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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해군의 현대화는 1770년부터 알제리 출신의 가지인 하산 파샤가 추진함. 제국 무기고에 '수학 학교'가 세워져서 기술교육을 했음. 곧 셀림 3세가 해군 재건을 밀어붙이고 퀴취크 휘세인 파샤(Küçük Hüseyin)가 해군 업무를 총괄하면서 이것저것 손을 보기 시작함.

이 시기에 해군부가 설립됐고 해군 조선소도 세워짐. 해군학교, 황립 군사공학학교도 세워지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도 도입됨. 조선소도 계속 확충했음. 하스퀘이, 아이반사라이, 레스보스, 시노페, 키프로스, 렘노스, 바르나 등에 계속 조선소들을 세웠고 여기서 슬루프, 코르벳 등 소형함들을 건조하면서 노하우를 쌓음. 신기술 도입도 계속해서 함저에 구리피복을 바르는 방법을 영국에서 도입했고 구리공장도 세워짐.

프랑스식 드라이독 시스템도 셀림 3세때 도입됨. 스웨덴에서 초빙한 엔지니어들이 드라이독을 이스탄불에 건설했고, 영국에서는 물을 빼기 위한 동력 펌프를 도입했음. 진수 후 의장공사를 마무리하는 시스템도 18세기 말이면 이미 오스만 조선소들이 사용하고 있었음.

외국인 엔지니어들도 계속해서 고용해서 무기 및 함선 생산과 생도 교육에 투입함.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랑스인인데, 자크 발타사르 르브룅(Jacques-Balthasard Le Brun)이라고 함

19세기 초반에는 두 번째 드라이독이 세워졌고 여기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인 마흐무디예함을 자력으로 건조했음. 위 사진이 마흐무디예함이고 128문짜리 전열함이었음.

하지만 시대는 증기선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었고 오스만도 여기 발맞춰가려고 했음. 러시아가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 함대를 조져버린 후에 오스만은 미국하고 가까워짐. 미국 엔지니어들인 헨리 엑포드와 포스터 로데스가 파견되어서 오스만에 증기 외륜선 기술을 가르쳐 주었음.

압뒬메지드 시대 말기에는 세 번째 드라이독이 건설되었고 여기서 오스만은 자력으로 철제 증기함을 건조함. 에세리 하디드(Eser-i Hadid) 함이 바로 그거임. 선체, 엔진 모두 오스만인들이 자력으로 만들어낸 최초의 철제 증기함이었음.

술탄 압뒬아지즈 시대에 오스만은 다시 한 번 해군을 개혁했음. 철갑함 3척을 영국에서 도입하고 해군 학교들을 다시 한 번 현대화함. 암호통신, 철제 홋줄, 함포 생산을 위한 천공기, 항해일지 시스템, 조선용 철 수급, 수리용 각종 도구들 도입 등등등.

수중 전신선도 설치했고, 어뢰도 도입하고 후장식 함포도 도입함. 압뒬아지즈는 유언장에다가도 해상전력 확충을 중시해야 한다고 써놓고 죽었음

압뒬하미드 2세 기절에는 그리스가 잠수함을 도입한다는 소식에 노르덴펠트 사에서 잠수함도 도입함. 나무위키에서 볼 수 있는 오스만 잠수함이라는 게 바로 이 때 도입된 거였음. 정확히는 부품들을 져와서 금각만의 조선소에서 조립했음.

결국 오스만이 1머전 직전에 전함 도입하고 하면서 운용할 수 있던 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내내 부족하게나마 계속 세계 표준 따라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음. 황제들도 해군에 대해서 관심이 적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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