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이후 조선은 서구의 무기에 경각심을 느끼고 양무서적을 연구해 신무기를 제작했다. 특히 포가 제작은 극적인 변화를 보였는데, 이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운현궁 小砲 포가다. 그런데 운현궁 소포 포가를 양무서적을 참고해 만든 다른 포가와 비교하면, 운현궁 소포 포가에는 양무서적만으로 습득하기 어려운 서구 군사기술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에서 양무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구 무기를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실물을 접한 정황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황은 메이지 일본의 외무성에서 작성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무성의 문서에 따르면 1873년 조선에서는 메이지 일본에서 만든 서구식 대포인 4근 산포를 수입했다. 또한 초량 왜관에서는 4근 산포를 비치해 시연하고 이를 조선인들에게 공개했다. 이처럼 조선이 공식 교역과 왜관 시연을 통해 접한 4근 산포의 포가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의 배경으로는 신미양요 직후 대포 개선의 필요성을 실감한 조선의 절박함,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구식 재고가 된 4근 산포를 일부 처분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운현궁 소포 포가는 병인양요 직후부터 1870년대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신무기 제작 노력의 일면, 그리고 조선이 일본제 대포 유입을 통해 국제적 무기 유통망에 포섭되는 정황을 드러낸다.
안 그래도 중국에서 수입한 양무서적이나 프랑스군에게 노획한 대포만을 보고서 저렇게 진일보한 대포를 만들 수 있었을까가 의문이었는데
답이 나온듯. 1870년대부터 조선이 일본 통해서 서구무기를 수입하려 했다고 함. 대마도 통한 화약원료 수입 루트는 그 전부터 있었으니까
1873년 조선 상인들이 일본에서 1860년대 말에 국산화한 프랑스식 4근 산포 4~5문을 수입해왔다고 함. 4근 산포는 프랑스군의 1859년식 산포를 복제한 것임.
1874년에는 초량왜관에서 조선 관료들과 일본외무성 관료들까지 온 가운데 대포 시험발사가 있었고 여기서 조선 관료들은 4근 산포의 성능을 상당히 높이 평가함
운현궁 대포들은 이렇게 수입한 일본 4근 산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함.
저번에 글 썼듯이 화약목총지법을 통한 퍼커션 캡 소총 자체생산 노력도 비슷한 움직임이었을듯.
이 주제로 연구가 더 진행되면 재밌는 게 많이 나올 것 같음.
출처
- dc official App
애네들도 문제점을 알고 바꾸려는거처럼 보이네
누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