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사 고문단은 1935년 10월 26일 필리핀 마닐라에 상륙했다.


아이젠하워의 주요 업무는 필리핀 방위 계획 수립이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아이젠하워에게 너무나 좌절스러웠고, 그는 개인 회고록인 " At Ease: Stories I Tell to Friends"에 관련 일화들을 1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했다.




필리핀에서 맥아더와 함께 복무했던 아이젠하워는 마닐라에 도착하자마자 맥아더와 동행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936년 8월 24일, 케손이 맥아더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을 때, 아이젠하워는 그 모든 행사가 "환상일 뿐 (rather fantastic)"이라고 생각하며 맥아더에게 칭호를 거부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몇 년 후, 그는 그 칭호가 케손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맥아더 자신의 아이디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젠하워는 예스맨 뿐인 주변 사람들에게만 호의를 베푸는 상사의 성향에 대한 좌절감을 토로했다.


그는 장군이 "더글러스 맥아더의 우월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




몇 달 후,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맥아더 장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석 보좌관이라는 직책을 유지했다. … 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만약 원수가 그의 자의적인 방법을 고집하고, 상황을 불쾌하게, 아니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전 육군 참모총장 맥아더와 마닐라에 도착한 이후 함께한 2년을 회고하며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야망, 개인적인 영광,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된 어려움으로 사방에서 시달렸다." 




https://www.ausa.org/articles/eisenhower-and-macarthur-toil-trouble-and-turbulence-philippines

Eisenhower and MacArthur: Toil, Trouble and Turbulence in the Philippines“Hostility between us has been exaggerated.www.au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