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청일전쟁과 친일내각의 갑오개혁 때문에 조선군은 사실상 무장해제 상태였음. 조선을 장악한 일본 고문단이 새로 만들어준 훈련대는 아예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해체되는 판국이었음.
그러다 구한말의 한국 군대는 아관파천을 계기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됨. 주요부대 증강을 초점으로 맞추어 살펴보면 러일전 직전까지 아래와 같은 급격한 변천을 겪었음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아관파천
3월 3일 친위대 5개 대대로 증설
4월 22일에 친위대가 연대 편제를 도입함
5월 23일부터 갑오개혁으로 해체된 지방 군사력 재건 시작. 9개 지방대대 설립
6월 6일 친위기병 1중대 증설
8에는 지방대 신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됨
10월 21일, 러시아군사고문단 도착. 주로 중대장급 이하 교육
1897년
2월 25일 고종 환궁
3월 16일, 친위대 중 러시아식 군제교육을 받은 대대들을 빼내어 시위대가 창설
1897년 전반기부터 러시아군 교범 번역 시작
6월 7일, 8개 지방대로 개편
6월 14일, 지방군에 대한 증강 계획이 착수됨.
6월 23일, 10명의 지방대대장 임명
6월 30일, 호위군이 설치됨
10월 12일 칭제, 광무개혁 시작
11월 14일, 호위군이 대대규모 호위대로 개편됨
1898년
1월 26일 중앙군과 지방군의 여단 편제 지시 하달(이뤄지진 못함)
3월 29일부로 러시아 군사고문단 철수, 한국군 스스로에 의한 부대운용 및 훈련 시작
5월 27일, 시위대가 시위 1연대로 개편되며 중앙군은 친위 하나 시위 하나 총 2개 연대를 가지게 됨.
6월 25일, 보병조전 간행
6월 30일, 친위대를 러시아식으로 개편, 12월까지 점진적 증편
7월 2일, 무관학교 개교
8월 2일, 시위연대와 친위연대에 병력 증강 및 포병대 신설
1899년
6월 22일 원수부관제 발표, 명령전달체계의 일원화
1900년
7월 21일 지방대 폐지, 지방군을 진위대로 일원화,
7월 25일 5개 진위연대 신설
6월 30일 헌병사령부 창설
9월 8일 평양진위대 1개 대대 증설
9월 14일 육군법원 창설
1901년
2월 4일 진위 4연대와 6연대 증설. 도합 6개 지방군 연대로 증강
1902년
9월 12일 시위대 제2연대와 친위대 2연대 신설, 중앙군 도합 4개 연대로 증강
전군 도합 10개 연대로 증설
1903년
3월 15일 고종의 징병제 실시 명령(실현되지 못함)
9월 1일 용산 군기창 건설 착수
12월 13일, 고종의 징병 문제 재차 거론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발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대한제국의 군제 개편과 군사 예산 운영
- dc official App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