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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이어짐.

막말 서양 함선들이 들락거리면서 일본 내에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는 건 저번에 설명했음.


1. 미토 번
도쿠가와가의 고산케 중 하나였던 미토 번도 마찬가지임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9대 번주로 등극한 후 미토 번은 해안방어체계를 점검하고 주물공장을 세워 청동대포 300문을 주조함.

그러다 친밀한 사쓰마 번이 강철 생산을 위한 반사로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솔깃한 나리아키는 그쪽의 기술 지원을 받아 반사로를 건설함

그게 위 사진의 나카 미나토 반사로임.

흑선내항 1년 후인 1854년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오시마 타카토를 비롯한 3명의 난학자가 설치를 주도했었음.

처음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타타라 제철로 만든 선철을 투입해 제련했지만 나중에 오시마가 일본의 주요 철광산 지대인 가마이시에 설치한 고로에서 선철을 공급받음

성과가 보이자 2번째 반사로도 건설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강철들은 서양식 대포 제작에 투입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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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녀석임. 서양식이라 해서 암스트롱포 같은 놈은 아니고 보다 이전 세대의 철환을 쏘는 통짜 대포임. 총 15문 정도가 양산됨

이 중 나카 미나토 반사로는 1864년 텐구당의 난 때 휘말려서 개박살이 났고, 설립에 관여한 3인의 기술자도 뿔뿔이 흩어졌음.

그래도 나카 미나토 반사로와 초보적인 대포주조공장을 운영해본 경험은 이후 일본의 군수산업과 제철산업에 큰 족적을 남김.

오시마 다카토는 나중에 독일에 유학해서 광업과 제철업을 본격적으로 배워와 일본 최초의 근대 종합제철소인 가마이시 제철소를 열었고 다케시타 키요에몬은 도쿄포병공창에서 기술자로 일함.


2. 사가 번
한편 사가번에서는 1858년 미에쓰 해군 기지를 세워 서양식 함선 건조에 나섰음.

이는 1865년 일본 최초의 증기선을 건조하는 성과로 나타남. 메이지 시대부터는 상선학교로 바뀜.


3. 막부 직할령
한편 막부는 1862년 세키구치에 수력으로 동작하는 대포 공장을 설치했음. 절삭 공구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수입함.

막부 역시 직접 니리야마 반사로와 타키노가와 반사로를 설립해 세키구치 무기공장에 강철을 공급했음.

한편 세키구치 공장은 그대로 존속했고, 유신 이후 메이지 신정부가 그대로 접수해 군수공장으로 써먹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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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바로 도쿄 포병공창임.


한편 막부는 1857년부터 네덜란드의 지원을 받아 나가사키에 제철소를 설립하기도 했음. 이름은 '나가사키 제철소'였지만 사실 제철소라기보다는 조선소에 가까웠음.

25마력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굴러갔고, 상술한 사가번 미에쓰 해군기지의 기술지원을 받기도 했음. 1865년에는 분소로 요코스카 제철소(조선소)가 신설됨.

상당히 익숙한 위치일 텐데, 그 예상이 맞음. 막부가 망한 뒤 메이지 신정부는 이 두 조선소를 낼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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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제철소는 미쓰비시 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가 됨.

요코스카 제철소는 해군성 직할 요코스카 해군공창이 되었다가 패망 이후 주일미군의 요코스카 해군기지로 쓰이고 있고.


4. 사쓰마 번
이건 전에 쓴 글로 갈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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