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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전(往電) 제8·9·10·11호

메이지(明治) 41년(1908) 1월 4일 오후 6시 50분 발(發)
츠루하라(鶴原) 장관

신의주, 진남포, 마산, 인천, 군산, 목포, 부산 각 이사관

상해(上海) 방면에서 모젤 총 5만 정과 탄약을 근일 한국으로 밀수입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폭도에게 공급할 목적으로 개항장 이외의 지점에 상륙할 것이라고 미국영사관에서 은밀히 알려왔습니다. 이에 대한 단속을 적절히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위 글에서 1908년에 정미의병이 상하이에서 마우저 2만 5천정을 밀수 시도했다고 했는데 다른 기록을 보면 시벌 5만정이라 함.

의병이 이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좀 미심쩍은데 마침 상하이의 독일 은행에 고종의 내탕금이 보관되어 있었음




조회(照會) 제5호.
좌개(左開)한 안건을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통감부 공문을 받아보니,

“귀 국 황제폐하께서 서력 1903년 이후 당시 경성 주재 독일제국 판리공사 폰 살데른[후온살, von Saldern] 남작에게 의뢰하여 그 소개로 상하이에 있는 독아은행(獨亞銀行)을 거쳐 베를린[伯林] 할인은행(割引銀行)에 황실 내탕금을 보관 예치한바, 처음에는 금괴 및 일본 지폐로 18만원을 임치하고 다음에 은행 지폐로 18,500원과 5만 원을 두 차례 임치하였는지라. 이후 할인은행에서는 해당 금액으로 증권 등을 매입하여 매년 6월과 12월에 두 차례 이자를 계산하여 이를 원 금액에 채워 넣어, 서력 1906년 12월 31일에 보관 예치한 잔액이 본리를 합하여 독일 화폐 51만 8,800마르크[馬克]의 증권의 액면가라는 내용으로 금번 경성에 있는 독일 총영사의 통지가 있었는바, 위의 황실 내탕금을 외국 은행에 보관 예치함은 과연 어떠한 취지에서 나왔으며, 또 당시 귀 국 황제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경성에 있는 독일 판리공사와 본 사안의 교섭을 담당한 자는 누구인지, 귀 대신께서 전 황제폐하께 아뢰어 들으신 후 본 사안에 관한 확실한 전말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내용이므로 이에 따라 조회하니 살펴서 위 사안에 관한 사실을 아뢴 후 상세히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
궁내부 대신 (宮內府大臣) 이윤용(李允用) 각하

융희(隆熙) 원년(1907) 8월 5일




그리고 1906년과 1909년 통감부 문서를 보면 상해에도 민영돈이나 이범윤 같은 사람들이 고종의 밀지를 가지고 활동했음.

저 소총 구매 자금이 어쩌면 고종 지갑에서 나왔을지도? 너무 늦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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