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중국인 폭탄기술자 왕바이슈, 김구, 김홍일)
동경사건이 전하자 미주와 하와이 동.포들로부터 많은 편지가 오고, 그 중에는 이번 중일전쟁에 우리도 한몫 끼여 중국을 도와서 일본과 싸우는 일을 하라는 이들도 있고, 적당한 사업을 한다면 거기 필요한 돈을 마련하마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중일전쟁에 한몫 끼이기는 임갈굴정(臨渴掘井)이라 준비도 없이 무엇을 하랴. 나는 한인 중에 일본 군중에 노동자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그 비행기 격납고와 군수품 창고에 연소탄을 장치하여 이것을 태워버릴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송호협정(淞滬協定)으로 중국이 일본에 굴복하여 상해전쟁이 끝을 맺으니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 김구(당시 임정 주석)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계제에 본격적인 중일전쟁을 일으켜 기어이 일제에 대한 원한을 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독립군은 만주사변을 계기로 중국의 敗散兵(패산병)과 抗日(항일) 연합군을 형성하여 각지에서 부지런히 일군과 싸웠다. (중략)
이러한 중국정부의 너무나 소극적인 대일정책에 분격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 민심을 자극하여 정부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기필 중일전쟁을 발발시켜야 하겠다는 것이 당시 중국에 있던 우리 독립 지사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
- 김홍일(당시 상해 19로군 정보국장)
1930년대 초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임정은 때마침 한인애국단을 결성해서 독립운동을 다시 활성화하려 했지만 동맹이 필요했음. 만보산사건으로 중국인들의 반한인식이 최악을 달리던 시기라 이거 뒤집을 필요도 있었고.
때마침 만주사변이 터져서 만주가 싸그리 일본에 먹히고 상하이에서까지 일본군이 깔짝거리자 연합전선 형성 기회가 오나 싶었는데, 막상 장제스가 아무 대응 안하면서(정확히는 못한 것에 가깝지만) 초공전만 하고 있으니까 이건 수포로 돌아감.
정황상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임정도 장제스의 이 행태에 오지게 답답함을 느꼈던 모양임. 그래서 한국독립운동을 활성화할 겸 일본에 대한 복수도 할 겸 장제스에게 확실하게 대일항전노선을 강제할 겸 야심차게 추진한 것이 이봉창 사건인듯.
일단 적어도 김홍일은 자서전에 쓴 것처럼 중국 정부 속터진다면서 확실히 전쟁을 원했음
출처
백범일지
대륙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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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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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코딩하냐
저런 사정이 있었구나
ㅇㅇ - dc A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