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은 아이젠하워가 필리핀에서 복무하는 동안 가장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한 해였다. 바로 그때 아이젠하워와 맥아더와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1938년 1월,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 국민들이 마닐라에 있는 자국 군대를 볼 수 있다면 사기를 북돋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군사력 과시의 절정은 대규모 퍼레이드가 될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맥아더는 필리핀 대통령 케손과 퍼레이드에 계획된 병력 이동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화가 난 케손이 맥아더에게 질문하자, 맥아더는 자신이 아이젠하워에게 퍼레이드를 고려해보라는 명령만 했으며, 그 계획을 강행한 것은 자신의 열정적인 부관들이라 비난했다. 맥아더는 본부로 돌아와 모든 참모진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그는 참모진에게 자신은 조용히 퍼레이드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라는 거였지 퍼레이드를 강행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맥아더가 자신의 정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격분한 아이젠하워는 폭발했다.
"장군님, 당신은 제가 거짓말쟁이라 말씀하시는군요. 거짓말쟁이인 저는 그럼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https://www.ausa.org/articles/eisenhower-and-macarthur-toil-trouble-and-turbulence-philippines
Eisenhower and MacArthur: Toil, Trouble and Turbulence in the Philippines“Hostility between us has been exaggerated.www.ausa.org관련 내용 출처
참고로 해당 사건 이후 맥아더는 아이젠하워가 필리핀 군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고자 미국을 방문했을때, 자신의 수석 보좌관(필리핀군 참모총장) 역할을 아이젠하워 대신 리처드 서덜랜드 소령으로 교체함. 이건 위 사건도 관련 있었지만 아이젠하워가 맥아더 보다 더 케손 대통령과 친밀했기 때문에 질투심으로 교체했다고 보는게 맞음.
그런데 케손이 아이젠하워를 더 신임한 건 맥아더가 재혼 생활 하면서 필리핀군 육성 계획은 제대로 관리 안하고 유기하는 동안, 아이젠하워가 혼자 개고생 하면서 (필리핀군 육군항공대 창설때 본인이 비행사 자격증 따는 노력까지 함) 케손과 협업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음.
케손은 아이젠하워를 붙잡기 위해 백지 수표까지 제시했지만 결국 아이젠하워는 미국으로 돌아감.
잘못은 맥아더가 하고 손해는 케손이 보네
케손의 아이젠하워에 대한 신뢰는 커서, 1942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아이젠하워와 만났을 때 지난 시절 필리핀에 대한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금을 사례하려고 했음. 아이젠하워는 금은 거절하고 봉사 표창만 받음
꼬리짜르기 고수
아이크 추
이쯤되면 아이크가 맥아더한테 총 안 쏜게 이상한데; - dc App
미 육군의 부처
저양반은 인천상륙작전만 아니었으면 진짜 개새끼네
맥아더 대신 패튼이나 마셜이 유엔군 사령관 했으면 어떨까 싶다. 리지웨이도 있기는 하고 진짜 명장이긴 한데, 이 양반은 여기 오면서 처음 한 말부터가 싹수가 없어서 개인적으론 싫어함
ㄴ 한국전 때 참전하셨던 조부님 말씀 들어보면, 사병들의 인민군에 대한 전의는 대단했지만 당시에 국군 장교나 지휘관들에 대한 리지웨이의 평가는 꽤나 정확했다고 나는 생각함
오죽하면 니미츠도 디스할까...
이런 맥아더를 빠는 놈들도 있다는게 웃김
저 양반 전기 제목이 "아메리칸 시저"죠. 다행히도 시저처럼 암살 안 당하고 은퇴했지만.
맥아더의 필리핀 원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