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류블랴나 김나지움 졸업 후 해사 입학
모국어는 독일어이지만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구사
1886년부터 1890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복무. 전공은 해양학이었지만 해군 포술 및 어뢰 기술에도 정통하였으며 1896년부터 1899년까지 어뢰학교 교수로 복무한 학구파임.
정치적 능력이나 인간관계 구축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라 같은 계급 장교들 중에서는 겉돌았고 초임장교들 앞에서 동료장교들을 쥰내 까곤 했음
하지만 어뢰학교에서 수많은 후임들을 아우르는 인간관계를 구축해 후임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음
49세가 되어서야 독자적 지휘권을 잡아 코르벳 도나우를 몰아 세계를 일주했고 의화단 사건이 터지자 순양함 마리아 테레지아의 함장이 되어 극동 원정에 참여, 1902년 귀국함. 이때 잠시 한국 들름
1902년부터 1905년까지는 해군부 요새국장 역임. 이때부터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눈에 들기 시작함.
1907년 소장 진급 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오스트리아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 1908년부터 1909년까지 전단장으로 복무, 1911년 중장 진급 후 해군기술위원회장으로 복무
이후 함대감찰관으로 영전해 풀라에서 지내다가 1913년 전임 몬테쿠콜리 제독의 퇴임으로 함대사령관이자 해군부장으로 영전하고 대장 진급.
1913년 3월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구조조정으로 빈에서 풀라로 자리를 옮겼음. 기존의 직함은 유지한 대신 해군부장 대리로 카를 카일러 폰 칼텐펠스 중장을 빈에 둠.
1913년부터 1914년까지는 지중해에서의 동맹국 합동해군 구성에 대해 이탈리아 해군의 파올로 타온 디 레벨 해참총장, 독일의 빌헬름 수숑 지중해함대 사령관과 만나 논의했음
1914년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자 가용 함대를 모두 끌고가 유해를 운구했음. 이 때문에 내각회의에는 칼텐펠스가 대리 참석함
이후 전쟁이 본격적으로 터져 주요 석탄산지인 영국과 연결이 끊어져 함대연료 충당이 불가해지고 건함계획도 중단되자 현존함대전략을 선언함.
1915년 이탈리아가 전쟁에 참전하자 직접 주력함대를 끌고 안코나를 박살냈고 1916년 말 신설된 상급대장 계급을 받았음.
1916년 연말 독일의 헤닝 폰 홀첸도르프 해군 원수가 빈을 찾아와 무제한 잠수함 계획을 알리자 이를 지지했고, 빈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는 미국의 참전위험에 대해 걱정할 게 없다고 답함
1917년 초 독일로 가 빌헬름 2세와 OKH를 만났지만 돌아오는 길에 폐렴에 걸렸고, 얼마 지나지 않은 2월에 기함 비리부스 우니티스 함상에서 사망함.
장례식은 그대로 기함에서 치러졌고 이후 풀라에 묻혔다가 전후에 빈으로 이장됐음.
출처
The Naval Policy of Austria-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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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코나 박살냈다는게 해안포격하고 튀었다는 뜻임? 근데 영국서 석탄수급하던 상황에 영국이랑 전쟁하면서 제대로 비축도 안해둔건가
ㅇㅇ 안코나 해안포격 - dc App
제대로 비축한 편임. 하우스는 발칸전쟁 때 함대 기동하면서 꽤나 석탄이 많이 든다는 걸 파악했음. 그래서 하우스는 1912년 대비 2~3배는 많은 석탄을 구매해 저장했고 그 덕에 1차대전을 치를 수 있었음. - dc App
다만 그래도 함대가 한번 기동하기 시작하면 1시간에 석탄을 천톤씩 퍼먹어댔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음 - dc App
최소 60대로 보이는데 40대?
저 사진 찍은건 60대 맞을거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