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우위키 거르고 유교가 뭔지 다방면에서 고찰한 책이나 기고문이라도 읽고 유교가 전근대 사회에서 뭔 역할을 했는지 읽고라도 와서 얘기하면 을매나 좋아?
당장 조선시대때 사회 씹창나는 와중에도 국체 유지하고 나라 500년동안 굴러간 게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구축된 거라 가능했던 건데.
의외로 조선 사회는 꽤나 역동적이었고 좆망각 뜬것도 19C 초에 세도정치 시작된 이후란것도 감안해서 보고 하면 유교 깔거리도 얼마 없지 아늠?
당장 조선시대때 사회 씹창나는 와중에도 국체 유지하고 나라 500년동안 굴러간 게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구축된 거라 가능했던 건데.
의외로 조선 사회는 꽤나 역동적이었고 좆망각 뜬것도 19C 초에 세도정치 시작된 이후란것도 감안해서 보고 하면 유교 깔거리도 얼마 없지 아늠?
초기 성리학은 그래도 양반이였지. 원나라를 통해서 통치이념으로 온거라 의외로 합리적이였거든(사실 야매^^) 문제는 성리학 서적들을 중국에서 직수입하면서... 도덕책을 정치에 쓴 격이얌
개인 수양록하고 도덕책을 정치에 쓰면 어찌 되겠냐..
성리학이란거 자체가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넓었던지라...솔직히 조선 관료들 일처리했던거 보고있으면 속터지는거 많긴 해도 위에 썼듯이 성리학이란 철학의 기반 위에서 나라 맹글고 굴려서 긴 시간동안 나라 안망하고 굴린거 맞자나요.
성리학이 단순히 개인수양과 도덕책이라고 생각해서 그리 말하는덧한데 이기논쟁도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논쟁인 등 커버치는게 넓어서 ㅇㅅㅇ...
성리학 없던시절에 천년 굴러간 신라는 그럼 뭐란 말이오
아니 정치이념이 세계 구성을 논하면 뭐가 되요?
이기논쟁? 이기? 신고합니다
뭐 그래도 도덕경제라 하여 조선시대 경제체제는 그래도 꽤 안정적으로 굴러갔음
다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한계점이 노출되기 시작하고, 이를 막고자 개혁을 시도했으나 시스템 안에서의 개혁은 결과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었고 비효율과 수탈이 누적되어 빵 터진게 19세기 농민반란이고...
신라는 실제 연대 재구성하면 4세기경에 형성되었다는것이 요즘 시각이고 국가의 발전에 따라 통치체제 바꿔가면서 살아남은거라 그래 보는건 초큼...
현대를 예시로 두자라면 여당 야당이 원자론 가지고 따지는 격이라고요. 각자 할수 있는 한계가 있죠.
전근대와 근현대를 직접 비교하면 곤란하지 않겠음?
슈푸//사실 개혁이란거에 너무 느리게 반응하는 체제인거 같긴 해요. 공납 공인 문제도 한 100년 넘게 시달렸고 그거 고칠 대동법도 100년에 걸쳐서 시행한 거 보면...
도덕정치라는게 유교에서 드문것도 아니고 물론 조선은 가면 갈수록 실용과 먼 교조적인 방향으로 치달았지만... 맑스의 역사발전법칙이라는 건 원래부터 없는거고 역사라는게 꼭 발전되는 방향으로만 가야되는 것도 아니고 진화와 비슷하게 안좋은 방향으로도, 아니 방향이라는 게 정해진게 없다가 맞고
성리학이 무슨 통일이론도 아닌 이상..너무 나갔음. 그뿐.
그냥 시대정신과 점점 더 안맞았다고 봐요 저는
여당 야당이라고 나누기에는 각 학파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것도 아닌데다가, 학문분야의 분화가 일어난건 서양에서도 근세 들어서의 일인데 16C 조선에 그런 기준을 적용하시면...
내가 보기에 한반도 국가의 수명은 유교가 아니라 단일 정부체제에 익숙해진것에 의한것같은데. 짱꺠가 천하통일에 익숙해진것처럼.
그럼 19세기 되도 안 변한게 문제다. 이렇게 칩시다.
유럽 군주제 국가들도 여러 진통 겪으면서 근대국가로 발전해나갔던거 보면 ㅇㅅㅇ... 전근대 조선에는 쓸만했던 정치체제가 시대정신과 점점 안맞게 되었다는 아조시 말에 동의합니다.
조선 내부에서는 성리학적 철학체계에 기반한 국가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는데 시대는 점점 근대로 나아가고 있었고 둘이 충돌하면서 조선이 허물어진거죠. 자체적 근대화 노력은 너무 느리고 늦었던...탈근대화 담론 나온지도 20년 넘었지만 일단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