機密第59號
본건에 관한 개요는 지난 27일자 機密 제47호로 말씀드렸고 또한 本使 착임 후 자체로 조사한 사실 등을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이번의 폭발탄 발명자는 지난 13일 제조 중에 폭발할 당시 현장에 쓰러졌던 慶尙道 大邱 거주 金昌濟라는 자인데, 이 사람은 전에 機器局에서 근무하던 (병기 제조 담당) 당시 몰래 폭발탄 제조법을 연구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앞서 獨立協會가 지부를 대구에 설치할 때 지부장으로 당의 세력 확장에 힘썼습니다. 작년 가을 정부가 民會와 의견 충돌한 이래 정부는 주로 협회의 토멸에 종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당의 세력이 날로 약해져서 끝내 해산하기에 이르렀음은 김창제 등이 항상 분개하는 바였습니다. 이에 폭발탄 사용의 뜻을 세워 시험 삼아 탄 하나를 만들었는데 성적이 매우 유효했습니다. 때문에 金은 그 방법을 갖고 상경하여 우선 南大門 밖에 賣藥店을 열었습니다. 한편으로 京城 상하의 형세를 관찰하니 일찍이 주동자로 국정 개혁을 부르짖던 독립협회원은 모두 실의에 빠져 있었고 중요 인물은 속박의 재앙을 피하여 몸을 外人에게 의탁하여 겨우 안전을 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본건에 있어서는 다같이 가렴주구를 일삼아 매관매직의 폐단이 다시 일어나 감히 국민의 병고를 돌보지 않는 상황을 보고 크게 격분하였습니다. 때문에 독립협회의 무리와 몰래 공모하여 끝내 폭력에 호소하여 현임 대신의 지위를 움직여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서로 합의되어 은밀히 그 처소에서 폭발탄 제조에 착수하여 우선 30발을 제조했습니다. 그 중 20발은 대형으로 사용에 공급하였고 나머지 10발은 소형으로서 호신용으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휴대하여 투하한 자는 4명의 한인으로 그 중 2명은 무관학교 생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8일 이래 밤마다 여러 곳에 투하하여 거의 이것을 다 사용했지만, 효력이 약하였기 때문에 다시 제조소를 朴泳孝의 옛 저택 안으로 옮기고 집주인 金俊龍 등과 힘을 다하여 한층 더 폭발력을 강대하게 하기 위하여 화약, 산탄, 硝子片 등까지도 혼합해서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3일 오후 7시경(몇 자 不明) 굉장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여 김창제와 조수 한인 아무개가 이로 인해 쓰러지고 가옥이 파괴되는 등 하나의 아수라장을 드러내어 범죄의 소굴이 곧 세상에 폭로되었습니다.
이 폭발이 있기 전날 밤 김창제는 일본인 아무개를 방문하여 본건의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그때 한 필담의 내용에 의하면, 이곳의 우두머리는 高永根인 듯하고 자금도 그 사람에게서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김창제는 혈기와 의협심이 있는 인물로 원래 군인으로 교육이 부족하고(이 내용은 이 사람의 필적 및 문장 등을 보아도 분명하다) 요컨대 자기 두뇌로 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수족이 되어서 활동하는 쪽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의 거사도 주동은 그가 아니라 오히려 고영근 등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고영근 등 외에도 한층 더 유력한 배후가 있는지, 일본 망명자 등이 뒷면에서 이에 관계하였는지 여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김창제는 그 필담에서 다만 유력자의 후원이 있었다고만 인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폭발약이 우리나라에서 제조 수입된 것이라는 의심이 한국 조정과 세상에 자자하나 이 약은 실제 이곳에서 사 들이고 또 제조한 것으로 그 대부분은 우리 상점에서 사 들이고 일부는 청나라에서 사들인 것도 있다고 합니다. 김창제의 필담 중에는 한국 약방에서 구입했다고 하지만 이는 우리 상인에게 화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고의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고, 또 약은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한 종류씩 각처에서 사서 모은 것으로 보입니다.
1899년 6월 30일자 주한일본공사관 문서
요약: 대한제국 시기 독립협회에 가담한 기기국 출신 김창제라는 화약기술자가 정부기관에 투척할 폭탄을 만들다 화약이 폭발해 발각, 체포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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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이포크스네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