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초의 워게임이 무엇인가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감. 바둑, 장기, 체스 같은 군대를 모사한듯한 기물들을 통해서 고대에도 그런 비슷한게 있었겠구나, 하고 짐작해볼 수 있음.
그렇지만 군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통계적 자료까지 분석해서 룰에 반영한 워게임은 Kriegsspiel이 최초라고 할 수 있겠음.
올해는 Kriegsspiel이 세상에 나온지 201년째 되는 해임.
군대라는 집단이 다 그렇겠지만, 처음 크릭스피엘이 고안되었을때는 흔히 말하는 똥별 꼰대들의 반대가 있었음. 아마 그들의 눈에는 장교들이 하라는 전술교리분석은 안하고 보드게임이나 쳐 하려는것으로 보였을 것임.
그러나 이를 옹호한 젊은 장교들은 군사 이론가, 부대 지휘관, 육군 참모총장으로써 두각을 나타냈고 워게임은 단순한 전술 뿐 아니라 철도 물류, 사상자 관리, 대규모 전역 워게임까지 확장되었음.
Kriegsspiel은 처음에는 프로이센 내부에서만 하던것이었으나 보불전쟁의 대성공 이후 독일의 참모제도와 함께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고 독일 해군도 이 워게임의 해상버전을 도입하게 되는 계기가 됨.
독일의 역사학과 연구소 선임 강사인 Jorit Wintjes는
Kriegsspiel의 역사에서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워게임의 요점들이 존재한다고 함.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갔고 몇가지 중복되는 항목은 쳐냈으니 알아서 판단하길)
1. 워게임의 목적은 명확해야함.
워게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점은 참가자들이 워게임에서 얻어야 하는것이 무엇인가? 임. 교육 목표가 명확할수록 워게임의 효과는 극대화됨.
2. 워게임은 교육을 위한 도구임.
워게임은 실제 전쟁을 정확하게 반영해주는 시뮬레이션이 아님. 워게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사결정이나 사건들은 항상 단일 워게임에서 다루기 어려운(혹은 불가능한) 수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게 됨.
따라서 성공적인 워게임이란, 필연적으로 좁은 범위의 요소에 초점을 맞추게 됨. 이게 무슨 뜻이냐면, 현실적인것에 너무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서 오만 잡스러운 변수가 게임에 들어가게 되면 교육이라는 워게임의 본질을 해치게 됨.
워게임의 목적은 전쟁자체를 예측해서 장교들을 무슨 전쟁의 모든요소를 관심법으로 내다보는 초인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지휘관들의 전술능력을 배양하는 것임.
이건 워게임의 장점이자 한계임.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플레이하는 워게임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야 함.
3. 접근성.
일반적인 워게임에서 참가자는 워게임의 규칙과 상호 작용하게됨. 복잡한 규칙은 워게임을 실제로 실행하기 전에 상당한 양의 준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참가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음. 워게임을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지한다는 것은 규칙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진행자 중심의 워게임에도 거의 마찬가지. 복잡성은 때로는 피할 수 없고 전문 군사 교육에서 크고 복잡한 워게임을 위한 자리가 있지만, 특히 워게임에 처음 노출되는 경우 항상 간단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워게임도 있어야 함.
4. 참가자의 기대치를 어느정도 관리해야함.
워게임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추상적인 모델이고,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이지만 계획을 세우는것은 중요하다는 명언처럼 워게임의 목적이 성공적인 "교육"이라는걸 참가자가 인식하도록 해야 됨. 특히 플레이어가 실전경험이 있다면 워게임 자체의 현실성을 평가하면서 실제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훈수를 쳐 두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기대치를 낮춰주는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고, 그렇게 하기 위한 일반적인 도구이자 모든 교육목적 워게임의 중요한 부분은 워게임에 디자인 노트를 포함하는 것임.
5. 단지 플레이 하는것만이 중요한것은 아님.
워게임을 교육목적으로 사용할때는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함. 워게임은 KCTC와 비슷함. 이기는것 자체가 목적이 아님. 예를 들면 룰의 허점을 악용하는것,(마치 국군 워게임 참가자들이 1인 수색대 꼼수로 손실없이 정찰하는것과 같은 그런것)또는 게임의 승패가 룰의 이해도에 따라 갈리는것 같은 경우 진행자 또는 심판은 사후 분석에서 교육적 목표에 집중해야 함. 이긴쪽이 "하지만 이겼쥬?"라고 주장하여 비판을 무시하는 것은 상당히 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교육적 목표에 집중하는것은 어려운 작업이 될 수 있음.
라이스비츠의 워게임(Kriegsspiel)은 프로이센 장교들에게 전장 전술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교육 도구였음. 따라서 최대한의 사실성을 목표로 했으며 플레이어들은 19세기 초에 전투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어야 했음.
이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규칙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심판에게 중재를 요청해야 했기 때문임.
라이스비츠가 작성한 Kriegsspiel 메뉴얼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것이 아니라 19세기의 장교로써 다른 장교들을 대상으로 작성한것이었음.
이 워게임은 고정된 승리 조건이 없는 개방형 게임이었음. 각 팀의 목표는 심판이 결정하고, 군대가 실제 전장 상황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목표와 유사함. 예를 들면 어떤 지역에서 방어군을 몰아내거나 적에게 일정수준의 사상자를 내는것 등이 목표로 설정되곤 했음.
흥미로운점은 이 게임이 마치 요즘 RTS 게임의 "전장의 안개"(관측 가능한 거리까지만 적이 보이는 기능)를 구현하려 했다는거임.
짤처럼 간단하게 칸막이만 세워놓기도 했지만
1862년도 개정룰은 아예 게임 진행을 3개의 방으로 나눠서 각 팀이 있는 방 사이에 진행자(심판)이 있는 방이 있어서, 모든 진행상황을 진행자가 있는 방에서 관리하고 상대편 병력이 시야에 들어오면 진행자가 그 자리에 기물을 놓는 식이었음.
라이스비츠는 4대4 에서 6대6의 인원을 권장했는데, 입으로 말을 해서 서로 의사소통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었음.
무전기 따위는 없던 그 당시 대부분의 지휘가 명령서 전달로 이루어졌기 때문임. 즉, 플레이어들은 모든 명령을 종이에 적어서 진행자에게 전달해야 했음.
지도는 실제 작전지도와 유사한 1:8000축척의 눈금이 새겨진 지도를 사용했고, 모든 부대는 그 부대의 표식이 새겨진 직사각형의 납덩이를 사용했음(요즘 이걸 플레이 할때는 플라스틱 조각을 사용함).
부대 조각의 크기는 실제 해당되는 부대의 진형이 지도에서 차지하는 크기를 고려해서 만들어졌음.
Kriegsspiel이 진행되는 양상은 대략 이러함.
심판이 각 팀의 작전목표와 병력구성, 그 병력의 초기 배치상태를 정함.
이때 각 팀은 팀원마다 병력을 분할하고 당시 프로이센 군사교리를 기반으로 지휘체계를 수립해야함.
위에서 게임이 명령서 전달로 진행된다고 언급했었는데
당연하게도 명령서가 전달될때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심판은 플레이어에게 받은 명령서를 바로 반영하지 않고 한두턴 가지고 있다가 그걸 바탕으로 부대를 이동시킴.
근데 재수 없으면 무려 명령서가 적에게 탈취당할수도 있음ㅋㅋ
또 지도상의 모든 조작권한은 심판에게 있기 때문에 명령서를 제대로 작성해야 했음. 심판이 부대가 플레이어의 명령을 어떻게 해석해서 움직일지 판단했기 때문에 명령서에 오류라도 있다면 나폴레옹 전쟁에서 그랬듯 부대가 산으로가는 진풍경이 펼쳐질 수도 있었기 때문임.
또한 전장의 안개 기능도 심판이 시야 계산해서 일일이 기물을 놓아야 했음.
특이한점은 여타 다른 게임과 달리 플레이어 자신(및 경호부대 포함)을 나타내는 기물이 존재한다는 거임.
이 장교 기물의 위치에 따라서 명령전달시간도 달라졌고
심지어 이 기물이 적에게 공격받아 장교가 전사하면 그 플레이어는 게임내내 플레이를 할 수 없었음.
죽었으니까 ㅋㅋㅋㅋ
기본적으로 턴제 게임인데
재미있는건, 보통의 턴제 게임들처럼 니턴 내턴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한턴에 양측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임.
한턴은 대략 2분이었고
모든 부대는 부대 유형이나 지형상황에 따라 한턴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정해져 있었음.
대충 기병이 숲에서 1피트 들판에서 2피트 뭐 이런식.
심판은 5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각종 피해판정을 내리는데
그림에서 보이는것처럼 다양한 상황의 교전피해가 주사위에 나타나게 되어있음.
첫번째 주사위는 개활지 백병전에서 싸우는 보병과 산병이 입힌 원거리 피해의 규모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고, 양측의 전투력이 비슷할 때와 곡사포 공격으로 마을에 불이 붙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됨.
두번째 주사위는 엄폐물에서 사격하는 산병의 원거리 피해와 승산이 3:2일 때의 백병전 결과를 판단하는 데 사용됨.
세번째 주사위는 양호한 조건에서 포병에 의해 발생한 피해를 판별하는 데 사용됨.
네번째 주사위는 승산이 3:1일 때 백병전의 결과를 판단하는데 사용됨.
다섯번째 주사위는 악조건에서 포병에 의해 발생한 피해 혹은 승산이 4:1일 때의 백병전 결과를 판단하는 데 사용됨.
(각종 교전과 피해를 계산하는데 사용된 표의 모습)
각 유닛에는 포인트 값이 있는데, 이는 해당 유닛이 죽기전에 흡수할 수 있는 피해 포인트를 나타냄. 현대 게임에서의 HP라고 보면 됨. 유닛이 가진 체력의 수는 유닛 유형, 그 안의 사람 수, 그리고 그들의 편성에 따라 결정됨. 예를 들어, 90명의 기병이 있는 기병 중대는 체력이 60이고. 450명의 보병 대대는 체력이 90. 개별 기병 기병은 보병1보다 더 강한데(기병당 체력 1.5 대 보병당 체력 0.2). 왜냐하면 통계적으로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느슨한 대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집중포격을 받아도 사상자가 적었기 때문임
기물이 모든 체력을 잃으면 말 그대로 지도에서 제거되는데, 보병대는 좀 달랐음. 보병대에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진형에 빈틈이 생기는걸 구현해야 했기 때문임. 기병대가 전열의 빈틈으로 파고드는걸 구현하려했다고 생각하면 편함. 보통 이런 상황에 빈틈을 틀어막을 예비대가 없다면 그건 재앙이었음. 이 현상을 게임 지도에 표현하기 위해서 이 게임은 교환기물이라는걸 사용함. 교환기물은 일반적인 대대 기물과 비슷하지만 분수 5/6 또는 4/6 으로 표시 되어 해당 대대가 병력의 1/6 또는 2/6을 잃었음을 나타내는것임.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대 진형의 크기를 실제와 유사하게 지도위에서 표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 교환기물은 대대기물보다 길이가 짧았음. 병력을 많이 잃었을수록 그만큼 더 짧아졌음.
4/6보다 작은 교환기물은 없었음. 왜냐면 통계적으로 병력의 50%를 상실한 대대는 전투에서 효과가 없다고 간주했고 보통은 이 시점에서 모랄빵이 나서 전장에서 도망쳤기 때문임.
보통 50%의 피해를 입으면 전멸판정이라는데 아마 여기에서 비롯된것일지도.
해당 워게임에서는 심판의 피해판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피해를 입은 기물 앞에 핀을 꽂았음. 전멸판정이 뜰때까지 핀이 꽂히면 해당부대는 제거되는식이었음.
또 시대에 따라 룰이 바뀌면서 각종 수치들이 수정되기도 했음.
예를 들면 1862년 룰에서는 프로이센군 무장이 드라이제 후장식 소총으로 바뀐걸 반영해서 사거리 400보에서 600보로 늘렸다던지, 대대를 기준으로 한 보병대 기물이 중대를 기준으로 하도록 바뀌어서 교환기물이 사라졌다던지 하는 변화가 있었음.
이거 보다보면 워해머 보드게임이랑 아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을텐데 맞음. 미니어처를 사용하는 보드게임들은 대부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놈이 있었음.
하 씨발 별 좆같은게 다 금지어네
- dc official App
기병체력빵빵한거보소 ㅋㅋ
이런거 보면 볼수록 밸런스 어떻게 맞춘건지 궁금해짐 엄청 빡셀거같은데
일단 적이든 아군이든 기물 성능은 같았고, 시나리오 지형에 따라 유불리가 있다고 해도 심판이 승리 조건을 결정했기 때문에 밸런스에 큰 문제는 없었을거라고 봄. 애초에 이기고 지는걸 따지는 게임이 아니니까 - dc App
나도 모르게 밸런스라고 해 버렸네; 실제 현실이랑 게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맞춘거냔 말이었음.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잡는게 꽤 힘들 것 같아서
토탈워 월인컨 워게임시리즈 등의 조상 개추
본인 어버버 하다가 군대 다 말아먹고 방출될 자신 있음
재밌네 ㅋㅋ
명령서를 그지같이 쓰면 산으로 가는 시스템은 ㄹㅇㅋㅋㅋㅋㅋㅋ
시스템 같은 거창한게 있다기보단 심판에게 명령을 오해할 여지를 주지 말라는것에 가까움. 크림전쟁때 영국군 명령서에 점하나 잘못 찍힌것 때문에 기병 꼴박한거 생각하면 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