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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시작을 알리는 기병부대가 팔기, 건국과정에서 한족을 흡수해서 생긴 보병 주력부대가 녹영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기는 만주족 특권집단화되면서 병신이 되었고, 녹영은 전국을 통제하는 일종의 경찰에 가까워짐.

그러다 태평천국의 난이 터졌고 팔기와 녹영이 죽을 쑤자 지방 유력자들이 모집한 군대인 의용병대인 용영이 등장해 대신 난을 진압했음. 대표적인 부대가 이홍장의 회군, 좌종당의 초군, 증국번의 상군임.

청 정부는 용영을 통제하에 넣고자 했지만 용영은 병부의 지휘를 받지 않고 각 사령관들의 통제를 받았던데다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선발되고 돌아갔기 때문에 실패했음.

중화민국 시기 군벌집단의 싹수는 여기서부터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님.

용영 각 부대, 특히 상군과 회군은 1860년대부터 정부와는 별개로 서양과 접선해 서양무기들을 수입해오기 시작했음.

무기 생산도 이때부터임. 1861년 증국번이 군계소, 뒤이어 이홍장이 1862년 상하이와 1863년 쑤저우에 양포국을 세우면서 서양식 총포와 화약을 생산하기 시작했음

그 외에 증국번이 1869년부터 자신의 부대를 녹영으로 끌어들인 다음 녹영군을 연군이라는 이름으로 전환했음. 그 결과 치안은 지방의 연군이, 외침은 용영이 담당하는 것으로 나뉘었지만 팔기 같은 구식군도 병존했음

이 와중에 이홍장은 회군 중심으로 북양수사를 설립해 북양해군을 창설했음. 남방에서는 남양수사와 복건수사도 성장했지만 이쪽은 청프전쟁때 프랑스가 박살냄.

하지만 이 시스템은 청일전쟁을 거치며 박살이 났음. 이후 청은 1901년부터 각 성에 신군 편성을 지시했음.

러일전쟁 끝나고부터는 36개 사(사단)으로 구성된 새로운 군대 건설을 추진했음. 1910년까지 20개 사단과 9개 여단이 조직되었음.

그 중 최고 정예가 북양육군 1진에서 6진까지임. 북양육군은 위안스카이가 주도해서 세웠고 훗날 북양군벌의 근간이 됨.



※ 얘네 편제는 봐도 모르겠음. 시발 혼성협이 대체 뭐야?


출처
군사편찬연구소, '청일전쟁'
淸末 北洋陸軍의 편성 과정과 財源
양무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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