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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파병기간 1년 중 귀국이 가까워진 한국군 장병들에게는 '귀국박스'라고 하는 나무궤짝이 주어졌다. 군장에 다 넣지 못한 병사들의 개인 짐을 한꺼번에 고향집으로 보낼 수 있는 일종의 택배상자였다. 귀국박스의 종류는 A, B, C형으로 나뉘었으며 A는 장교용, B,C형은 부사관들과 사병용이었다. 


사실 귀국박스에는 개인짐보다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낼 물건이 들어갔다. 대한의 건아들에게 귀국이란 쉴틈 없이 삶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병사들은 가로 세로 높이 1m를 조금 넘는 상자 속에 무엇을 넣어 보내야 할 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제일 많이 들어간 건 보급으로 나왔던 C레이션이었다. 공76짜로 얻을 수 있었던 미제 통조림은 아직도 식량자급이 어려웠던 대한민국에서 고급 음식 취급을 받았다. 대부분의 장병들이 C레이션을 상자 외부에 배치해서 일종의 완충제로 썼다.


정말 쥐꼬리나 다름 없었던 월급을 악착같이 모은 장병들은 영외외출날 시내에 나가서 돈 될만한 것을 사왔다. 다리미나 재봉틀. 일제 라디오, 냉장고 같은 고가의 가전제품도 있었다.


그런걸 살 돈을 모으지 못한 장병들은 돈이 될만한 것들을 주워 담아 보냈다. 대표적으로 고철이었다. 보병들은 도보 정찰 중에 맥주캔들을 주워모았고, 포병들은 황동으로 된 포탄탄피를 모았다. 하다못해 전봇대 전선을 주워서 대검으로 고무피복만 벗겨내고 구리선을 넣기도 했다. 모두 다 고물상에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본 미군들은 한국군들이 쓰레기를 주워모으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고 여겼다.  다만 나중에 가면 탄피는 적재금지 품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뇌관을 제거하지 않은 탄피들이 배에 실려 가던 도중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장병들은 보급낙하산 천(실크), 군용 텐트, 베트콩에게서 노획한 장구류도 추억거리로 넣어보냈다. 어떤 이들은 진짜 총이나 대검같은 무기를 넣어서 보냈다가 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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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박스 옆면에 자신의 고향집 주소를 먹물과 페인트로 크게 써넣었다. 주소 체계와 우편 제도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 택배가 잘못 보내지면 다시 찾을 방법이 거의 없었기에, 장병들은 정성을 다해 또박또박 고향집 주소를 적었다.


고향집에 먼저 도착한 귀국박스는 마을의 구경거리였다. 그 안에는 열대의 정글에 돈 벌러 간 아버지, 아들, 손주가 보내온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고, 외국물건을 구경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귀국박스는 한국인들에게 외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경로였다.


귀국박스의 물품들은 다양하게 쓰였다. 군용 물품들은 농사일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고 긁어모은 고철들은 살림 밑천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가전제품 같은 건 가족들에게 줄 용도도 있었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돈 있는 사람들에게 더 비싼 값을 받고 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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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박스 자체 역시 꽤 튼튼했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보관함으로 쓰였다. 이렇게 살아남은 귀국박스들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시골 한 구석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모든게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목숨을 담보로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걸고 사선을 넘나든 장병들에게 귀국박스는 보상이자 가족을 먹여살릴 미래에 대한 밑천, 청춘을 불태운 증표였다.