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유고집인 "표박기"에 실린 장례식 추도사에 따르면 이력은 이러함
장군은 처음 동만주 북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한때 펑위상의 막료로 위명을 날렸으며 그 후 상하이 난징 등지에서 초인적 활동을 전개하던 중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국민정부의 초청에 응하여 중경육군 참모학교의 소교관이 되었고 다음 구이주위성 서펑현에 있는 유격대 훈련학교의 교수로 있었으며 한편 화중군사령부의 일원으로 난징전, 한커우전에서는 일선에 출전하는 등 종횡무진한 활약을 하였습니다. 장군이 중국 국민정부의 초청에 응하였음은 오로지 항일전에 조력하기 위함이오 항일전에 진력하였음은 또한 조국 해방을 기한 까닭이니 장군은 조국 해방의 일념을 조차, 전패에도 떠나지 아니하여 항상 조국 동지의 원조에 진심 전력하였나니 장군의 공로는 실로 청사에 빛날 바입니다.
꽤나 종횡무진하셨던 분임.
하지만 이분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경북대 국어국문과의 이상규 교수님이 거의 홀로 파고 있을 뿐 완전 불모지 상태인 듯해.
1947년에 급사하신 바람에 정리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도 크리티컬한듯
아름다운 삼천리 정든 내 고향
예로부터 내려온 조선의 터를
속절없이 바리고 떠나 왔노니
몽매에도 잊으랴 그리웁구나.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백두 금강 태백에 슬픔을 끼고
두만 압록 양 강 물결에 눈물뿌리며
남부여대 쫓겨 온 백의동포를
북간도 눈보라야 울리지 마라.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시베리아 가을 달 만주 벌판에
몇 번이나 고향을 꿈에 갔더뇨
항주 쑤저우의 봄날과 긴 모래사장의 비에
우리 님을 생각함이 몇 번이런가.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상하이 거리 등불에 안개 둘리고
황푸강에 밀물은 부닥쳐올 때
만리장 떠나는 기적소리는
잠든 나를 깨워서 고향 가자네.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일크스크 찬바람 살을 예이고
바이칼 호수에 달이 비칠 때
묵묵히 앉아잇는 나의 심사를
날아가는 기럭아 너는 알니라.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부모님의 생각과 나라 생각에
더운 눈물 여침을 적실뿐이네
와신상담 십년을 헤매어도
아ㅡ 나의 타는 속을 뉘라 아리요.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 이상정, 망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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