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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이 트리오는 조선의 개화파를 길러낸 장본인들임. 구한말의 기라성 같은 개화파들이 이들 손에 양성됨.

이 셋은 1850~60년대 중국의 위기를 직접 사신으로 가서 목도하고 개항과 서구 학문의 수입을 최초로 주장한 앞서나간 인물들이었음.

하지만 유홍기는 몰라도, 이 중 박규수와 오경석의 근본사상은 국가방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음.

서구에 맞서기 위해 나라의 문을 열고 서구 학문을 수입하고 무기를 만들어 부국강병을 추진하자는 것임.

그래서 박규수와 오경석은 대외 위협에도 의외로 단호하게 대처한 사람들임. 당장 박규수는 제너럴셔먼호 사건 때 미국 배를 불태워버린 장본인이고

오경석은 1871년부터 미국과의 수교를 주장했지만 막상 신미양요 때 미군이 쳐들어오자 그 누구보다 강경대응을 주문했음.

오경석은 운요호사건과 강화도조약 때에도, 개국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정부가 물러터져서 일본에 과하게 대가리 숙인다고 지랄했던 인물임. 그렇다고 전쟁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할 상징물로써 국기의 중요성을 최초로 강조한 인물도 오경석임. 박규수와 오경석은 개항을 해도 최대한 자주적으로 하길 바랬음.

개화와 국가방위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던 이 둘은 안타깝게도 개항 직후인 1877년과 1879년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음. 사인은 노환과 과로였음.

이들이 보다 오래 살았으면 개화파의 입장에서 더 좋았겠지만 여기서부터는 IF이니 이만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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