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진주군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인 여론은 점령군으로서 민주적인 점령 정책을 실시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15년이라는 장기간의 전쟁을 겪은 일본으로서는 전쟁이 종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민주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1947년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좌파들까지도 미 점령군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여 미국의 비호 아래 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에 유행했던 '포츠담 혁명', '위로부터의 개혁' 이라는 말에도 잘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니라 '점령 직후 미군이 조사한 점령군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 을 보면, 점령군에 대한 일본인의 최초 반응은 압도적으로 호의적인 것이었다. 특히 '점령군사령부가 취한 정책에 관해 그 결과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표와 같이 답하고 있다.


만족한다 76%

모른다 18%

불만족 1%

무응답 5%



원래 질문은 일본인이 점령정책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주어졌지만, 응답은 일반적으로 점령군의 정책이 아니라 점령군의 행동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점령군의 행동에 대해 만족하거나 상당히 만족하는 비율이 76%임을 알 수 있다 만족도 불만도 아니라고 답한 사람들은 단지 점령이기 때문에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럼 일본인들은 미군의 어떤 행동에 만족했을까? 일본이 패전하고 점령이 결정되었을 때 일본의 선동가들은 점령군으로 들어오는 미군이 일본인들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믿게 했기 때문에 만행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일본인의 최초 반응은 큰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에서 미국인에게는 당연한 행위들, 예를 들면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 등에 일본인들은 특히 주목했다. 이 문서에는 실제로 미군이 행하는 모든 종류의 예의에 대해 일본인들은 매우 기뻐했다고 서술하면서, 일본인들의 인터뷰 중에서 "미국 병사는 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가 올 때 미군의 차는 보행자에게 흙탕물이 튀지 않게 조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감사했습니다" 라든가 "미국 병사는 매우 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도로 위에서 매우 예의가 바릅니다." 등과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그리고 미군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일본인이 호의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1. 복수에 대한 두려움과 전통적인 일본인의 정중함


2. 일본인은 완전히 군부 지도자에게 신뢰를 잃어버림


3. 새로운 상황에 대한 태도의 신속한 변화


4. 정복자에 대한 복종이라는 일본인의 봉건적인 태도



 미국의 대일점령 초기 2~3개월 동안 일본인들의 생활은 곤궁 그 자체였다. 식량과 물자 부족으로 인한 경제난은 물론, 넘쳐나는 실업자와 전쟁고아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때에 자국의 전쟁지도자들은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었고 따라서 군부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땅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복수를 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될수록 일본인들은 강력한 지도력을 필요로 했으나 정계에서 다른 지도력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적 감정적으로 곤란한 시기에 점차 일본인들은 맥아더가 다른 지도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만큼 미국의 점령에 대한 초기 인식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출처: 동북아시아의 상호인식과 혐오,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경인문화사, 2022년, 209~211쪽




북괴랑 가장 유사한 천황제로 세뇌되어 가미카제하던 일본인들이 정작 전후에 미군들의 태도를 보고 자신들이 교육받은게(미군들이 점령하면 전부 전멸) 틀렸다는걸 알고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