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독일 지도자들은 국가에 의한 집단범죄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나치 정권 하에서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아데나워는 1952년 체결된 룩셈부르크 조약의 일부로 이스라엘에 35억 마르크를 지불하기 위해, 이를 주저하는 독일연방의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인 가운데 오직 11%만이 이스라엘에 대한 배상을 지지했다. 시민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독일인의 고통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당시 독일인 대부분은 과거를 잊고 싶어 했고, 만약 그들이 나치 시대의 어떤 것을 기억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당한 엄청난 피해였다. 당시에 세워진 몇 안 되는 공식 기념물 중 하나는 1952년 베를린의 메링담에 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그들의 집에서 강제추방당한 독일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옛 나치의 집결지였던 극우 정당 '독일당'의 볼프상 헤들러 연방하원의원은 1949년 11월 25일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유대 민족에 대한 히틀러의 만행을 두고 너무 야단법석을 떱니다. 유대인들을 가스로 죽인 방법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들을 제거할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 발언은 당시에도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다. 결국 헤들러는 기소되었다. 하지만 전 나치당원이던 판사 세 명에 의해 증거 블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출처: 전후 일본과 독일이 이웃 국가들과 맺은 관계는 왜 달랐는가, 윌터 F. 해치 저, 이진모 옮김, 책과함께, 2024년, 91~92쪽
유대인만이 아니라 타국들한테도 통일전까진 배상같은거 없다 선언하던 때라 ㅋㅋ - dc App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인게 올바른가 논쟁이 있을 수 있죠. 그들을 제거할 다른 방법이 있었을텐데" 진짜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네
헤들러게이는 너무 미친놈아니냐 ㅋㅋ 낙지수준이 저렇긴한데
정말 빠꾸 없는 시대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