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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고기!!!’
주워 든 삐라에는 하전사 하나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바라보며 눈가가 매운지 눈물을 닦으며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얼마나 이 자리를 지켰는지, 내린 비에 색은 빠지고 묻은 흙이 침전되어 중구난방에 색이 섞였지만,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만큼은 탐스러웠다. 어쩐지 괴기 냄새가 코를 스치듯, 코끝을 괴롭히며 내 눈을 감고 상상하게 했다.
낙엽과 땔감을 모아 붙인 뜨거운 불에 잡은 돼지를 통으로 올려선 조금씩 돌려 구워 익은 부위에 칼을 넣어 쓱쓱 잘라, 소금 쳐서 뜨거운 상태로 입에 넣는, 입술은 번들번들 기름기가 오르고 식도부터 창자까지 기름칠할 때 명절이나 돼야 먹는 맥주 하나 탁하고 까서 마시고 싶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행복한 상상을 깨는 꼬르륵 소리, 이놈의 몸뚱어리도 제때는 아는 것처럼 배에선 밥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병영식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없는 나였지만, 아까 했던 상상 때문일까? 조금은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기에 서둘러 정찰 작전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야~ 인제 가자!”
그제야 주위에 매복했던 같은 분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때맞춰 진지로 돌아갔다. 바닥에 발로 이리저리 살살 긁어가며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지뢰를 보며 줄 맞춰 산을 올랐다. 선두에선 내가 분대를 지휘하며 산을 탔다. 그런 바로 내 뒤에서 따라오는 신출내기끼리 서로 오늘은 무슨 밥이 나올지 서로 기대하며 이야기했다.
“오늘은 깡타이에 무3형제가 나올까?”
“야~ 그건 어제도 나왔어야. 오늘이 거의 말일인데 돈수대근탕이라도 나오지 않겠어?”
‘어림도 없다. 깡타이에 무3형제가 오늘 병영식이다. 이놈들아’하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비지땀 흘려가며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 밥에 기대하곤 흥얼거리며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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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이에 소금탕, 염장무 조금, 강냉이 가루를 풀고 물을 많이 넣어 죽처럼 된 강타이, 간장 졸여 만든 소금으로 만든 탕과 언제 담았는지도 모를 누렇게 삭은 염장무, 기대는커녕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 밥인지 죽인지 밥에선 쉰 듯한 고얀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 주위 분대원들을 돌아봤다. 신참은 어디로 들어가는지 고개를 처박고 흡입하고 있고 여기 오래 있던 나와 부분대장, 그리고 몇몇 분대원들은 조금씩 배를 채우려고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이것마저 안 먹으면 진짜 배곯을 수밖에 없기에 어떻게든 쑤셔 넣었다. 내 입은 더 이상 맛을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 저작운동, 씹기밖에 하지 않았다. 질겅질겅 씹어대는 입안에서는 침과 뒤섞여 조금은 단맛이 났다. 목이 조금 막히면 찌름한 군내나는 소금탕 한 숟가락에 정신 차리고 염장무에 손을 댔다.
국을 받아먹으며 조금 전에 봤던 불고기 그림이 생각났다. 오늘 잘 때 이 그림을 바라보며 불고기 먹는 상상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린고비라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그림을 살짝 꺼내어 번갈아 보며 먹으려는 찰나, 뒤에서 나타난 보위군관 하나가 팔을 낚아채며 삐라를 뺏어가며 말했다.
“뭐이가 이거? ‘아― 불고기’? 야이 새끼야! 과업 수행하라고 보낸 작전에 이딴 그림에 미혹되어 장군님이 하사하신 식사도 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그러더니 반 넘게 남은 밥그릇을 홱 하고 뺏어가더니 말했다.
“이 새끼는 굶어봐야 정신 차리지!”
개새끼도 밥 먹을 땐 건들지 않는다고 했건만, 내 쟁반에 소금탕과 염장무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안 그래도 비어 있는 쟁반이 더 깔끔해졌다.
“잘 보라! 대가리가 이러면 너희들도 나가리야! 항상 장군님 생각하며 국가를 위해 봉사할 생각을 하라!”
그는 우리를 가르치는 듯이 삿대질해 가며 성토했다. 나치즘의 히틀러가 그랬을까. 아니면 크라이막스의 연설이 이랬을까. 어떤 사상가의 성토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억울함?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저기서 잘못 말하면 어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작달막한 젊은 사상가의 성토가 끝나고 나는 무척이나 비참해졌다. 불고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밥에 괴깃국? 내게는 사치다. 코 앞에 있는 강타이라도 감사히 먹어야 했건만,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며 고개를 숙이곤 이내 무3형제를 신참에게 나눠주곤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머리에선 불고기의 그림이 그려지고 빈 위장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강가에서 주운 돌판을 깨끗하게 닦고 모닥불 위에 얹어 살짝 마르기를 기다린다. 어느 정도 판이 말랐으면 흰 살을 올려 다시 한번 불판을 닦아주고 돝고기 올려 바싹 구워 흙 김치에 시원하게 싸서 먹으면 입안에서는 돝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돌고 기름기가 올라올 때, 작년에 담은 흙김치가 시큼하게 입안을 깨워준다.
고기 먹는 상상에 배는 더 고파져서 시름시름 앓는 이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입안에 침을 이리저리 돌려 억지로 단맛을 느끼며 뭐라도 씹는 척했다. 아― 불고기여 내가 그림 속 사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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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11시, 나는 늘 그렇듯, 강냉이 죽밥에 소금국 한 입하고 나와선 남한 GP가 보이는 전연 소초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주말 낮에는 남쪽 아이들도 느긋하게 생활하는 듯이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보통은 전연 초소 안에서 족구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잘 먹어 몸 좋은 애들이 허연 피부에 웃통을 벗은 채 공에 발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으며 그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초소 안쪽에 문이 열리더니 껄렁거리는 놈 하나가 나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뭘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곧 밥 먹을 때인데 뭘 저리 맛있게 먹고 있나’하고 유심히 보니, 누런색 설기빵 같은 것을 우유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이야 고놈 맛있겠다!’ 하며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하고 목젖 뒤로 넘겼다. 빵 하나에 목이 텁텁해지면 고소한 우유로 막힌 도로를 뚫고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혓바닥으로 핥으며 느껴지는 단맛에 기분이 또 좋고… 개인적으론 팥소빵이 더 좋긴 하나 뭐라도 한입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부러워했다.
고놈 설기빵 다 먹으니 다른 빵을 또 하나 꺼내며 입에 가져다 댄다. 빵 단면에 거무칙칙한 모습이 마치 팥소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팥소빵, 어머니가 장마당에 몰래 다녀와선 동생과 형 몰래 먹으라고 고사리손에 쥐여주던 팥소빵 작은 덩이를 혹여나 뺏길까. 몰래 들고 변소간에서 아껴먹던 그 생각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쌍안경을 잠시 내려두고 울컥해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몸을 뒤로 누었다. 초소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가족 생각을 했다. 지난 고난의 행군 때, 어머니는 배곯고 장 나갔다가 돌림병에 걸려 돌아가셨고 일하러 가신 아버지는 중국에서 연락이 끊겼다. 형제들은 어디가 죽었는지 소식도 모른 채 다 떨어져 살고 나만 몸 보전해서 군대에 입대했다.
지금은 입에 풀칠할 걱정할 필요 없이 먹고 산다고는 하지만 난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 장마당에 다녀오실 때마다 먹을 거 하나를 꼭 들고 오시던 어머니, 중국에 다녀오시느라 집엔 잘 안 계셨지만 내게 중국제 장난감 하나를 꼭 사주시던 아버지, 날 항상 지켜주는 형, 내가 유난히 귀여워했던 막내.
이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이 난 그리웠다. 빌어먹을 팥소빵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추억에 젖을 수 있단 말인가. 예부터 생각했지만, 음식이란 참 신기하다. 음식 하나에 좋아했던 추억을 머리에 수놓기도 하고 목인석심의 마음을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아닌가?
‘난 그런 남쪽을 동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어느새 들었다. 난 누웠던 몸을 일으켜 앉아 놀고 있던 그들을 다시금 바라봤다.
빵을 먹던 그놈도 다 먹었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족구 경기를 관망만 하고 있었다. 비지땀 구슬구슬 흐르듯 온몸을 적시니 부드러워 보이는 천에 얼굴 한번 닦아내며 이곳에선 볼 수 없는 웃음이 활개 쳤다.
그런 그들의 뒤편으로 검은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수호하라. 자유대한’이라는 글이 보였다. 초소에서 근무할 때마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스쳐 가며 바라봤던 글귀였으나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자유대한이라… 저곳에서는 고기 삶은 국과 강냉이 듬뿍 들어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주시던 팥소빵 한 덩이 먹을 수 있을까. 나는 결정해야만 했다. 둘 중 하나, 이곳에 남아 계속 배곯으며 생활할 것인지. 아니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넘어가서 자유의 맛과 향을 느끼는지.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했나? 짧은 고민 끝에 난 선택했다. 오늘 새벽, 이곳에서 탈출해 자유의 땅 한번 밟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여나 죽으면, 난 어머니 만나는 것이다. 형제들 소식은 모르고 아버지도 중국에서 연락이 끊겼다. 내게 밑질 것은 또 뭔가? 떠나자. 새벽엔 순찰 근무 때 도망치면 될 것 같다.
최소 2km… 달리면 10분도 채 안 걸릴 거리다. 초소 안에 앉아서 이리저리 생각했다. 내가 언제 순찰이었는지. 누구랑 함께 순찰하는지. 어디서 도망칠 것인지. 얼마나 걸릴지. 등등… 앉은 채 계획을 세우며 조금씩 준비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성공하는 게 더 좋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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줴기밥과 절인 오이가 저녁에 나오기에 절인 오이 하나를 몽땅 비우고 내 몫으로 나온 줴기밥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옆에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분대원의 줴기밥 하나를 뺏어 들곤 전에 보위군관이 내게 말했듯이 말했다. ‘장군님이 내려주신 귀한 밥 먹기 싫으면 말라!’하곤 먹고 있는 줴기밥을 빼앗고는 막사에 가서 ‘순찰’ 준비를 끝마쳤다.
새벽 02시, 물, 줴기밥 한 덩이, 노끈, 잘 벼린 칼자루 하나를 챙겨 들고 순찰 준비를 마쳤다. 순찰 명령서에 본 근무자는 평소 분대에서 가장 어리숙하던 초급 병사였다. 애와 함께 순찰을 배정받았기에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이놈 하나 잘 속이면 일이 더 쉽게 풀리겠구나!’하며 말이다.
그러나 조금씩 비틀려갔다. 명령서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 나와 동행하러 나온 것이다. 02시 근무였던 동행자는 04시로 옮겨졌고 그 자리는 분대에서 꼼꼼하기로 소문 난 상급병사 하나가 있었고 밤샘 근무자였던 사람은 소위가 아닌 상위로 변해있었다. 이미 결정이 끝난 일을 되돌리는 건 어려웠다. 그렇기에 강행했다.
그렇게 나는 유난히도 무거운 권총갑을 허리춤에 차고 팔에는 붉은색 바탕에 순찰대라는 빛바랜 금색 글씨가 적힌 완장을 차고 초소 순찰 준비를 마쳤다. 바지 주머니엔 챙겨둔 물자를 쑤셔 넣었다. 그로 인해 바지전이 부풀어 올라 밝은 곳에서 보면 꽤 수상한 행색이었다. 반면에 분대 기준병답게 동행 근무자는 88식 보총과 장비에 만탄창을 여럿 챙겨 나왔다.
그를 데리고 밤샘 근무를 서던 상위에 보고를 마치고 막사 밖으로 나가고 초소로 가는 통문을 나와 전연 초소로 발을 옮겼다. 마음이 급했던 탓에 원래 예정되었던 방향으로 가지 않고 내가 탈출하려 했던 구간 쪽으로 먼저 갔다.
이런저런 매복지를 순찰을 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나의 모습을 본 상급 병사가 어쩐지 수상하다며 내게 말했다.
“중사 동지래, 급한 일 있습니까? 변소간이 급하신겝니까?”
그런 그의 농담 섞인 말에 발걸음을 뚝 멈추고 뒤에서 따라오던 그를 무표정한 채로 바라보며 말했다.
“일 없다!”
그렇게 짧은 답을 끝내고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에 그는 다시 말했다.
“명령서에 나온 대로 하시지도 않으시고 평소답지 않습니다? 뭐 누구 만나러 가는 사람도 아니고”
“야. 보라. 빨리 끝내고 한숨이라도 더 자는 게 낫지 않겠어? 나도 간단하게 점검만 하려는 게야.”
“고거이 아니라… 평소랑은 너무 달라서 하는 말씀인겝네다.”
“뭐이가 다른데! 어디가 다르나!”
탈출이 코앞이었던 조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윽박지르며 말했다. 그는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내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이 고거이 아니라 낮부터 초소 근무 다녀오신 뒤로 뭔가 이상해서 말씀드리는겝니다.”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평소의 나’처럼 행동하려했 다.
“그래, 뭐가 이상하나 말해보라.”
“평소에 안하시던 윽박도 지르시고 낮에 같이 근무했던 초급병사 하나가 분대장님이 근무 선 뒤로 이상해진 것 같다해서리 근무도 바꾸고 이리 온 겝니다.”
“야야! 너이 그거 명령서를 너 혼자 바꾸고 그래서는 안되는거야!”
“그래도 중사 동지래 걱정이 돼서리… 심적으로 뭐 문제가 있으신겁니까? 그 보위군관 놈 떄문이지요?”
“일 없다.”
“에이 제가 들어 드리갔습니다. 한번 말씀 해보시라요.”
“아이 일 없다니까! 이럴 시간 있으면 계속 순찰이나 돌라! 어디 상급 병사가 중사를 모욕하는 행태를 하고 있어! 너래 쥐약 먹었어?”
“죄송합니다.”
더 이상 말이 잘 안 통할 것 같으니, 겁박을 섞어가며 그를 떨쳐내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초소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조금은 의심의 눈초리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맞은편에서 보위군관 놈이 산책한답시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보위군관께서는 이 시간에 어떻게…”
뒤에 있던 상급병사가 그를 보며 말했다. 나는 뭐가 단단히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지 생각했다.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의 모습이 보이는 지척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술 냄새가 가득했다. 입가는 뭘 먹었는지 번들번들하게 올랐다.
하필 왜 이 시간에 술 처먹고 이리 나 댕기는지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모든 계획이 빠그러질 것이 유력했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보내야 했다.
“보위군관 동지래 여기서 뵙…”
“야. 보라. 중사 동무. 근무 상태가 뭐야! 다른 초소들 가봤더니 졸고나 있고 말이야! 너래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 딱 보여야!”
경례하기도 전에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오른손으로 들곤 내 뺨을 올려치며 말했다. 쩍 하는 소리에 눈앞에 노랬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이 새끼래. 눈기짓을 해!”
그는 성이 난 듯 비틀거리는 오른 다리를 올려 내 몸통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곤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내래 누군지 알아? 보위부 감찰반 소속이었던 박혁봉이야! 너도 내 무시하나? 일개 중사가 말이야!”
그는 연신 나를 밟아가며 땀을 흘렸다. 가죽 군화 코 부분으로 옆구리를 걷어차며 내게 욕을 해댔다. ‘참아야지 조금만 지나면 끝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며 스스로를 다독일 때 보위군관은 말을 꺼냈다.
“이 애미, 애비도 없는 천애고아 새끼래! 눈을! 감히! 내게 눈을! 그따위로! 간나 새끼야! 내래 경애하는 장군님! 은총 받았어!”
“군관동지 그만, 그만하십쇼…”
뒤에 있던 상급 병사가 나와 그를 막아섰지만, 그의 발길질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애미, 애비 없는 천애 고아’ 그 말에 내 머릿속에 뭔가 끊기듯 뚝 하더니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권총갑에 있던 권총을 꺼내 들어 보위군관 미간에 들이밀며 말했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부모를 들먹여! 애미 살에 애비 뼈 받아 자란 새끼가! 보위부에서도 후라이 까고! 뢰물받이 해서 밀려 내려온 새끼래!”
“뭬야! 이 새끼래! 야! 쏴보라! 쏴 봐!”
“개좆같은! 미공급 시기도 버틴 나야! 너 하나 못 죽일 이유가 없디!”
검지손가락은 이내 권총 방아쇠 안으로 들어가 방아쇠를 눌러 총구에선 화염을 뿜었다. 탕 소리와 함께 보위군관 머리가 뒤로 나자빠지더니 그대로 몸이 굳어 뒤통수가 바닥에 부닥치며 요절했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눈 뜨고 절명했다.
나는 총구를 돌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상급병사에게 방향을 바꿨다.
“야! 보총 내놓으라.”
“…중사 동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넌 아직 저게 사람으로 보이는 갑지? 보총 내놓으라고! 너까지 죽이고 싶지가 않아!”
나는 겁박하며 순순히 그의 보총을 빼앗았다. 총소리가 나고 얼마 뒤에 그의 등에 있던 무전기에선 뭐라 뭐라 소리가 났지만, 멍때리는 상급병사 뒤에 있던 무전기도 땅바닥에 내팽개쳐 발로 짓밟으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잘 들어두라! 내래 너 겁박한 거고! 넌 나한테 쳐 맞아서 기절한 게야! 알갔어!”
“…”
“머저리 같은 놈! 일 없다! 이 새끼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초소 길을 따라 원래 탈출을 결심했던 곳보다 이른 곳에 빠져나와 산 능선 아래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예정했던 곳보다 초소 간 간격이 짧아 어둠 속에서 내 모습을 보며 멈추라며 소리쳐댔지만 이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뒤도 돌지 않고 달렸다. 지뢰?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껑충껑충 뛰며 남쪽으로 계속 달렸다. 어느새 뒤에선 총탄이 빗발치며 사방에 박혀댔다. 이리저리 나뭇조각도 튀어 올라 얼굴에 박혔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아까 마저 먹은 줴기밥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듯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권총도 버리고 등에 메고 있던 보총도 달리기에 껄끄러워 보이지도 않는 숲에다가 버렸다.
어릴 적 해안가에서 보던 중국 오징어잡이 배처럼 하얀빛이 나열되어 철조망을 두른 곳으로 계속 달렸다. 나를 쫓아오던 저 치들도 언젠간 멈추겠지, 하며 계속 달렸다. 달리는 중에 입을 벌리고 뛰어 입안에 벌레들도 들어오고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이 몸 이리저리 긁어대고 뒤에서는 납탄들이 날아와 흙바닥에 박히며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나는 몸을 웅크리며 도망쳤다.
쓰고 있던 모자는 어느새 바람에 맡겨뒀고 다리에 힘은 조금씩 풀렸다. 직선 방향이 아닌 대각선 방향으로 산지를 계속 타고 오니 그럴 만도 했다. 하늘에서는 이런 내가 미운지 비가 주욱 내려오고 있다. 더운 비가 온몸을 타고 내려와 적시니 더 힘이 들었다.
숨을 몰아쉬며 뛸 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진 그대로 얼굴과 코가 비에 젖은 물렁물렁한 바닥에 박혀 그리 아프진 않았다. 얼른 일어나야 한다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볼 때, 지척에 지뢰 하나가 박혀서 있었다.
조금만 더 갔으면 지뢰 밟고 요절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비가 오는 하늘이 아까 전 만 해도 미웠지만 이내 감사함을 느끼는 계기였다. 그런 감사한 마음도 잠시 다시 더 가까운 거리에서 총알이 날아와 머리 근처에 박혔다.
흙이 팍 튀는 소리에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다시 뛰었다. 척척하며 군화발이 흙에 빠지며 내 몸은 중심을 잃고 조금씩 더 느려졌다.
“빨리, 빨리 조금만 더”
뒤에선 사람 발소리와 총소리가 들렸다. 다시금 뒤에서 화염이 일며 파바박 소리치며 내 몸 옆을 스쳤다.
몸을 어떻게든 몸을 놀려야 한다며 낮에 바라봤던 GP 쪽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이렇게까지 멀어질 이유가 없었는데, 예정된 통로로 빠져나오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하늘에서 비는 더 억세게 오고 뛰는 것도 아닌 점점 걷는 모습으로 내 자세는 변했다. 비틀대며 정신없이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에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의 말소리도 비 사이로 들을 수 있을 즈음 눈앞에 작은 회색 상자와 푯말이 보였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신호 단추를 누르면 여러분을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붉은 바탕에 금빛 글씨로 적힌 푯말은 나에게 구원의 말이었다. 회색 상자를 열어젖히고 연신 신호 단추를 눌러대며 울부짖었다.
“중사 이남철!! 자유 대한에 전향을 요청한다!! 중사 이남철!! 자유 대한에 전향을 요청한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소리쳤다. 내 아우성이 빗속을 뚫고 저 멀리 자유대한까지 들리게… 계속 단축을 눌렀다. 내가 살아있음을 보이게…
“나 좀 살려주오!! 중사 이남철이요!! 대한민국에 귀순을 요청한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김정은 개새끼! 자유 대한 만세!”
그 뒤로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눈앞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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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지하에서는 빗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내 옷은 어느새 갈아입혀졌고 따뜻한 모포 안에 들어가서 의무 병동에 있었다. 문 쪽에는 덩치 좋은 하급 군관 하나와 상사 하나가 일어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어릴 적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남쪽 괴뢰는 늑대와 같은 형상이라는 말은 오히려 거짓이었다. 그들도 옆집에서도 볼 법한 그런 사내들이었다. 한 명의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렸다. GP에 있는 의무 병동에 문이 열리더니 높은 계급의 젊은 사내 한 명이 들어와서 내게 말했다.
“이남철 씨, 자유대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유대한이란 말에 울컥하여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여기가 정말 대한민국이요…?”
“네 맞습니다. 힘드실 텐데 굳이 안 일어나셔도 괜찮습니다. 누워계세요.”
“아… 결국, 결국 내가 왔구나… 내가…”
난 혼자 계속 말을 되뇌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밝은 백열등 아래 몸 누이며 억지로라도 울음을 참아냈다. 옆에 있던 높아 보이는 계급의 군인은 뭐라 뭐라 말했지만, 귀에 담기지 않았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조금은 쉬고 싶었다.
그럴 때 말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내 배에서 났다. 제때를 아는 창자라고 생각했건만, 부끄러움에 얼굴은 붉게 타올라 그들을 차마 마주 보지 못했다. 젊은 군관은 내게 말했다.
“아, 배가 고프시겠군요. 차마 생각을 못 했습니다. 밥을 그럼…”
“먹겠소!”
나는 부끄러움을 뒤로 한 채 모르게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런 내 모습이 어디가 웃기는지 몰라도 저들끼리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북에선 잘 볼 수 없던 웃음이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어색하지만 웃었다. 이것도 적응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내 젊은 군관은 나가고 10분쯤에 다시 들어와서 울퉁불퉁한 쟁반을 내게 줬다. 쟁반엔 쌀밥 크게 한 덩이와 사리 곰탕이라고 적힌 종이 상자 하나 그리고 붉게 물든 김치에 네모나게 잘린 고기 조각과 뭔지 모를 슈넬 치킨이라고 적힌 뜨거운 봉지를 내게 주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밥이 제대로 준비된 게 없어서요. 당장엔 이런 것밖에 못 드리겠네요.”
나는 은빛 나는 쟁반을 받아 들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일 없소.”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는 나를 위해서 하급 전사가 내게 다가와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줬다. 사리 곰탕이라는 상자 뚜껑을 열더니 안에 김이 팍 나와 차가웠던 얼굴을 데웠고 슈넬 치킨이라는 봉지를 십자로 뜯어서 열어줬다.
나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으로 사리 곰탕을 한 큰술 떠서 입에 넣었다. 식도가 뜨거워 타들어 갈 듯했지만 한 번 더 먹으니 구수한 고깃국 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봐도 고기는 한 점 보이지 않았지만, 꼬부랑 국수 가락이 숟가락에 딸려 올라왔다.
그것을 후루룩 먹고 숟가락으로 쌀밥을 퍼먹었다. 하얀 쌀밥 먹으며 이내 시선은 붉게 물든 김치 색에 꽂혔다. 어디 높은 군관 집에서 먹을 만한 김치 빛깔에 군침이 돌아 숟가락으로 퍼먹었더니 매콤하고 시큼하니 알싸한 게 입안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시금 국물 한 모금하고 네모난 갈색 고기 조각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욱여넣으니 고기 맛이 났다. 달콤하니 양념이 잘 베 들었고 어떻게 구웠는지 질긴 감이 없고 부드럽고 따듯해서 맛났다. 그렇게 욱여넣으니, 목이 막혀 뜨거운 종이 상자를 들고 재빨리 국물을 마셨다. 배 속에 따뜻한 고깃국물이 들어가니 온몸이 노곤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국물에 딸려 오는 면도 놓치지 않았다. 봉지에 쌓여 제일 궁금하게 했던 슈넬 치킨인가 뭔가 하는 것을 열어젖혀 입에 넣으니 기름진 것이 입안에 돌아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랗게 뜨곤 하급 전사를 쳐다봤다. 그는 내가 먹는 모습을 흡족해하며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 놀란 건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기름진 맛이 너무 좋아서 여러 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목이 막혀 기침하니 옆에 있던 군관과 다른 사람들이 놀라 내게 물을 건네주며 괜찮은지 물었고 난 그럴 때마다 ‘일 없다’며 반문했다.
어느새 식판을 다 비웠을 때, 군관은 주머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며 말했다.
“아 이것도 드려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이거이 뭡니까?”
“팥빵이랑 우윱니다.”
책상에 깔끔하게 비워진 쟁반을 뒤로하고 그가 내미는 팥빵과 우유를 받아 들고는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빵의 부드러운 질감과 팥소의 달콤한 맛에 나도 모르게 옛 시절 눈물이 나며 어린아이처럼 울어댔다. 원래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그때만은 예외였다.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갈 듯 울어대며 입안에 있는 빵 조각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주신 팥소빵과 맛이 비슷했기에, 난, 그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미공급 시기의 그때로 돌아간 것이다. 그 향기와 맛에 난 기억의 수렁에 빠져 울었다. 어머니를 외치면서 말이다.
얼마나 울었을까. 눈물에 젖어 짭짜름한 빵을 입에 넣을 때, 젊은 군관이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일 점심에나 이동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는 마지막 남은 빵과 우유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건 왜 그렇소…?”
“오려면 산길이 열려야 하는데, 지금 비가 많이 내려서 토사가 내려왔어요. 그래서 차량이 아예 못 들어오는 상황이라… 내일 점심까지만 같이 계실 수 있나요?”
나는 젊은 군관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은 뭐요?”
“아침이라뇨? 무슨 아침…?”
“…아침밥, 아침 밥말이요…”
“아, 그 아침밥이 뭐더라. 야 정석아 내일 아침 알고 있어?”
군관은 당황한 채 하급 전사에게 물었다. 하급 전사는 말했다.
“내일 아침 식사는 쌀밥, 미역국, 불고기, 김치, 김, 우유, 이상입니다.”
“아 그래, 어 그렇다네요? 하하”
멋쩍은 듯 군관은 웃으며 날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눈을 감고 내일 나올 음식들을 상상하며 입에 고인 침을 삼키곤 그들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불고기! 맛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드디어 첫번째 대회참가자가 나왓네 근데 왜이리 사람이없지
끌올 함 해봐야할듯요?
ㄴㄴ 파딱들이 끌올자주했는데 이럼 주제땜시 그런가
잘 쓰네 - dc App
감사합니다
이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