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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는 고종의 군비강화책의 일환으로 청에 파견된 사절단임. 조선은 이들을 통해 서양 군사기술과 국방기술을 배우고자 했음. 이들을 군계학조단이라 함.

이들은 톈진기기국의 각 과에 1명에서 4명씩 배정되어 기술을 익혔음. 근데 특히 많이 배치된 곳은 동모창, 즉 퍼거션 캡 제작창임.

이건 조선이 건설할 기기창을 일차적으로 소모품인 퍼커션 캡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설립하려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함.

톈진기기국의 동모창은 비단 퍼커션 캡만을 제조하진 않았음. 1일 생산량은 1000정의 소총, 3만개의 퍼거션 캡이었다고 하는 걸 보니 소총 자체도 생산함

강수창에서는 증기기관으로 화약의 원료인 황산, 질산, 염산을 생산했는데, 이곳에 배치된 두 명의 학생은 증기기관이 아닌 수작업으로 산을 생성하는 법을 배움.

기계창에 배치된 조선 학생들은 철에 구멍을 뚫거나 연마하는 법을 배움. 그 외에도 곳곳에 기술학도들이 배치되어 기술을 배웠음.

이들은 초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서양 학문들을 배우면서 당황하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음. 익숙하지 않은 풍토나 공장 매연 땜에 병을 얻어 죽거나 본국송환되기도 했고.

그래도 2~3개월이 지나자 빠르게 적응하는 인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음. 청정부의 학비지원 거부, 임오군란 등의 악재가 겹쳤지만 말이야

가령 상운이라는 학생은 3개월만에 전기기술을 이해했음.

하지만 청나라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진압을 계기로 들어와 조선의 군수공업을 비롯한 개화정책에 명백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자 이들 기술자들은 붕 떠버렸음.

실무 기술자들이 새로 설치할 기기창에서 일하며 등뼈를 맡아야 했는데, 청이 자꾸 설립을 지연시키고 공장규모를 축소하니 쓰일 수가 있나.

그 결과 장인 출신으로 톈진에서 유학한 기술생도들 대부분은 어렵사리 서양학문을 배웠음에도

결국 중용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됨.


출처
영선사행 군계학조단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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