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 6주컷은 히틀러의 번뜩이는 재치였는가?

일단 낫질 작전은 이 사람이 기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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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만슈 중장

히틀러가 낫질 작전을 승인하고 밀어붙인 건 배경이 있음.

일단 프란츠 할더의 계획이 구식이었음.

프란츠 할더의 초기 계획은 저지대 국가를 통과해 프랑스를 공격한다는 쉴리펜 계획에서 크게 발전한 게 없는 것이었음. 여기서 이미 히틀러는 1차로 삔또 상했음.

그나마 이 계획조차 사고로 연합군에 노출되서 폐기해야 했기 때문에 쓸 수 없었음. 즉 대안이 없었음.

그러자 동부전선으로 좌천된 만슈타인 중장이 소위 낫질 작전 기획서를 아는 친구였던 트레슈코프를 통해 히틀러에게 직보됐고 이를 본 히틀러가 승인하며 일이 커진 거임.

(참고 : 트레슈코프는 수많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끼여 있음.)


2. 바르바로사 작전의 시행 타이밍이 적절했는가?

1941년 시점의 소련군은 일종의 과도기였음. 수정주의적 관점을 일부 빌리자면 소련군 내 썩은물들을 도려내고 소장파 장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던 상황, 구식무기를 신형무기로 교체하는 상황, 소-폴 국경선에 있던 기존의 방어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방어선을 독-소 분할선에 건설하고 있던 상황이었음.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었음.

그런 점에서는 나름 적절했던 것도 맞음.

하지만 뜯어보면 여러 가지 함정이 있었음.

일단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공세 시점이 연기됨. 원래 소련과의 전쟁을 개전할 시점에 발칸 반도 정세가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히틀러의 즉흥적인 결정에 따라 발칸 전선을 확장하게 되고 이에 따라 대소 공세가 몇 개월 연기되게 됨.

거기에 바르바로사 작전 기획도 뜯어보면 함정이 있었음.

상식적으로 소련 영토를 공격하는 데 보급이 큰 문제가 될 것은 자명했음. 하지만 독일군은 프랑스 전역의 교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는지 자동차 등과 같은 장거리 수송에 비효율적인 수단을 중용하게 됨. 거기에 철도 궤간 문제, 낮은 차량화율에 따른 마차 의존 문제 등등이 겹쳐 독일군이 우크라이나, 백러시아(벨라루스), 발트3국을 통과한 후부터 점차 보급난이 가중됨.

이러한 보급 문제는 결국 끝까지 독일군을 괴롭히는 요소가 되어 독일군의 역량을 약화시키게 됨.


3. 그러면 히틀러의 군재가 아예 폐급이었는가?

이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음.

왜냐면 당시 OKW가 이전의 독일군을 답습한 듯 전술적 차원, 조금 더 나아가 작전술적 차원에서의 승리의 누적을 바탕으로 한 전쟁의 승리 이상의 무언가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임.

그들의 선배였던 루텐도르프가 총력전론을 주창하며 이전과 다른 전쟁 양태를 경험하고 이를 일종의 이론으로 체계화시킨 것과 달리 OKW, OKH, OKL, OKM는 2차대전의 총력전, 절멸전에 대한 대비나 기획을 제대로 못했음.

그에 반해 히틀러는 나름 직관적으로나마 총력전을 이해하고 전간기에 폭력적인 방법으로 산업을 키워 총력전 역량을 키우고 전쟁 중에는 적의 산업 역량을 뺏고 그것을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에 투자하려는 모습을 보임.

대표적으로 청색 상황 (Fall Blau)을 기획할 때 남부 전선에 역량을 집중해 소련의 식량, 자원, 산업 역량을 탈취할려고 했을 때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군인은 그리 많지 않았음.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 따리가 또 개소리 하네' 정도로 받아들였을 뿐.

이런 모습은 전쟁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전쟁을 수행하는 유무형의 자원, 예컨대 산업 역량 같은 것들이 부족해서 졌다는 인식보다는 그저 "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 히틀러 그 놈이 내 말 안 들어서 졌음" 수준에 머물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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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말함. ㅅㄱ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