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도 '유골'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2011년 5월 4일 북한은 6.25전쟁 때 사망한 영국군 비행사 데스몬트 프레드릭 윌리엄 힌톤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영국 측에 송환했다. 이 날 북한 언론은 관련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북한과 영국은 외교관계를 설정할 때 영국군 유해 송환문제도 적절하게 해결하자고 합의한 바 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없었다.


 영국은 그 후 영국군 비행사가 평양 교외에서 격추되었다는 자료를 북한 외무성에 보내왔다. 외무성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민무력부 판문점 대표부에 상기 자료를 통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문점대표부가 마치 큰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외무성에 문건을 보냈다. 평양시 룡성구역에서 영국군 비행사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해당 사실은 외무성을 통해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에 즉시 알려졌다.


 2004년 초 비행사의 동생인 데이비드 힌톤이 북한을 방문해 형의 유해가 매장된 장소를 찾았다. 그 후 동생은 영국 정부에 형의 유해를 고국으로 가져가 안장하고 싶다고 요청했고,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는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과 협의를 거쳐 비행사의 유해와 유품을 유족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8월 북한 주재 영국대사가 갑자기 외무성에 면담을 요총했다. DNA 검사 결과, 비행사의 유해가 아닌 짐승 뼈였다는 것이었다. '메구미 가짜 유골'때문에 이미 망신을 톡톡히 당했더 터라 나는 어이가 없었다. 영국에까지 사기를 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도 속으론 화를 품은 채 영국 측의 항의를 판문점대표부에 전달했다.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당당했다.


 "DNA 검사 장비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비행기가 격추된 장소 주변을 파서 유골을 넘겨주었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본인이 아니면 어쩔 수 없다. 유골 발굴을 하다 보면 짐승 뼈도 더러 나온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은 다시 한 번 망신살이 뻗칠 것이 분명했다. 외무성 간부들은 영국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게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영국대사를 다시 만나 "해당 기관에 DNA 검사 장비가 없어 생긴 일 같은데 이번 사건으로 양국 관계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국대사는 의외로 담담하게 "북한이 고의적으로 짐승 뼈를 보낸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영국은 이번 사건을 크게 떠들 생각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짐승 뼈 사건'은 이렇게 무마됐지만 속으로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처: ㅌㅇㅎ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기파랑, 2018년, ㅌㅇㅎ 저, 212~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