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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갤에 올린 글 조금 손봐서 올림)

우선 고려초 북진정책을 통해 평양 이북 지역을 장악했지만 이 지역은 고구려 멸망 이래로 신라-발해 접경지라 완전히 폐허였음. 만주일대에서 남하해 온 여진족도 우글거렸고.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고려였던데다 요나라에 맞서 북방 경계를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재개발에 들어갔고 평양성도 새로 세워 양경의 지위를 부여함.

재밌는 건 이때 발해유민들과 여진족들이 대거 내투해 양계에 정착했음. 왕건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정착시키려 했고. 이 사람들은 고려 초만해도 국내에 거주하는 이민족 취급을 받음.

천리장성이 축조되어서 국경 경계가 명확해지자 이 내투 여진족은 장성 이북 여진족과 분리되었고 고려 정부는 여기에 기미주를 설치함. 그리고 주진군과는 별도로 부족 단위 그대로 군사적으로 활용하려 했음.

12세기 초에 이르면 고려 양계의 여진인들은 고려의 여진인이 되어 금나라로 송환하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 됨.

하지만 고려 정부는 여진인만 북계에 정착시킨 게 아님. 신개척지 인구 보충을 위해 패서지방에서 고려인들을 대거 북방으로 사민시켰음. 이 중에는 지주나 향리도 있었고 이들은 점차 북방의 지방유력자들로 성장함.

한편으로 현종 대부터 주진군의 지휘관인 도령들이 성장함. 점차 특정 가문들이 도령의 지휘를 세습하는 모습까지도 확인된다니깐?

그리고 이 모든 주민들은 12세기가 되면 상호 교류 끝에 공통의 '변경인' 정체성을 형성했음. 그리고 금나라가 등장한 후 정부에서 이들을 번이라 부르며 차별하자 폭발했는데

그게 바로 조위총의 난임.


출처
고려 전기 북계민의 형성과 그 집단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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