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6.25때 참전 대가로 한반도 재식민지화 요구했다는 시라카와 기이치로 저거 내가 쓴건데.
사실 저게 일본 군부의 망상이고 미국 점령 하에 주권 없던 일본 정부 입장에선 택도 없는 소리였음. 다만 현실성과 별개로 요시다 시게루도 마음 속으로는 그러고 싶었던거 같음.
1963년에 요시다 시게루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한반도가 일본의 국가안보에 중요한 관계가 있음은 새삼 말할 나위 없다.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한 외부위협은 한반도를 경유했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도 발단은 한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떠한가. 공산세력이 북쪽을 장악하여 38선을 연하고 있다. 만약에 남쪽 부산까지 지배하면 일본의 안보는 심각한 위협에 빠질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상은 만약에 과거의 일본이었더라면 일본은 자위전쟁을 유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태평한 분위기에 젖어 한가하게 마음을 놓고 향유하고 있는 것도 한국군과 유엔군이 함께 전선(前線)을 지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있으나 지적했듯이 일본의 안보는 안보조약에 의해서 미국의 보호를 받고, 한반도 전선은 유엔군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사부담은 가볍고 경이적인 경제발전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요시다는 한반도의 불안이 일본의 불안과 직결된다는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인식하고자 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은 패전으로 영토가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한반도는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전략적 관심지역이었으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미국이 그 힘의 공백을 대신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부산적기론’의 원조는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였던 사와다 겐조(澤田薕三)라는 자였다. 그는 1958년 6월 11일 열린 제4차 한일회담에 참석해서 이런 망언을 했다.
"38선을 압록강까지 밀어 부치는 것이 한일회담 교섭의 목적이다. 38선이 부산까지 내려오면, 일본은 당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잠든 조선관계 선열들의 영을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잊어선 안된다."
출처: <한국전쟁 당시 일본의 역할에 관한 연구- 일본의 대미 협력활동을 중심으로>, 이종판,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2007, 22~23쪽
즉, 능력은 없고 감히 공식적으로 주장 못하는 처지인거 누구보다 일본 정부도 잘 알지만 마음 속으론 하고 싶긴 하다 이 정도.
'지하에서 쳐자는 조선관계 선열들의 영' ㅇㅈㄹ하는거 보면 ㄹㅇ 그시절 일본은 아직 물이 덜빠졌었구나...
본인들은 이악물고 조선만큼은 안된다 했는데 미국이 좆까 시발아 하고 뚝배기 깬거니 뭐
반년추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신용을 지켰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저때 이승만이 들었으면 노발대발했겠네
실제로 노발대발했음. 일본군 파병 소리 나오니까 그러면 바로 국군이 총구 돌려서 개네들부터 쏴죽일거라고 바로 거품 뭄 - dc App
이지메의 나라답노 음습한게 - dc App
어휴
일본 자위대가 1963년에 2차 한국전 발발시 한반도 재진입 관련한 계획을 몰래 세웠다가 중의원에서 졸라 까였던 사건도 있었다고 함. 미쓰야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