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차대전이 끝나고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2머전의 승전국들인 미, 프, 영, 소 4개국에 의해 분단된다.
전쟁에서 쳐발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독일의 심장이라 불리우는 베를린은 본래 소련의 영역이었으나
그 상징성이 워낙 막대했기에 4개국이 분할통치하게 된다.
2차대전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뤘던 소련이었지만
그들은 빠르게 동유럽을 위성국화시키며
공산주의를 전유럽에 퍼뜨리기 시작했고,
이에 대항하여 미국이 '마셜 플랜'이라 명명된 지원정책으로
서유럽에 달러를 말그대로 쏟아부으면서
미-소간의 냉전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련은 아직까지 미국의 적수가 아니었다.
1947년 기준으로 소련의 GDP는 미국의 25% 수준이었고,
2차대전 사망자 5,000만명중 60%에 해당하는 2,700만명이
(일부 학자들은 4,000만명+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갈려나간
독소전쟁의 피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1949년,
미 본토를 상대로한 핵공격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진것은
SS-11과 SSBN이 배치된 1960년대 중반이 되어서였으니
그 이전까지는 소련에게 미국은 거대한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냉전 초기 미소 양국의 핵전력에 대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자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소련은 독일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하고
동독을 넘어 서독까지 공산화시키기 위해
1948년 6월 24일에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봉쇄하고
수도, 가스, 전기까지 차단해 고립시켜버린다.
당시 인구 220만의 대도시였던 서베를린은
졸지에 1942년의 스탈린그라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당장 서베를린에 남아있던 물자는 고작해야 36일치의 식량과
45일치의 석탄이 전부였으며, 봉쇄가 시작되자 사재기로 인해
대부분의 물자들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미국은 당연히 어이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잡혔을 것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해리 S.트루먼을 제외한 대부분의 각료들은
(오마 브래들리나 제임스 포레스탈같은 이들마저도)
미군을 서베를린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극소수의 강경파들만이 소련에 대한 핵공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뭐...이것도 나름 이유가 있기는 했다.
일단 서베를린 자체가 이미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버린
동독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당시 상황은 서방진영에게 있어서 상당히 좆같았다.
당시 서베를린을 포위한 소련군 병력만 50만명에 달했으며,
동유럽에 전개된 소련군의 규모는 180만명에 육박했다.
참고로 당시 주(駐)유럽 미군은 8만명 남짓...
게다가 소련은 상황이 악화된다면 언제든지 소련 본토에서
남자들을 긁어다가 만든 대규모 병력을 파병할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동유럽 위성국들의 군대도 동원할 수 있었다.
이와중에 미국과 영국은 종전 후 급속한 감군으로 인해
병력 규모가 크게 줄어서 무력으로는 봉쇄를 풀기 힘들었다.
당시 미군은 1,200만명에 달하던 병력들을 대부분 전역시키고
국방예산의 90%를 삭감, 공군과 해군장비의 70%,
육군사단 86%를 없애버렸을 정도로 군축에 진심이었고
프랑스는 끝까지 식민지를 유지시켜보겠답시고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중이라 소련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으며,
얘넨 전쟁으로 좆그지가 되어버려 그냥 돈이 없었다.
애초에 1954년까지 배급제였으니 할말 다했지 뭐
이런 좆같은 상황에서 누가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우리 비행기 남아도는데 이걸로 물자보급하죠?'
아마 당시 군인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불과 7년전인 1942년, 나치 독일이 똑같은 생각으로
스탈린그라드에 공중보급을 시도했다가 좆망한 전적이 있었다.
독일군은 하루에 300톤의 물자를 파울루스의 제 6군에게
보급하는것도 힘들어서 30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날려먹었는데
서베를린 시민들이 생존하기 위해 하루마다 보급해줘야 하는 양은
스탈린그라드의 제 6군이 요구했던 300톤의 12배,
그러니까 하루마다 3,600톤의 물자를 공수해야 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이냐면
당시 대표적인 수송기 C-47의 적재중량이 2.7톤이었으니
서베를린에 물자를 공수하기 위해서는
1일당 1,334대의 C-47이 투입되어야 했다.
뭐 현대 기준으로 계산해본다면
미군 전략/전술수송기인 C-17의 최대적재량이 77.5톤인데
1949년 서베를린에 C-17을 투입해 물자를 공수한다면
1일당 47대의 C-17이 필요하다.
갑자기 난이도가 급하락한거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리고 이 미친 작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당시 주유럽 미군 공군사령관이었던 커티스 르메이었다.
폭탄이든 케이크든 무언가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뜨리는데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작전의 성공을 위해 가용가능한 모든 수송기를 징발했다.
공군 수송기는 물론이고 해항대의 수송기까지 뺏어다가 동원했고,
종전 후 309전대에 쳐박혀있던 기체들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전역한 예비군들은 재소집되어 C-47과 C-54에 태워졌으며,
독일 현지에서는 전직 루프트바페 출신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이
다시 조국의 영광을 위해 징집되어 서베를린으로 보내졌다.
결국 소련은 1949년 5월 12일에 봉쇄를 풀었다.
자유세계의 위대한 승리였고, 냉전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미군은 서베를린의 교훈을 통해
C-130이나 C-141같은 대형 수송기들을 개발했지만
이들을 뛰어넘을 거대한 수송기가 필요했다.
당시에 한창 진행중이던 베트남전 때문이었다.
정글과 하천으로 이뤄진 복잡한 지형을 가진 베트남은
도로망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심각하게 열약했다.
전선에 필요한 대량의 보급품은 항구에서 하역한 다음
철도나 도로를 이용해 운반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베트남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미국은 선박들을 동원해 태평양을 건너 병력과 물자를 수송했고,
베트남에 도착한 다음 수송기나 헬기를 이용해 최전방까지
보급품들을 운반했지만, 이러한 공수작전을 진행하면서
미 공군은 기존에 사용하던 수송기들의 한계를 체감했다.
물론 C-130은 당시 최고의 전술수송기였고,
C-141은 1965년에 실전배치된 최신 기종이었기에
이들에게 심각한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전에서 소모되는 보급품의 양은
미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수송기들을 싹싹 긁어모아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는게 문제였다.
일단 C-141의 경우, 크기 자체는 C-17급인데 동체 구조가
협동체라 화물칸의 폭과 높이가 C-130급으로 제한되어
C-141의 최대 적재량이 32+톤 정도로
(C-17은 77.5톤)제한되는 결과를 낳았다.
C-130은 태생이 전술수송기라서 수송량이 작았다.
근데 뭐 슈퍼-130을 만들것도 아니라서
이건 그냥 체급의 한계였다.
따라서 1964년 3월에 미공군은
CX-HLS(CX-Heavy Logistics System)이라 불린
신규 전략수송기에 대한 ROC를 발표했다.
이 새로운 전략수송기의 스팩은 다음과 같았는데,
-페이로드 82톤
-최고속도 마하 0.75(800km/h)
-항속거리 5,000해리(9,300km)
-화물칸 폭 5.18m
-화물칸 높이 4.11m
-화물칸 길이 30m
-전/후방에 램프 장착
대략적으로 C-17+급의 체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잉, 록히드 마틴, 맥도넬 더글라스가 이 사업에 참가했고,
(마틴이랑 GD도 참가하긴 했는데 바로 광탈했다)
각각의 회사는 Model 750, C-5, D-916이라 명명된
설계안들을 미군에 제출했다.
Model 750
D-916
C-5
공군은 보잉의 설계안을 선호했으나,
록히드가 막판에 가격을 엄청나게 낮춰버리는 바람에
보잉의 설계안은 탈락하고 록히드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록히드는 C-5를 개발하면서 온갖 삽질을 거듭한 끝에
개발비로 10억 달러(현재가치로 108억 달러, 15조 4천억)를
허공에다 뿌려버리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무슨 결함이 생겼길래 이렇게 돈을 퍼부어야 했냐고?
화물을 싣고 이륙하면 날개에 금이 갔다.
덕분에 개량된 날개를 장착한 C-5A가 배치되는 1980년까지
C-5의 최대적재하중은 23톤으로 제한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록히드가 야심차게 개발하던
L-1011 트라이스타까지 250대만 팔아치우고 쫄딱 망해버리자
1970년대의 록히드는 엄청난 암흑기를 보냈다.
돈이 없어서 생산라인을 돌리지 못할 정도였으니 뭐...
T-7이랑 비슷한 기분이 드는거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여튼, 결국 사업에서 탈락한 보잉의 설계안을
눈여겨보던 한 항공회사가 있었으니......
다음편에 계속
르메이 이 좋은의미로단 나쁜의미로든 미친놈ㅋㅋ
747 글에 뜬금없이 2차대전부터 나오길래 뭔소린가 했더만 ㅋㅋ 이집 스토리텔링 잘하네
갑자기 난이도가 급하락한거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 개웃었네 ㅋㅋㅋ
정확히 말하면 서베를린의 교훈을 받아서 만들어진 건 C-124나 C-133 같은 최후기형 프로펠러 수송기 아닌가. C-141은 딱 그 기체들을 1대1로 대체할 만한 크기면서 전술수송기 역할도 겸할 수 있게 설계되는 바람에 화물칸 크기가 너무 작아진 거고
사실 계보상으로는 그게 맞지
역시 보잉이야
한때 엔지니어링의 정점이었던 보잉이 지금은 어쩌다 이지랄이 났노
보잉의 엔지니어링 역량은 월가가 해치웠으니 안심하라구 - dc App
가벼운 찐빠 (이륙하면 날개에 금감) - dc App
늘 보고있다 내가 못쓰고있는 뱅기 정보글의 한을 대신 풀어주고있어서 고마우이.... - dc App
C17 개오바였네
굿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