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728045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34095/1/000000026544.pdf
한중수교협정이 체결되자 북한은 몇 달 동안은 특별한 대응없이 침묵을 지켰지만,시간이 지나면서 북한은 언론을 통해서 중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3년 1월부터 4월까지 북한 인민군은 압록강에서 무려 42차례나 도발하였고, 7백발의 총탄을 발사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군 변방근무자 18명, 민간인 1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중 군인 2명과 민간인 3명이 사망하였다. 1993년 4월에는 베이징발 평양행 중국민항기의 평양 항로를 폐쇄시켰고, 북한의 베이징행 조신민항여객기의 운행도 1∼2주일에 한 번 정도로 비행횟수를 줄여나갔다.그 밖에도 북한은 중국에 대해 대만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하였다.
한중수교에 발작버튼 눌려서 NPT 탈퇴하고 국경에서 총질, 중국군 사살, 중국 민간인 사살, 거기에 대만과 관계 개선을 통해 어떻게든 긁겠다는 의지, 중국에서 들어오는 외교채널 다 봉쇄하고 심지어 김일성 생일 축하 사절단도 꺼지라고 면박 놓음
뭐? 영변 폭격하면 중국군이 참전해? 참전은 했겠지. 아마 한중미 연합군 결성을 볼 수도 있었을걸?
그치들은 꼴도 보기싫은 정일이 일성이 제거하는데 도움 주고 그 대가로 청천강 이북을 요구했을듯
저땐 중국도 막 경제성장 준비할 단계라서 대가를 요구해도 한국과 미국한테 유리하게 전개되었을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