실질적인 주력은 대대급이었고.
청일전쟁 당시 청일 양국과 친일내각이 개판을 쳐 놓고 을미사변까지 벌어져서 숙군하느라 군제가 엉망이었던 것을 1896년부터 다시 재건하면서 상급제대를 운영할 노하우가 없었을 것임. 돈도 돈이지만.
그러다 혼성여단 편제가 상설로 등장하는 것은 1907년 4월 2차 군축 때임. 일본은 한국군을 감축하면서 고종의 조칙이라는 명목으로 잔여부대들을 혼성여단으로 꾸림.
시위대 2개 보병연대, 기포공 각 1중대를 포함했고 병력수는 약 5800명임.
그러나 일본은 이미 한국군을 아예 없애버리려 마음먹은 상태였고, 이들은 1907년 7월 31일 해산되었음. 최후의 여단장인 양성환 참장과 참모들이 해산 정보를 최초로 들었음.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일 해산식이 훈련원에서 개최되었지만 박승환 참령의 자결을 계기로 시위 1연대 1대대와 2연대 1대대가 봉기하며 남대문 전투가 발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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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단 6주는 넘게 버텼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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