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쟁이었지만,
전세계는 전쟁의 상흔(傷痕)을 빠르게 치유했다.
미국은 2차대전에서 40만명의 군인들이 죽어나갔지만,
본토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짧은 치마, 넘쳐나는 돈, 거대한 자동차와 집, 낮은 금리....
1950년대의 미국은 풍요 그 자체였다.
마이카 시대...는 한 30년전에 열리긴 했지만, 아무튼
미국인들은 주말에 가족들과 어디론가 떠나길 원했고,
이러한 수요에 발맞추어 미국 곳곳에는 고속도로가 깔렸다.
이와 동시에 발전했던게 바로 항공기술이었다.
전간기...그러니까 불과 20~30년 전에만 해도
이런 작고 느린데다가 못생긴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녔지만
국가 단위의 총력전(總力戰)을 거치며
비행기들은 빠르게 진화했다.
이는 여객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1949년 7월 27일에 영국에서 드 헤빌렌드 코멧이
초도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제트 여객기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Comet(혜성)이란 이름값에 걸맞게,
코멧은 정말로 빛나는 항공기였다.
훈련과 기종전환의 용이성을 위해 코멧의 조종석은
당시 BOAC와 같은 주요 고객에게 인기가 있었던
록히드 컨스텔레이션과 유사한 구조로 제작되었고,
기장과 부기장, 항법사, 항공기관사가 탑승하여
비행기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운항했다.
저익-캔틸레버 구조의 주익 내부에 수납된
4개의 Halford H.2 Ghost 제트엔진은
1기당 5,000파운드의 추력을 제공하여
50톤에 달하는 동체를 가뿐히 들어올릴 수 있었으며,
금속 합금으로 만들어진 유선형의 동체는
이 비행기가 기존의 낡은 프로펠러기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승객들에게 뽐내듯 반짝반짝 빛났다.
초도양산분인 코멧-1의 경우 1967년에 나온
B-737 오리지널과 길이가 똑같았지만,
훨씬 더 넓은 환경에서 더 적은 승객들을 태웠다.
(코멧-1 36~44석, 737-100 최대 124석)
코멧의 런치 커스터머였던 BOAC는
기내에 45인치(1,100mm) 간격으로 설치된 36개의
리클라이닝 "슬럼버시트"를 설치, 탑승한 승객들에게
현재의 비즈니스-이코노미+급의 편의를 제공했다.
호화로운 여행을 위해서 기내에는
따뜻한 음식과 시원한 음료를 제공할 수 있는 갤리, 칵테일 바,
남녀 화장실과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날개에는 여러 개의 구명보트가 보관되었으며,
각 좌석 아래에 구명조끼기 수납되었다.
거대한 사각형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과
널찍한 좌석, 따뜻하고 조용한 기내 환경, 친절한 승무원들은
그 당시의 운송 수단에서는 보기 드문 편안함과 사치스러움을
승객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거대한 사각형의 창문을 통해...
코멧은 계속해서 상승가도를 달렸다.
1952년에는 필립 마운트베튼이 코멧을 타고
헬싱키 올림픽에 참석한 이후 돌아왔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렛 공주도 코멧의 특별 비행에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코멧은 이제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라
대영제국 항공기술력의 상징이자 영국의 자랑이었다.
실제로도 코멧은 동시대에 출시되었던 DC-6같은 여객기보다
2배 가까이 빨랐고, 더 편안했으며, 더 호화로웠다.
(코멧-2 기준으로 790km/h vs 507km/h)
장착된 고성능의 제트엔진 덕분에 코멧은 경쟁자들이
비행해야 하는 날씨보다 더 높은 곳에서 비행할 수 있었다.
이 엔진은 피스톤 엔진보다 소음이 적었으며,
유지 관리 비용이 낮았고, 30,000피트(9,100m) 이상에서는
프로펠러 엔진보다 연료 효율이 좋았다.
'53년 8월에 BOAC는 코멧을 이용하는
런던-도쿄 항공편의 예상 소요시간을 36시간이라고 선전했는데,
캐나다에어의 DC-4를 이용한다면 86시간 35분이,
팬암의 DC-6B를 이용한다면 46시간 45분이 걸렸다.
요즘은 ANA 직항으로 14시간이 걸리는데
환승 9회에 36시간임을 감안하면 진짜 빠른거다.
취항 첫해에 코멧은 30,000명의 승객을 태웠다.
항공기에 절반의 승객만 태워도 수익을 낼 수 있었기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1953년 여름이 되면 BOAC 소속의 코멧이
매주 런던을 출발하여 3대가 요하네스버그로, 2대가 도쿄로,
2대가 싱가포르로 , 1대가 콜롬보로 향했다.
한 일간지에서는 영국이 제트 여객기 부분에서
다른 국가보다 3~5년 더 앞서 있다고 보도했고,
코멧은 BOAC 말고도 에어프랑스, JAL, 펜암같은
세계 각지의 항공사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그리고 1954년 1월 10일, 싱가포르 갈랑 국제공항
DH-106 코멧 1기가 활주로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콜사인은 BOAC 781편, 코멧의 최초 양산기로써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칼랑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방콕-양곤-캘거타-카라치-바레인-베이루트-로마-런던,
총 9곳을 경유하는 아시아 횡단 노선이다.
기장은 31세의 엘런 깁슨 대위, 비행시간 6,500시간,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서 복무했다.
1951년에 엔진이 고장난 항공기를 안전하게
비상착륙시켰을 정도로 비행실력이 뛰어나다.
그는 BOAC에서 가장 젊고 노련한 기장들 중 하나였다.
부기장, 33세의 윌리엄 존 버리, 비행시간 4,900시간
27세의 프랜시스 찰스 맥도날드가 항공기관사로,
32세의 루크 패트릭 맥마혼이 항법사로 탑승한다.
승객들 중 다수는 영국 기숙학교의 학생들이다.
싱가포르에 살던 가족들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BOAC 직원 9명과 영국-유럽항공 직원 1명,
BBC 소속 기자 1명도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비행은 순조로웠다.
이제 남은 경유지는 로마의 치암피노 공항 하나밖에 없다.
경유하는 도중에 정기점검을 받느라 시간이 미뤄지긴 하겠지만
늦지않게 런던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차암피노 공항, 정비사가 주기되어 있는 코멧에 다가간다.
최근 잇따른 코멧의 추락 사고(조종사의 과실이었다)로 인해
안전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검사 체크리스트를 들고 항목을 체크한다.
'이상 없음....이상 없음....이상 없음....'
어떠한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1954년 1월 10일 10시 31분, 781편은
치암피노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을 시작한다.
여압장치가 있었기에 다른 여객기들보다 2배 이상 높은
11,000m까지 고도를 높여도 기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전 10시 51분, 기장은 같은 경로로 비행하고 있는
BOAC 소속 아르고넛(DC-4)의 존슨 기장과 교신을 시작한다
날씨 상황을 DC-4로부터 수신받기 위해서다
"조지 하우 지그, 조지 요크 피터로부터, 내—"
교신이 끊긴다.
DC-4는 이 사실을 바로 로마 공항 관제소에 보고하고
781편과 교신을 시도하지만 어떠한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엘바섬 인근 바닷가에서는 어선들이 조업중이다.
그들에게 제트 여객기는 신문에서나 보던 신문물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들과 비행기는 어떨까,
781편은 공중분해되어 추락했고, 탑승객 35명이 전원 사망했다.
영국 해군의 경순양함 '감비아'가 사망자와 잔해들을 수습한다.
BOAC는 사고조사가 진행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BOAC 회장이 TV에 직접 나와
"코멧이 안전하지 않다면 운항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초강수를 뒀고, 사고로부터 10주가 지난
3월 23일부터 코멧은 다시 운항을 시작한다.
1954년 4월 8일, 로마 참파노 국제공항
이번에도 똑같은 BOAC 소속 코멧 1기가 주기중이다.
등록부호는 G-ALYY, 남아프리카 항공에 임대된 전세기로써,
런던-로마-카이로-요하네스버그를 왕복하는 602편이다.
윌리엄 모스테르트 기장이 조종한다.
히드로를 출발해 로마에 도착한 602편은
781편을 정비한 정비사들에게 검사를 맡는다.
'볼트가 30개 정도 풀렸고....연료계가 고장났잖아?'
출발이 25시간 정도 지연된다.
UTC+18시 32분, 602편은 카이로를 향해 이륙한다.
18시 37분에 2,100m(7,000ft)를 통과하며 교신이 오간다.
'하늘은 흐린데.....날씨가 나쁘지는 않네'
19시 07분, 카이로 컨트롤과 602편은 마지막 교신을 시작한다.
'602편, ETA는 21시 02분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교신 직후 602편은 11,000m(35,000ft)상공에서 분해되어
탑승객 21명 전원이 사망한다.
오데이셔스급 항공모함 HMS 이글이 시신을 수습하나,
추락지점이 깊었기에 인양에는 실패했다.
사고원인은 금속판을 연결하는데 쓰인 리벳이었다.
코멧의 동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무식하게 리벳을 때려박다보니
금속판에 미세한 균열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 균열이 감압과 여압을 반복하면서 점점 커졌고,
추가적으로 사각형으로 생긴 창문의 꼭짓점에
균열이 몰리면서 기체가 공중분해되는 참사가 일어난다.
이후로도 코멧은 코멧-4까지 출시되긴 했지만
'위험한 비행기' 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결국 망했고
미국의 B-707과 DC-8같은 여객기들이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코멧은 비록 죽었지만 그 유산은 꽤나 오래 살아남았다.
1964년 6월 4일, 영국 정부는 왕립 공군(RAF)의 노후화된
아브로 셰클턴 해상초계기를 대체하기 위한 사업을 발표한다.
후보로는 P-3 오라이언,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 빅커스 VC-10
등이 입찰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멧이 선정되었다.
남아돌던 코멧-4를 기반으로 장착된 터보젯 엔진을
더 나은 연료 효율을 위해 롤스로이스제 Spey로 교체하고,
내부 폭탄창, 레이더용 노즈콘, ECM 포드,
MAD(자기 탐지기) 붐 등이 기내에 장착되었다.
거대한 폭탄창 내부에는 일반적인 어뢰나 대함미사일 외에도
최대 150개의 소노부이나 연료 탱크, 지뢰 ,
Mk시리즈 통상폭탄에다 핵 폭뢰까지 장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능에 감동받은 영국군은 1967년에
'님로드 MR.1'로 명명된 코멧 기반 해상초계기 46대를 주문한다.
1975년에는 레이더를 교체하고 내부 항전장비를 현대화,
공중급유용 파일런과 AIM-9 사이드와인더용 하드포인트,
Link-11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장착한 개량형인
님로드 MR.2가 도입되었고,
2011년까지 학대당하며 운용되다가 결국 퇴역한다.
이후 영국군은 P-8을 도입한다.
전자전/정찰기 파생형으로는 님로드 R1이 있는데,
3대의 님로드 MR.1이 기존에 사용하던 SIGINT 수집기인
코멧-R2를 대체하기 위해 개조되어 1974년에 배치된다.
님로드 R1은 MAD 장비(꼬리날개에 길쭉하게 달린거)가
없다는 점에서 MR2와 시각적으로 구별이 가능하다.
항공기의 폭탄창과 기체 후미, 주익 전면에
SIGINT 수집기를 장착한 님로드 R1은
최대 25명의 오퍼레이터를 태우고 비행이 가능했다.
참고로 원래 영국은 RC-135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나라에 돈이 없어서 님로드를 어찌저찌 뜯어고쳐
정찰기로 만들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이들은 2011년까지 노인학대당하다가 퇴역했고,
영국은 후속기로 RC-135를 질렀다.
다음 이야기:
쥬-웅
아 창문좃된에가 이놈이구나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저세상도 앞서 나간…
코멧 엔진탑제방식이 개섹스였는데 없어진게 아까움
아무래도 정비성이 - dc App
사각창문 이야기 나올때 쌔함을 느꼈지
디자인만큼은 현시대에도 꿀리진 않는데
대전기 영국 폭격기중에 여압방식이 없었으니 경험도 없었겠지?
ㅖㅏ
저런 내구성 날리는 것 때문에... 오늘날에는 차라리 통짜로 만들고 그 밖 보는 것은 렌즈 모듈을 달고, 내부는 휘어진 슬립향 모니터를 다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일이라 보이네요. - dc App
리벳 자체는 요즘 항공기들은 물론이고 초음속기라도 그냥 씀 문제는 사각형 창문이 리버티선 박살나는거랑 같은 문제를 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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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ㅈ망 해버린 mra4....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