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月。(중략) 順陽習射,以備不虞。
2월. (중략) 만일을 대비해 순양일 때 사격 연습을 한다.
八月。 (중략) 得涼燥,可上角弓、弩,繕治,檠正,縛徽絃,遂以習射。施竹木弓及弧。木弓謂之弧,音孤也。
8월. (중략) 서늘하고 건조해지면, 각궁과 쇠뇌를 꺼내어 수리하고, 활줄과 활대를 조정하여 맞추고, 무리를 모아 사격 연습을 한다. 대나무와 나무로 활을 만들어 둔다.
九月。(중략) 繕五兵,習戰射,以備寒凍窮戹之寇。
9월. (중략) 다섯가지 병장기를 정비하고 사격과 전투 훈련을 한다. 추운 날 빈곤한 도적들이 쳐들어오는 걸 대비하기 위함이다. ㅡ 사민월령
魏書曰:有司奏:「四時講武於農隙. 漢承秦制, 三時不講, 唯十月都試車馬, 幸長水南門, 會五營士爲八陳進退, 名曰乘之. 今金革未偃, 士民素習, 自今已後, 可無四時講武, 但以立秋擇吉日大朝車騎, 號曰治兵, 上合禮名, 下承漢制.」奏可.
[위서] – 유사(有司)가 상주했다., “사시(四時-네 계절)로 농사일 하는 틈에 강무(講武-무예를 강습함)해야 하나 한(漢)이 진(秦)의 제도를 이어받아 삼시(三時)에는 강무하지 않고 오직 10월에만 거마(車馬-병거와 기마)를 도시(都試-한나라 때 군사훈련을 겸해 무관을 뽑던 제도)하고 장수남문(長水南門)으로 행차해 오영(五營)의 군사들을 모아놓고 8진(八陳)을 짜고 진퇴(進退)하니 이를 승지(乘之)라 했습니다. 지금 금혁(金革-전쟁)이 끝나지 않아 군사와 백성들이 평소에 무예를 익히니 지금 이후로 가히 사시에 강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가을이 되면 길일을 택해 거기(車騎-병거와 기마)를 크게 모으고 이를 치병(治兵)이라 하면, 위로는 예의와 명분에 부합하고 아래로는 한(漢)의 제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상주한 것이 허락되었다. ㅡ 삼국지 위서 무제기 주석
會靈帝崩, 天下大亂, 單于將數千騎與白波賊合兵寇河內諸郡. 時民皆保聚, 鈔掠無利, 而兵遂挫傷. 復欲歸國, 國人不受, 乃止河東.
때 마침 영제(靈帝)가 죽었고 천하가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어부라는 수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백파적(白波賊)과 합병(合兵)하여 하내(河內)의 여러 군(郡)을 침입하여 노략질하였다. 당시 백성들이 모두 무리를 이루어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노략질하여도 이득이 없었다. 그리하여 [선우의] 군대는 마침내 세력이 꺾이고 [나아가] 이지러졌다. 선우는 다시 귀국하려고 했지만 흉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는] 마침내 하동(河東)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다. ㅡ 후한서 남흉노열전
禁民不得挾弩鎧,徙西海。
백성들이 쇠뇌나 갑옷을 몰래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위반자는 서해(西海)로 이주시켰다. ㅡ 한서 왕망전
《漢官儀》曰:「民年二十三為正,一歲以為衛士,一歲為材官騎士,習射御、騎馳戰陣。八月,太守、都尉、令、長、相、丞、尉會都試課殿最。水家為樓船,亦習戰射。行船過郡,太守各將萬騎行障塞,烽火追鹵。置長史一人,丞一人,治兵。民當兵行,長領置部尉千人,司馬、候、農都尉皆不治民,不給衛士。材官、樓船年五十六老衰」 ,乃得免為民就田,應合選為亭長。亭長課徼,巡尉、游徼。亭長皆習設備五兵。五兵弓弩戟楯、刀劍、甲鎧。鼓吏赤幘行縢,帶劍佩刀,持楯被甲,設矛戟,習射。設十里一亭,亭長亭候。五里一郵,郵間相去二里半,司姦盜。亭長持二尺板以劾賊,索繩以收執賊。
한관의에서 이르기를 “백성은 23세가 되면 정병(正)이 되어, 1년은 위사(衛士)로, 또 1년은 재관기사(材官騎士)으로 복무하며, 활쏘기와 수레 몰기, 기마와 전투 진형을 익힌다. 8월이 되면 태수, 도위, 영, 장, 상, 승, 위 등이 함께 모여 성적을 시험하고 성과를 평가한다. 수가(水家)는 누선(樓船)을 맡아 만들고, 역시 전투와 활쏘기를 익힌다. 전선(戰船)이 군(郡)을 지나갈 때에는, 태수가 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나와 길을 열고 요새를 지키며, 봉화로 침입을 추적한다.
장사(長史) 1명, 승(丞) 1명을 두어 군무(軍務)를 맡긴다. 백성이 군대에 따라 나아가야 할 경우, 장령(長領)은 부위(部尉) 1,000명을 배치하고, 사마(司馬), 후(候), 농도위(農都尉)는 모두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며, 위사(衛士)도 주지 않는다. 재관(材官)과 누선(樓船)에 복무하는 자는 56세가 되어 늙고 쇠약해지면 비로소 병역에서 면제되어 백성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정장(亭長)으로 선발될 수 있다.
정장(亭長)은 순찰 임무를 맡고, 순위(巡尉) 및 유초(游徼)와 함께 근무한다. 정장(亭長)은 모두 오병(五兵)의 장비를 익힌다. 오병이란 활과 쇠뇌(弓弩), 극(戟)과 방패(楯), 도검(刀劍), 갑옷(甲鎧)이다. 북을 치는 이들은 붉은 두건을 쓰고 행동화(行縢)를 신으며, 칼을 차고 방패를 들고 갑옷을 입으며, 모극(矛戟)을 갖추고 활쏘기를 익힌다.
10리(里)에 하나씩 정(亭)을 두고, 정장(亭長)과 정후(亭候)를 배치한다. 5리(里)에 하나씩 우(郵)를 두고, 우역 간의 거리는 2리(里) 반이며, 도적을 감시하고 단속한다. 정장은 길이 2척(尺) 되는 판자를 들고 도적을 탄핵하고, 새끼줄로 도적을 묶어 체포한다.” ㅡ 후한서 백관지
지방 행정기관에서 군사훈련 시켜주고 동네 지주들이 모아서 군사훈련 시켜주고 집집마다 갑옷이랑 쇠뇌 쟁여놓음
이거완전 스위스군...
이거 일반(제일밑바닥) 농민들이 가는거임? 로마같은곳은 돈없으면 군대도 못가거나 좆같은보직보내던데
징병제라 전체 해당이고 돈 내고 대체 가능 변방도 돈 많이 주고 보냈다가 죄지은 사람이 가는 걸로 바뀜
중앙집권이 안되어서 서로 자기 관할 구역 안키워두면 주인 바뀌는건 시간문제라 그런가
중앙집권이 안 된다기에는 후한은 거의 대체불가능한 걸로 여겨진 체제라. 그냥 후한대부터 사병조직(부곡)이 발달하기 시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