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현대 와서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경제,군사 후진국 인도이지만
의외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는 중국을 따위로 만들고 유럽과도 비벼본 대단한 선진 지역이었음. 오늘은 이중에서 군사 부문, 특히 화약 기술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함.
17세기 후반부터 정체되었던 중국의 화약무기 기술과는 다르게 인도의 화포 기술은 비록 중간중간 부침이 있긴 했으나 무굴 제국 시기인 16세기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음. 이미 영국이 오기전부터 세계 최대 화약 생산지 중 하나로서 세상에서 가장 질좋은 화약 조합물들을 생산했음. 인도의 화약무기 기술은 영프 세력의 유입으로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됨. 매우 빠른 속도로 유럽식 포병 제도와 전열보병은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무기들의 개발과 보급체계에도 굉장한 신경을 썼음. 이중 마이소르의 티푸 술탄은 중구난방이었던 화약 생산체계를 중앙화하고 영국보다도 화포 선진국이었던 프랑스의 기술자들을 대거 고용해 화포와 화약 제조를 감독하게 했음. 이를 통해 프랑스식 대포들을 생산하는 11개의 무기 공장들과 2개의 화약 공장들을 갖춰 엄청난 양의 최신식 화약무기들을 확보할 수 있었음. 유럽의 최신식 수력발전 기계들을 도입한 이 공장들은 대포를 다양한 용도에 맞게 다양한 구경으로 체계화해서 생산하고 모든 부품들을 규격화하는데 성공했음. 품질은 프랑스 장군도 칭찬할 정도였고 수량도 매우 많았음. 1799년 영국이 마이소르의 일개 요새를 점령했을 때 노획한 화약의 양은 74만리터, 대포는 400문에 달했음. 참고로 마이소르는 중국의 일개 성만한 크기.
마라타 제국의 신데 가문 또한 매우 선진적인 대포 생산체계를 갖추는데 성공하는데, 이들은 티푸보다 한발 앞서 프랑스 그리보발의 혁신적인 제도들과 전술들을 그대로 수입하는데 성공했음. 마라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구경의 대포들을 생산했던 티푸의 포병대와 다르게 모든 대포들을 6,8,12 파운더 직사포와 6,12파운드의 곡사포 정도로 간소화하고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음. 경량화된 야전포를 티푸는 물론 동인도 회사보다도 많이 생산했고, 포병대의 질 또한 세계 최강이었던 프랑스의 수제자답게 영국마저도 능가할 수 있었음. 다시말해 나폴레옹이 운용했던 그 유명한 포병대를 마라타도 쓸 수 있었다는 것. 시크 제국도 초반에는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찐빠들을 겪었으나 19세기 초반쯤 가면 영국과 동일한 질의 포병대를 운용할 수 있었음. 19세기 초반 기준으로 시크 제국이 운용한 대포 수는 야전포 300문, 낙타포 (낙타 등에 설치해서 운용하는 경포) 500문. 당연하겠지만 시크 제국 또한 중국의 1,2개 성만한 크기.
반면 18-19세기 초반 중국이 보유한 화약무기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구할 수 없지만 일단 1675년까지 운용할 수 있던 야전포가 149대. (노후화된거 빼고) 여기서 유럽인 불러서 추가로 생산한 댓수가 340대. 그 당시 기준으로는 괜찮은 대포였으나 문제는 여기서 더 발전을 안하고 1860년까지 이걸 썼다는 것.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화포들이 노후화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앞서말한 기술자 부른것) 19세기 쯤 가면 모든 대포들의 규격이 안맞고, 화력도 약하고, 화약의 질도 조악하고 명중률도 안좋았음. 오죽하면 19세기 초반 유럽 군인들이 청나라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들 중 하나가 200년 전에 만든 대포들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음.
아무리 20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중국과 인도, 이 둘의 위상이 이렇게 완벽하게 역전될 수 있나 싶다.
결론은 아오 영국시치!!!~
Empire and Gunpowder: MIlitary Industrialisation and Ascendancy of the East India Company in India, 1757–1856
The Army of the Manchu Empire: The Conquest Army and the Imperial Army of Qing China, 1600-1727
‘Their Infantry and Guns Will Astonish You’: The Army of Hindustan and European Mercenaries in Maratha service 1780-1803 (From Reason to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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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화약 무기 질이 유독 뒤떨어진건 청조 인사들이 화약 무기 개발 억압한게 원인이었다는 말이 있더라 - dc App
그건 사실과 조금 다른게 앞서 말했듯이 유럽 기술자들 불러서 이것저것 개선하게 했고 준가르 때도 재미를 많이 봤음. 문제는 이 정도로 유럽과 인도를 따라가기에는 걔네들이 너무 강하고 빠르게 발전했던거지. - dc App
ㅇㅎ... - dc App
청나라는 화약무기 계속쓰면 한족들 반란 통제가 안될거같아서 일부러 화약무기를 등한시한것도 있음 인도는 계속 아대륙 내 분쟁때문에 발전을 안하면 걍 좆되는 분위기여서 그런 선택압이 강했던거고 - dc App
청조는 주변 관리만 하면 되는 수준인데 인도는 끊임없는 제후들과 주변국들의 분쟁이 계속 이어지다보니까 무력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도없이 추락함 예를 들어 무굴이 마라타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여 남인도 언저리에 유지시켰는데, 나중에 정리 안 된 마라타가 다시 무굴을 역으로 쌈싸먹어서 무굴 후기엔 무굴제국의 황제는 델리 일대의 영주 수준밖에 안되는 상태로 전락함 - dc App
인도 슈퍼포트리스 보면 진짜 엄청나더라
유럽은 대포랑 성이 맞닥드렸을때 반쯤은 손놓은거같으면 걔들은 진심모드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모드인거같음
팩트는 무굴은 티베트랑 준가르 펀자브 동투르크스탄 찰프 이런 지역 개처맞고 뜯겼다는거임
18세기면 청나라가 슬슬 골병들기 시작하던때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