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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즈의 애착인형 1호는 바로 비행기였다.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탑승했던 커티스제 수상기에 대한 기억은
그가 평생동안 항공기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들었다.

14살에 부모님 몰래 처음으로 비행기를 조종했던 휴즈는
비행학교 3곳에서 항공기 조종법을 완벽히 숙달한 이후
전에 서술한 '지옥의 천사들' 을 쵤영하는 과정에서
직접 비행기를 몰고 스턴트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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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촬영에 100대가 넘는 구식 복엽기들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휴즈는 글렌 오데커크 (Glenn Odekirk, 1905~1987)라는
항공 엔지니어를 고용해 비행기들을 관리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정말 의외로 휴즈와 궁합이 잘 맞았고,
둘은 하루가 멀다하고 비행기에 대해 토론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빠른 항공기를 만들기로 약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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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휴즈는 단순히 세계기록 갱신을 위해
항공회사를 하나 창업해비리는 기행을 저질러버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지금은 레이시온에 합병된 휴즈 항공으로,
AIM-54 피닉스랑 BGM-71 TOW를 개뱔한 거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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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록히드 항공이 소유한 격납고에서 창립된 휴즈 항공은
창업과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리처드 팔머라는 공학자를 설계사로 고용하여 기본설계를 진행,
1935년에 H-1 레이서라는 이름의 항공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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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봐도 얇고 날렵하게 생겨먹은 H-1의 외형은
세상에서 가장 깔끔하고 우아한 비행기를 만들라는
하워드 휴즈의 개인적인 지시사항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풍동 테스트 시설에서
축소모형을 이용한 여러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한 뒤에야
항공기의 본격적인 조립이 허가되었을 정도로
엄격한 설계기준을 적용했던 이 비행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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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하늘을 날아다니던 못생긴 항공기들과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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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비행기의 조립에는 기존에 쓰이던 울퉁불퉁한 리벳이 아니라
리벳의 머리 부분이 기체표면과 평평하게 맞닿도록 설계된
플러시 리벳(Flush Rivet)이 사용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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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석 또한 완벽하게 밀폐되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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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종 모양으로 설계되어 툭 튀어나온 엔진 카울링은
동체의 공기흐름과 엔진의 냉각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조종사의 발판으로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날개와 동체 사이의 접합부는 부드러운 유선형의 형상으로,
항력을 줄이고 기체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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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항속거리를 늘리고 항력을 줄이기 위해
당시에는 생소했던 접이식 랜딩 기어가 장착되었는데,
특이하게 뒷바퀴까지 같이 접혀들어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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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심장인 엔진은 1932년에 출시된 P&W제 R-1535로,
9기통짜리 R-985 공랭식 성형엔진을 기반으로
실린더를 5개 추가하는 개조를 거친 파생형이었다.

SBC-3 헬다이버에도 장착됐던 이 성형엔진은
원래 옥탄가 87짜리 가솔린을 사용해 700마력을 냈지만,
휴즈는 여기다 옥탄가 100짜리 고성능 항공유를 때려박아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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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8월 17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하워즈 휴즈가 직접 조종한 H-1이 초도비행에 성공한 이후
1935년 9월 13일에 캘리포니아 산타아나 근처에서 실시된
H-1의 세계신기록 경신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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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은 4번의 비행에서 평균속도 567km/h를 기록하며
'가장 빠른 육상기'라는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직접 조종을 맡은 휴즈가 무리한 비행을 시도하다가
연료부족으로 인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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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H-1 이전까지 가장 빠른 육상기는 코드롱 C.450으로,
프랑스인 비행사 레이몬드 델몬트가 505.85km/h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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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H-1이 '가장 빠른 육상기'였던 이유는
1931년에 이탈리아의 항공기 제작사인 마키 아에로나우티카
(Macchi Aeronautica)가 제작한 MC-72 수상기가
세계 속도 신기록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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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 비행기는
동체에 나무가 사용되었고, 개방형 조종석을 갖췄으며,
수상기용 플로트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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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중량 2.5톤짜리 소형기에다 무게가 930kg에 달하는
1,425마력짜리 피아트제 AS.6 V-12 수랭 피스톤 엔진을
2개씩 때려박은 덕분에 709km/h까지 가속이 가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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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H-1 레이서는 대륙 횡단 속도 신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날개 형상을 장거리 비행에 적합하게 바꾸는 개조를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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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월 19일에 휴즈가 조종한 H-1은 LA~뉴욕간 항로를
7시간 28분만에 주파하여 신기록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이전 기록인 9시간 27분에서 2시간 단축된 것으로,
H-1의 평균속도는 518km/h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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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즈는 당연히 미 공군(당시에는 미 육군항공대)가
자신이 개발한 이 개쩌는 비행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미 육항대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P-26같은 산업폐기물을 주력 전투기랍시고 써먹던게
당시 미 육군항공대의 현실이었는데 왜 그랬던건지는 ㅁ?ㄹ
그래도 나중에 P-47을 제작하는데 H-1을 참고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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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휴즈는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노획한
미쓰비시 A6M 제로 몇기를 대충 둘러보고 나서
이 비행기가 자신이 제작한 H-1을 배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A6M의 날개 형상, 엔진 덮개의 구조,
특히 꼬리날개의 디자인이 H-1과 완벽히 일치하며,
제로기는 사실상 H-1의 복제품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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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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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레이서로 여러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에도
비행기에 대한 휴즈의 광적인 집착은 깨지지 않았다.
단순히 비행기를 제작하는게 아니라
대형 항공사 하나를 새로 창업하고 싶었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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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당시에는 트랜스콘티넨탈 & 웨스턴 항공-
줄여서 T&WA라고 불리던 항공사의 주식 99,293주를
1주당 8.25달러에 매입하여 78%의 지분을 획득한 이후
그의 측근들을 TWA 이사회에 강제로 합류시킴으로써
TWA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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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즈에게 인수된 이후 회사가 완전히 망해버린 RKO와는 달리,
TWA는 휴즈의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크게 성장했다.
펜암이 B-707과 B-747의 개발에 깊게 관여했던 것처럼
록히드 L-049 컨스텔레이션의 개발에는 TWA의 입김이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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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TWA의 노후화된 기체들을 모조리 대체할 목적으로
하워드 휴즈가 록히드에 1,8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여
개발이 시작된 L-049 컨스텔레이션은 제트 여객기인
B-707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성능이 좋은 민항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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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속거리가 제트기인 B-707보다 1,000km 더 길었던 덕분에
TWA는 LA~뉴욕을 오가는 미주 횡단노선은 물론이고
대서양 횡단 항공편까지 직항으로 운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당시 최대의 항공사였던 펜암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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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A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선을 신설하기 전까지
미국의 항공사를 나누는 기준은 펜암이냐 아니냐였다.
오직 펜암만이 국제선에 취항할 수 있었고, 다른 항공사들은
수요가 한정되어 있는 국내선만 운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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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암이 자기 혼자서 국제선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리 없었던 휴즈는 정계과의 연줄을 이용하여
TWA가 유럽~미국간 노선에 진출하도록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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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민간항공위원회 (CAB, Civil Aeronautics Board)가
주요 국내선 및 국제선 항공편에서 미국 항공사들의
경쟁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국제선 운수권을 남발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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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반부터 펜암은 갑자기 생겨난 수많은 경쟁자들과
국제선에서 피터지는 경쟁에 돌입해야만 했다.

먼저 대서양~유럽간 노선에서는 AOA 항공과 TWA,
펜암의 전통적인 나와바리였던 중남미 노선에서는 브래니프가,
유일한 국내선이었던 하와이행 항공편은 유나이티드 항공이
펜암이 독점하고 있었던 이익을 나눠가지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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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경쟁자가 없다시피했던 아시아~북미간 항공편까지
노스웨스트항공이 경쟁자로 나타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펜암의 주요 수입원중 하나였던 미국~멕시코 노선의 경우
운수권을 얻으려고 달라붙은 항공사만 10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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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초에 펜암이 100% 독점하고있던 시장에
신규 경쟁자들을 유입시켜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는게
도데체 뭐가 문제냐는 의문을 가질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펜암과 나머지 항공사들의 경쟁이
정말 건전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펜암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 문제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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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미국의 플래그 캐리어로 자리잡은 펜암은
미국의 국제선 항공편 수요를 100% 독점하는 대신
하와이/알레스카~미국 본토간 노선을 제외한
모든 국내선에 취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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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한은 1980년이 되어서야 겨우 헤제되었고,
그때까지 펜암은 다른 항공사들이 국내선 수요를
나눠가지는걸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펜암이 국내선 진출 금지라는 패널티가 있었음에도
1980년대 중후반에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항공산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했던건 다 이유가 있었다.

펜암의 경영진들은 TWA를 첫 목표물로 지정했다.
다른 항공사들은 다 좆밥이라서 딱히 관심이 없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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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TWA가 휴즈의 인맥빨로 얻어낸 유럽~미국간 노선에
당시 최신기였던 L-1049 컨스텔레이션을 투입하여
펜암을 견제하려고 시도하자, 펜암은 컨스텔레이션 34대를
1대당 75만 달러에 일시불로 구매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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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1945년산 P-51 머스탱이 대당 5만달러,
전략폭격기였던 B-29가 대당 60만 달러 정도였으니
당시로써는 꽤나 오버페이된 금액으로 구매했을듯하다.

결국 TWA는 컨스텔레이션의 개발에 관여하기까지 했지만
펜암이 비행기 34대를 일시불로 질러버린 탓에 주문이 밀려
미국~유럽간 직항편을 펜암보다 1달 늦게 취항하게 된다.

펜암의 TWA에 대한 패악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TWA를 철저하게 짓밟아 합병시키기로 합의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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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즈의 결정적인 약점을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