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gall.dcinside.com/war/41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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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리 오래 걷는 걸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전 9시이다. 상당히 오래 걸었다. 작전 투입시간이 23시라길래 주둔지에서 출발이 23시인 줄 알았지만 정작 주둔지에서 출발한 시각은 21시. 23시가 조금 지나서 작전지역에서 내려주더니 지금까지 계속 걷고 있다.

정찰임무 치곤 별별 희한한 곳을 다 지나간다. 중국군 수송행렬이 지나가는 도로에서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건너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게 확인된 시골 마을을 지나가기도 했다. 다행이도 아직까진 발각되지 않은 듯 하지만 너무 힘들고 지친다. 과연 이걸 얼마나 더 반복하는 걸까?

왜 전투식량을 3일치를 주고 특전식량 같이 생긴 거 까지 꺼내준건지 대충 알 거 같았다. 수통 2개에 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거 같아서 체력단련할 때 쓰던 1리터짜리 사제 물통에도 물을 채워왔지만 이미 수통 하나의 물은 절반 정도 비웠다. 겨울이라 아직도 날은 어둑어둑하지만 언제까지 걷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정지. 휴식하자. 이 병장은 애들 사주경계 시켜'

대위 계급장을 달고있는 중위님이 내게 지시하고 다른 간부들과 모여서 지도를 퍌쳐보고 있었다. 내가 하사로 진급했지만 그건 어차피 의미없고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상관없다. 이미 권 상병과 최 병장은 알아서 적당한 위치를 잡고 사주경계에 들어갔고 나 또한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소대 이동'

말 많던 전 중사님이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 사주경계하던 세 군인은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의문점이 남는다. 우리가 뭘 정찰하러 가는 건지, 새로 합류된 간부들은 누군지, 왜 우리랑 같이 가는건지도 말이다.

구름 낀 날씨라 그런지 10시가 가까워지는데도 어둑어둑한 느낌이다. 날씨가 안좋으면 안 좋을 수록 우린 좋다. 차라리 아직도 밤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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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 저 아래로 시가지가 보인다. 과연 저기는 어디일까? 우린 얼마나 온 걸까?

'영천이다. 잠시 정지.'

영천이란다. 영천? 씨발 그럼 우린 어디서 출발해서 얼마나 온거야?

'예상 도착 시간보다 한 두시간 정도 늦었지만 일단 도착했습니다.'

'관측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보고 은닉호를 마련하도록 하죠.'

박 대위님이 그 공군 대위와 미군에게 이야기를 한다. 관측? 은닉호? 앞의 그 단어들은 훈련하면서 들어봤지만 몇몇은 내가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들이 오간다. 합동최종 뭐시기인지 뭘 관제니 통제한다는데 무슨 여기에 공수부대라도 떨굴건지 항공폭격이라도 할 생각인가?

박 대위는 나를, 전 중사님은 권 상병을 차출했다. 불쌍한 권 상병. 벽돌같은 조준경이 달린 케이쓰리를 들고 날쌘 전 중사님 뒤를 쫒는 모습이 보였다. 내 배낭 안에 권 상병의 예비 총열과 탄띠 150발 정도가 들어있지만 더 들어줄껄 그랬나 싶었다.

'여기 좋네, 수목도 무성하고, 땅 파기도 괜찮아보이고

박 대위와 한 5분 정도 걸은 끝에 영천시 시가가 잘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순간 난 뭔가 물어보고 싶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거라 생각했다.

'박 중위님 저....'

'아 내 사투리? 그거 그냥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일부로 쓰는 거였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진짜 뭐하는 겁니까? 수색하는 거라면서 반나절 가까이 산만 타고 이제 보니 여기가 영천이라니 뭡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한시가 급하다. 가서 그 양반들 불러 와'

박 대위의 심각한 표정에 물어보는 걸 그만두었다. 뭐 까라면 까야지. 대위로 진급하셨는데 습관적으로 중위님이라 부른다.

온길로 되돌아가다보니 그 정찰대 소속 중사 - 분명 처음 볼때 하사였는데? - 와 마주쳤다.

'괜찮은 장소를 찾았답니다. 퇴출에도 괜찮고 시야도 잘 들어온다 해서 소대장님을 빨리 데려오라 해서 왔습니다.'

'아 네.. 저쪽에 계십니다....'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얼떨떨하다. 그러고 보니 이 정찰대 중사는 등에 군장이랑 무전기까지 매고 우리랑 같이 10시간 정도 걸었을텐데 지친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뭐하는 양반이지 이 양반?

정찰대 중사와 함께 박 대위님을 모시고 가니 거기엔 이미 통신장비와 관측장비를 잔뜩 늘여놓고 판이 벌려져 있었다. 뭐. 통신장비라고 해봤자 대부분은 전투배낭 안에 넣어놔서 굳이 꺼낼 필요도 없었고 관측장비랑 그리고....

'하사! 내가 맡긴 거 꺼내서 펼쳐줘!'

배낭에서 공군 대위가 맡긴 쇳뭉치를 꺼냈다. 위장무늬 주머니에서 꺼낸 처음 보는 쇳뭉치를 내가 어떻게 펼쳐야 할지 어버버대자 옆에서 보고 있던 전 중사가 뺏어서 대신 펼쳤다. 복면을 쓴 전 중사의 열굴을 보니 잘못한 느낌이 들었다.

'보고, 배우고, 다음에 실수 안 하면 돼.'

전 중사님은 능숙하게 펼친 철 뭉치를 무전기와 연결했다.

'위성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UHF 안테나다. 무전기랑 같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물건이니 잘 챙겨라.'

연결을 하고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난 내 전투용 안경을 고쳐 쓰고 사주경계를 하러 자리를 움직였다. 이미 권 상병과 최 상병은 위치를 잡고 사주경계에 들어갔었다.

적당히 돌과 초목에 둘러쌓여 은폐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주변이 자리가 상당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진 한복판에서 자리 하나 좋아봤자 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적함과 불안감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모든 게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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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서던 도중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파. 충격파가 나를 세게 흔드는 바람에 균형을 잠시 잃고 앞으로 꼬꾸라저 버렸다. 본능적으로 충격파가 일어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폭발로 인해 생긴듯한 거대한 먼지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저 멀리서 보였다.

'Tango down. Good kill, Good kill'

귀가 잘 안들리고 정신이 멍한 와중에 그나마 귀에 들리는 말이란 건 저거 한 마디 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듯 싶었다. 정찰대 소속 하사가 날 보더니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햤다. 아, 경계. 경계해야 하지.

나는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충격파로 인햐 멍하기도 하고 해서 엄폐물로 삼은 돌 주변에 몸을 기대어서 엎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충격파와 폭음이 들려왔다. 충격파는 지면을 훑고 나를 압도해버렸다. 대체 뭘 떨어트리면 저런 충격파가 나오는 걸까? 정신이 없다.

'정현아 가자! 이거 챙겨라!'

전 중사님이 안테나와 주머니를 대충 내게 던져주면서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몸이 기억한다고 손은 이미 안테나를 접고 있었다. 군장에 대충 안테나를 쑤셔박을 시점에 미군이랑 대화하던 박 대위님이 다급한듯이 입을 열었다.

'대구로 간다. 빨리 움직여!'

영천에서 대구라. 좆나게 환상적이군. 난 이제 우리가 왜 여기있는지 감을 잡았다. 우린 후방침투해서 보이는 적 주요 시설에 폭격 유도를 하는 게 우리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발 좆됬다. 전 중사님이 우리 끌고 어디 갈때마다 풀던 '자기 특전사 시절 썰' 중 하나를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39사단 대항군 뛸 때도 내가 해본거라곤 사단 본부에 침투해서 지통실에 연기 나는 연습용 수류탄 까넣고 폭파 딱지 붙여본 것 뿐인데 이런 짓을 해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번도 배운 적 없는 걸 해야한다고?

너무 억울하다. 말년에 전쟁 터진거로고 모자라서 한번도 배우지 않은 짓을 하게 되다니 차라리 이게 다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훈련도 아니었고 진짜 작전인 거다. 훈련에선 내가 잡히면 그냥 묶여서 어디 짱박혀있다가 자대로 복귀하면 끝이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났을때 내가 돌아갈 곳은 그저 말 그대로 돌아가버리는 것 뿐이니깐.

나는 죽게 되는 걸까...?

'이정현 새끼야 정신차려!'

전 중사님이 얼타고 있는 내 싸다구를 한 대 후리면서 말했다. 아프다.

'너가 얼 타면 우리도 니 후임 아새끼들도 뒤지는 거야'

싸다구를 후린 전 중사가 다른 곳에서 경계근무하던 애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프다. 하지만 이젠 뭔 소리인지 확실히 들려온다.

싸다구를 한대 맞아서일까? 아님 내 후임들이 뒤진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게 느껴진다. 이젠 뭘 해야하는 지는 몰라도 일단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발 좆대로 되라.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갈때까지 가고 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중사님을 다시 돌아보니 이미 군장을 메고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십쇼. 이 하사.'

옆이서 지켜보고 있었는지 어느새 그 정찰대 중사가 내게 와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하고 갔다. 존댓말이긴 하지만 마치 호랑이가 으르렁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정신차려야겠지. 이젠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 다녀선 안된다는 게 느껴졌다.

의문은 큰 노력없이 정말 간단히 해결되었지만 의문 뒤에 더 큰 무언가가 숨어있었다는 것. 그리고 더 큰 무언가는 간단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 전쟁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전 11시 반이 되어간다. 마치 눈이 올 거 같은 구름들이 하늘에 가득하다. 우리 소대는 대구를 향해 발걸음을 움겼다. 저 멀리 폭연이 피어오르는 혼란스러운 영천을 뒤로 한 채 우린 대구를 향해 발걸음을 움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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