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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이 영국령 인도제국이 되면서 영국은 인도 전체를 직접통치하기 보단, 각 토호들에게 공납을 받으면서 토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번왕국 체제를 유지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잠무 카슈미르 왕국이었음.


잠무는 힌두교 다수지역(60%)이고, 카슈미르는 무슬림 다수지역(90%)임을 감안하면 좋음



암튼 잠무 카슈미르 왕국의 탄생 배경은 복잡한데


영국-시크 전쟁에서 1846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승기를 잡자 시크 제국은 동인도 회사와 평화 협정을 맺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동인도회사에게 1.5크로크(1,500만 루피)의 배상금과 일부 영토 할양, 시크 제국군의 감축을 조건으로 내걸었음. 


당시 협상을 주도하던건 제국의 총리(wazir)였던 굴랍 싱이었는데, 당시 섭정을 맡으며 실권을 장악하던 진드 카우르는 총리에서 굴랍 싱을 해임하고 랄 싱을 총리로 앉히면서 재협상을 기도했음.


당시 새로 총리가 된 랄 싱은 “1.5 크로크는 너무 많고 영토 추가 할양을 해줄테니 0.5 크로크만 배상하고 1크로크는 땅으로 대신 주겠다.”라고 제안을 했고, 이때 제안된 지역이 바로 잠무-카슈미르 지역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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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랍 싱 : 씨발년아


문제는 이게 진드 카우르와 랄 싱의 개씹 좆간질이었다는건데, 이전 시크제국 총리였던 굴랍 싱이 이 할양될 지역 토호였다는거임.


즉 대충 뇌피셜을 굴려봐도 진드 카우르와 랄 싱이 굴랍 싱을 축출하면서, 책임을 물려 기반이 되던 영지를 영국에게 떠넘기고 시크 제국의 정치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명백한 딜이었음.


날아가는게 시크 제국의 국토이긴 하지만 어차피 토호들에게 실질적인 통치권이 있는 상황에서, 배상금은 66.7%나 아끼면서 전 총리였던 굴랍 싱의 영지를 넘겨서 이새끼를 중앙정계에서 쫒아낼 수 있으니 오히려 시크 제국 권력층 입장에선 개꿀딜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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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 : ㅎㅎ…ㅈㅅ!!


근데 좆간질 마스터 앞에서 이런 허술한 좆간질 따위는 의미가 없었던게 이미 영국과 굴랍 싱은 카슈미르를 통치하기 위해 이미 뒤에서 수차례 접촉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은 나도 댓글 보고 찾아보니 정황 상 굴랍 싱이 먼저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함. 정확한 사실은 드러난게 없어서 모름, 그래서 수정함)



영국과 합의된 조건은… “1 크로크(1,000만 루피)의 배상금을 니가 내면 잠무 카슈미르를 독립시켜 니 왕국으로 보장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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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루피는 너무 많다. 750만으로 합시다.


국내 통수가 얼얼하던 굴랍 싱은 따봉을 외치긴 했으나… 천만 루피를 좀 깎아서 최종 협상액은 750만루피가 됨. 다만 이 내용도 여러 영국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나온 말이지 실제 정사에 기록된 것은 없음.



또한 영국은 굴랍 싱에게 매년 세금과 영국령 인도제국에 충성맹세하는 번왕국이 되라고 요구함.


배상금의 25%가 탕감되는 대신 영국의 속령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굴랍 싱은 아까 했던 따봉에 쌍따봉을 갈기며 바로 고개를 숙이고 영국 국왕, 인도 제국 황제의 제후가 되어버림.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영국령 인도 제국은 해체되고, 파키스탄(방글라데시 포함)과 인도과 갈라질 때가 되자


영국은 이런 제후들을 팽하면서 느그덜 알아서 결정하라고 몸만 빠져나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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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는 잠무 카슈미르 왕국의 라자(왕)이었던 하리 싱도 있었음.


하리 싱은 당시 이 판도에서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이슬람교도들이 절대다수인 이 지역의 통치자는 시크교도였고 막상 양대 거대 세력이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왕 노릇 그만하고 우리 밑으로 들어오라고 계속 오퍼를 넣고 있었기 때문임


영국의 이 지역 군사력을 그대로 먹은 양대 강국 앞에서 이런 작은 번왕국은 한줌단에 불과했는데, 하필이면 이동네가 딱 인도와 파키스탄의 중간지대라 양쪽에게 협박과 러브콜을 동시에 받는 구역이 되었다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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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만 주시면 인도인이 되겠습니다.”


하리 싱은 일단은 간을 보기 위해 국가를 유지하고 싶어했으나,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인 상황에서 무슬림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지고 있었고, 파키스탄은 이 지역의 무슬림을 동원해서 왕국 내부의 분탕질을 했음.


이 분탕질은 극에 달해서 1947년엔 파키스탄의 지원을 업은 무슬림 반군에 의한 봉기가 국토 상당수를 점거하는 지경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하리 싱은 인도에 살려달라고 헬프를 쳤음.


인도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 무력으로 개입을 시작하여 파키스탄과 인도는 각자 영토를 점령하고 충돌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1949년 유엔의 중재안이 있을때까지 벌어졌던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으로 기록됨.


이 결과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30% 가량이 파키스탄(무슬림 봉기로 점거당한 구역들)땅이 되고, 나머지 하리 싱 치하에 있던 구역 60%는 진주한 인도군에 의해 인도 땅이 됨.





사실 분쟁은 여기서 끝나면 좋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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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짱깨가 이 지역의 확보를 두고 인도에게 군사행동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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