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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섬으로 둘러싸인 이 해역이 중국대륙으로 나가는 먼 바다와 목포를 비롯한 한반도 육지부와 연결되는 시하바다로 통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공간적 특징은 일본해군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일본해군은 팔구포 해역의 중심인 옥도에 ‘八口浦防備隊’를 비밀리에 설치하였고,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일본해군이 옥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한 이유는 무엇보다 지리적인 특성상 지역의 해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일본은 옥도가 “나주군도 내해의 거의 중앙에 있어 남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위치”에 해당된다고 인식하였다. 옥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섬들이 감싸져 있고, 물길이 여러 루트로 열려있다. 이곳에 해군 선박이 정박을 하고 있을 시 어느 지역으로든 출동이나 퇴각이 매우 편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옥도주민들 사이에는 “옥도에 정박한 함정이 한꺼번에 8개 방향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하여 팔구포라고 불렀다”는 지명 유래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남쪽 50리 거리 해상에 自羅 玉島가 있다. 일명 八口灣으로 海路의 요충지이다. 또 군함정박에 편리하다. 일본함대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거함 수십 척이 항상 이곳에 모여 정박되어 있다. 양식 땔감 석탄 식용물품을 파는 배가 玉島에 두루 가득 차 있다. 갑자기 바다 가운데 큰 시장이 이루어진 것 같다."


러일전쟁시 해상에서 격전이 이루어진 곳은 인천 앞바다였지만, 그 후방인 서남해 도서에 자국의 함선을 집결시켜 놓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요충지로 활용 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함선을 戰場으로 기동력 있게 출격시킬 수 있는 근거지 기능을 한 것이다.




팔구포는 서해와 남해 연결부위에 위치했기에 조선 시대부터 목포진 관할 하의 수군 주둔지로 이용되었음. 이순신 함대가 정유재란 당시 주둔했었던 지역도 이 근처인 고하도임.

청일전쟁 시기에는 일본해군의 제1 집결지였고,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이 불법적으로 슬금슬금 섬의 토지를 매입해 군사기지를 건설함. 러일전쟁 당시에도 뤼순항 공격에 앞서 전진기지로 쓰였고.

조선 최초로 무선전신기지가 목포랑 연동되어서 설치되었고, 기상관측, 식수공급 기지로 주로 쓰임.  특히 중앙부 옥도는 깨끗한 물이 많이 나고 우물이 많아서 가장 좋은 식수처였음.

주민들 구전으로는 1936년까지 일본해군이 주둔했었고, 옥도에 비행장을 건설하려 했다는 썰도 있음.

일본 입장에선 중국 방면으로 해군을 진출시킬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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