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한신 대장 회고록에서 나옴. 1949년 황해도 옹진반도에 제18보병연대가 올라가서 북한 도발에 대처하고 있을 때임.
한신의 1대대가 소속된 18연대와 증강된 국군이 북한군의 도발을 억제하며 생업을 보장해주자 지역 주민들은 국군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음.
이때 한신은 장병들에게 부락과 주민들에게 마음을 열고,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지시했음. 그리고 마을 주민들도 18연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모양임.
이때 한신 장군은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1대대를 지원해 준 보답으로 동네 노인들을 한번 대거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했었다고 함.
이때 이 노인들은 경술국치 전 구한말에 군대밥을 먹어보고 수십 년 만에 다시 먹는다면서 상당히 즐거워했다고 한신 장군은 말함. 정황상 이 노인들은 젊은 시절 구한국군의 장병이었던 것으로 보임.
6.25 발발 이후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음. 한신 장군도 이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으로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남.
출처
신념의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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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주둔 진위대 소속이었나 보네 종파사건 이전에는 개성도 주민동원 몇번 해서 궐기대회랍시고 남한 비난하는데 그쳤고 실제로 넘어간 지역 궐기대회 멘트 보면 남조선은 정부에서 수탈해 갔는데 공화국은 그런거 없이 좋다 운운하는게 대부분이었으니 그 사람들이 지주나 자영농 출신 아닌 한 밥 좀 얻어 먹은 것 가지곤 뭐라 하진 않았겠지 손자가 월남했거나 국군에 가담했거나 그런거 아니면 불이익없이 여생만 좀 회한 어리게 보냈을듯
베스트는 월남하는 거지만... 나이상 힘들 수도 있겠지 - dc App
내 조국은 내가 지킨다 - dc App
연백 쪽의 경우에는 유엔군 후퇴소식이 뒤늦게 들어와서 아들만 홀로 피난시킨 경우가 많았던듯
1950년 12월 13일 밤에는 연백 집에서 조부님의 기일이 되어 제사드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온 동네가 벌컥 뒤집혀 야단법석들이었다. 내용을 알고보니 압록강까지 진격하고 있던 남한 국군들이 또 다시 철수를 하여 후퇴를 한다는 것 이었다. 이때의 공산정치가 싫은 이북 국민들과 남한 국민들 모두가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피란을 하느라고 나라가 벌컥 뒤집어져 무법천지가 되고 이 소식을 남보다 늦게 알게 되니 매우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부모님도 이 소식을 듣고 온통 자식의 걱정뿐이셨다.
“큰 애야 너도 빨리 피란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성화를 하셨다. 할 수 없이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온 가족을 남겨둔 채 단신으로 피란민 행렬을 따라 서울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며칠만 피하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며 떠났다. - 서울로 피난 직후 국민방위군으로 고초를 겪은 박을영씨의 증언
ㄱㅅㄱㅅㄱㅅ - dc App
이런 글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참 안좋다 ㅠㅜ - dc App
맥아더의 오판으로 인해 진짜 수많은 인간들 운명이 결정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