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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서 보면, 오헝제국 해군이 대규모 함대를 건설하는 대신, 방어적인 "소규모 전쟁" 전술과 기뢰와 어뢰 같은 교활한 수단(mezzi insidiosi)의 기량을 기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의 공격에 대해서 최선의 억지(deterrence) 능력을 발휘하는 전력과, 적의 공격에 대해 최선의 방어(defence)력을 발휘하는 전력은 항상 같은 의미가 아니다.

억지는 항상 물질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인 개념이며, (중략) 1860년에서 1918년 사이에 억지 전략에는 전함이 필요했다.

드레드노트가 없었다면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1차 대전 직전에 지중해에서 유의미한 전략적 변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잠수함의 치명성이 전쟁 와중에 밝혀지고 나서도, 아드리아해 밖으로의 오스트리아 드레드노트 함대의 출격은 아드리아해에서의 오스트리아 잠수함대의 뇌격 작전만큼이나 결정적인 변수였다.

이 때문에 협상국 함대는 오트란토 해협 이남에 머물러야 했다.

(중략)

많은 비판자들은 풀라에서의 제국해군의 현존함대 전략, 무의미한 카타로에서의 순양함대 출격작전, 그리고 오스트리아 잠수함대의 작은 활약을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헝해군은 전쟁 끝까지 기다란 아드리아해 해안선을 지켜냈다. 미국 관전무관단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해군은 아드리아해를 "오스트리아의 호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쟁 내내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던 협상국 해군의 일정량을 붙들어놓았다. 오헝해군의 위협이 없었다면 이들은 특히 동부 지중해와 다다넬스 해협으로 몰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1915년 다다넬스 해협에서 협상국이 승리했더라면 러시아로의 보급로가 열렸을 것이며 이는 전쟁의 향방을 바꾸거나 아니면 역사의 훨씬 큰 부분을 바꾸었을 것이다.

(후략)


출처
The Naval Policy of Austria-Hungary, 1867-1918

시리즈

https://m.dcinside.com/board/war/4855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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