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성-시가지는 머한 뒷산은 북괴라 북괴가 그쪽에 군 주둔시켜서 개성시는 허구한날 야포로 처맞고 국지전때 포위까지 당하는 동네북 호구 신세로 전락.
2.옹진-육지로 연결되는 부분은 북이고 반도만 남이라 위는 북괴, 삼면은 바다로 사실상 고립. 미소군정기엔 소련군정이 미군정의 육상통로 이용을 방해해서 곤란한 처지에 처하기도 하고, 개성과 함께 국지전 동네북으로 전락
3.연백-위 동네북 개성을 본토와 사이에 둔데다 38선이 관통하는 은천면의 토해선 철도 배천역이 38선과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로 625때 이역이 점령당함과 동시에 육상퇴로가 차단되어 배든 헤엄이든 한강 하류를 건너 강화도로 런하는거 밖에 안남음
4.서울-연천군 전역이 북괴령이라 동두천,의정부 털리기 무섭게 3일만에 함락. 그나마 개성 쪽은 일단 포기하고 한강 남쪽으로 가서 버티는 거라도 있지 이쪽은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서 북괴군 땅끄에 존나게 무력했던걸로 암
솔까 미군성님들도 옹진반도를 보면 38선 그을생각 못했을텐데
솔직히 3830선이 이상적이긴 했지만은, 소련측이 어떻게 생각하였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dc App
북한쪽도 해주가 항구기능을 상실해버림. 바다로 나가는 출구가 몽땅 한국령이거든.
적어도 북괴는 해주항 고자된거 빼면 딱히 불리한건 없었음
덤으로 원래는 해주의 일부인 옹당포 같은 곳이 38선 이남이라는 골때리는 상황 발생. 그래서 여긴 미군정과 소련군정이 합의를 해서 육지는 몽땅 북한인데 바다는 한국령으로 잡음. 그래서 한국전쟁 전에 북한 사람이 월남할 때 옹당포 근방에서 바다로 배 띄우면 북한군이 욕만 하고 사격은 못하는 웃기는 상황 발생.
당연하지. 북한쪽은 고지대가 많아서 한국쪽 방어진지를 뻔히 내려다보는 곳이 많아서 방어상 유리했음.
한국의 경우 옹진반도부터 춘천까지 방어에 유리한 곳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음. 특히 옹진반도 구간과 해주 동쪽의 청단부터 개성 및 고랑포 구간은 유사시 포기할 지역으로 선정할 정도니 말 다했음. 웃기는 것은 그렇게 해놓고 구체적인 철수계획같은 것은 잡지도 않고 그냥 무조건 사수만 외치는 경향이 커서 한국전쟁 개전 초반에 혼란이 가중되었음.
이러다보니 38선 방어도 한국은 병력 부족한 탓도 있어서 옹진반도 서부, 청단 동쪽부터 연백같은 지역은 방어병력에서 소수의 분견대 파견해서 경비하거나 경찰이 방어함. 그나마 이것도 양호한 편인데 해주 동쪽에서 청단 서쪽 사이의 구간같은 곳은 그냥 방치.
방치??
38선은 요즘 휴전선처럼 방어진지로 연결된 물샐틈 없는 경비를 한 것이 아니거든. 북한은 그나마 내부단속 목적도 있기에 대부분 진지를 깔아두었지만 한국은 그럴 병력도, 돈도 없어서 38선 자체는 주요 도로에만 경비목적으로 극소수 병력을 검문소 같이 배치해두고 조금 남쪽에 주진지 만들고 병력을 배치함.
그나마 자주 전투가 벌어져서 방어할 목적으로 1개 연대 박아놓은 옹진반도야 서쪽 방면의 우회공격 힘든 구간 정도만 경찰에게 방어를 담당하게 하고 주전력은 주로 적이 쳐들어오는 중앙부 - 동측 방어를 담당함. 문제는 해주 동쪽에서 청단, 연백, 개성, 고랑포까지의 거의 100킬로 구간인데 여길 1개 연대로 방어해야 하는데다가 주전력은 개성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1개 연대중 2개 대대는 모아서 개성을 중점적으로 방어하고 개성과 고랑포 사이 구간도 정찰대 정도 보내서 경비하며, 나머지 1개 대대로 해주 동쪽부터 개성까지의 구간을 방어하는 것임. 당연히 이렇게 된 1개 대대는 말 그대로 갈갈이 찢어서 분산배치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딱 연백 정도가 그나마 방어 시늉이라도 가능한 것임.
그러니 실제로는 연백부터 청단까지의 구간은 경찰이 담당하는데 경찰이라고 해서 인원이 풍족한 것이 아니지. 그러니 청단까지만 방어시늉하고 그 서쪽구간, 즉 해주 동쪽부터 청단 서쪽 사이 구간은 방치한 것임. 어차피 그 쪽으로 밀려와도 가장 서쪽 지역이라서 방어병력 분단이 불가능하고 쓸데없이 우회하는 사태가 나니까 내버려둔 것임.
ㄱㅅ
사실 이렇게 방어전면이 감당 불가능하게 늘어난 것이 38선 방어 당시의 한국군 상황이었음. 옹진반도의 독립 제17연대가 40킬로, 1사단이 100킬로, 7사단이 20킬로, 6사단이 100킬로, 8사단이 20킬로 정도였음. 그나마 방어전선 짧은 7사단의 20킬로도 의정부 방면인지라 방어선 잡을 곳이 아주 안좋은 곳이고 그나마 동해안의 길목 험지가 38선에 있는 8사단이 유리하긴 한데 동해를 따라서 소규모라도 상륙작전 들어가면 분단되기 딱 좋았고 이건 실제로 한국전쟁 극초반에 일어나고 남.
오
6사단의 경우에는 춘천쪽이 방어에 유리해서 감이 잘 안올 수 있는데 산악지대 100킬로를 담당하니 인제 방면에도 병력을 1개 연대를 배치해야 했고 산악지대라 대부분의 구간은 방치상태. 실제 한국전쟁 개전시에 춘천은 방어했으나 인제쪽이 뚫려서 하마터면 춘천을 방어하던 부대가 포위당할 뻔 했음. 북한군이 춘천을 점령해야 한다고 인제쪽 부대를 거꾸로 되돌려서 춘천을 공격했기 때문에 위기를 넘김.
8사단쪽은 결국 한국전쟁 개전시에 보트같은거 타고 동해안에 분산상륙한 북한군 덕분에 사방으로 분단되었음. 그래서 태백산맥 넘어 서쪽으로 분산철수 할 수 밖에 없었고 동해안 도로가 개방되버림. 그래서 급히 남쪽에 있는 3사단의 1개연대를 동해안으로 보내서 울진 - 영덕까지 지연전을 함. 영덕부터는 낙동강 방어전에 포함됨. 이쪽은 병력이 부족해서 미 해군과 공군이 화력지원을 엄청나게 해줘서 버틸 수 있었음.
솔직히 말해서 38선 형성 뒤에 미군정과 소련군정이 말 안되는 38선 대신 경기도는 도 경계선으로 잡고 강원도는 내부의 군 경계선들을 이어서 신규 경계선을 잡자고 협의를 하긴 했는데 양자간 의견 대립 및 서로 손해볼 수 없다로 결렬됨. 만일 이런 협상이 성공했다면 한국전쟁이 나더라도 38선 방어할 때보다는 병력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방어진지도 제대로 잡았겠지. 물론 개성도 그 지경이 나진 않았을 것임.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